
정동환 배우의 무대인생 55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공연 《단테 신곡》은 고전의 재현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새롭게 호출하는 인문학적 여정이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원작을 토대로 구성된 이 연극은 지옥·연옥·천국을 통과하는 여정을 통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진다. 그러나 작품은 단순히 종교적 상징에 머물지 않고, 신의 부재와 믿음의 약화, 그리고 현대인의 가치 체계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의 모습을 깊이 성찰하게 한다.
무엇보다 정동환 배우가 연기한 베르길리우스는 작품의 핵심이자 중심축이다.
그는 단테를 이끄는 스승이자, 동시에 관객을 무대의 어둠 속으로 이끄는 안내자이다. 정동환 특유의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와 절제된 몸짓은 지옥의 관문을 여는 주문처럼 작동한다. 그의 존재는 단순한 내레이터가 아니라 관객의 ‘내면 여행’을 인도하는 철학적 가이드로 기능한다.
무대 위의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와 함께하지만, 어느 순간 관객 곁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그가 던지는 시선과 호흡은 우리가 함께 지옥의 골짜기를 내려가고, 인간의 죄와 고통의 본질을 마주하는 듯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지옥의 장면을 구현한 무대와 조명, 그리고 배우들의 신체 연기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불길처럼 일렁이는 붉은 조명 아래에서 죄인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춤사위는 인간의 욕망과 절망을 육체로 번역한 언어였다. 그로테스크한 움직임 속에 신음, 비명, 몸의 뒤틀림이 섞이며 지옥의 시간은 하나의 ‘신체적 이미지’로 응축된다.
극단 피악이 추구하는 ‘감각적 은유의 이미지’라는 무대철학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무대 위 배우들은 말보다 몸으로 죄의 무게를 표현하고, 그 육체의 고통을 통해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그것은 단순한 무용이 아니라, 고통의 형상화를 통한 영혼의 고백처럼 다가온다.
나진환 연출은 원작의 구조를 크게 변형하지 않고, 텍스트의 무게를 존중한 채 무대적 언어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지 ‘고전의 무대화’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곳곳에 현대적 사유를 끼워 넣기 때문이다.
시작 장면에서 ‘신의 죽음’과 종교적 믿음의 약화를 언급하며, 오늘날의 가치 체계와 윤리의 붕괴를 암시한다. 또한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 직전, 배우가 관객에게 “이 여정은 허구이며, 환상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것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깨뜨리며, 우리가 목격한 지옥이 사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거울임을 암시한다.
이 짧은 순간은 작품 전체의 사유를 압축하는 철학적 브리치처럼 작동한다.

모든 배우들의 앙상블은 치밀하게 짜인 리듬과 호흡으로 각 장면을 단단히 묶어냈다.
특히 죄인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군무는 개별의 고통을 넘어 집단적 절규로 확장되며, 무대 전체를 일종의 ‘움직이는 회화’로 만든다. 이들의 육체는 형벌의 도구이자, 인간성의 잔재를 증언하는 조각처럼 보인다.
결국 《단테 신곡》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지옥을 응시하게 하는 거울이다. 그 속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지성은 단테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자, 관객의 내면을 비추는 철학적 빛으로 작용한다.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 정동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통과해야 할 ‘지옥의 여정’이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는 메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