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내내 너무 좋았던 나머지, 극이 끝나도 극장에서 나가기가 싫은 공연들이 있다.
연극 <온 더 비트>가 바로 그런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니 극이 주는 여운이 정말 크게 다가왔고, 주인공 아드리앙이 떠난 무대에 덩그러니 놓인 드럼을 계속 바라보고 싶었다. 공연이 끝났으니 신속히 퇴장해 달라는 어셔 분들의 친절한 안내가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반신반의로 극장에서 나와 동대입구역으로 걸어가는데, 110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계속 집중을 하고 나온 내 상태는 하나도 피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대와 배우에게서 나온 에너지를 흡수하고 온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 후 <온 더 비트>를 3번 더 재관람했다. 지금부터 내가 푹 빠져있는 이 연극의 매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온 더 비트>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소년 아드리앙이 드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1인 극이다. 무대는 여타 공연보다 심플하다. "Je vous vois(난 너희가 보여)"라는 글자가 잔뜩 적힌 벽체와 바퀴 달린 의자 하나, 그리고 무대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일반 드럼과 전자 드럼 세트가 전부다. 그러나 무대가 비어 보일 틈은 없다. 배우는 무대의 이곳저곳을 활발히 돌아다니며 연기를 펼치고, 때로는 드럼을 직접 연주하며, 객석 복도로 나가서 하나의 장면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렇게 배우의 움직임, 조명, 드럼 연주가 무대의 여백을 가득 채우고, 이 무형의 에너지는 객석으로까지 확장되며 극장 전체를 메운다.
극은 어둠 속에서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싱커페이션 리듬이 점차 고조되며 시작한다. 얼굴 앞에 켜진 라이터 불빛과 함께 등장한 아드리앙은, 비트라는 언어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그의 세계로 관객들을 단숨에 데려간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보통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에 놀라 절로 웃음을 짓게 된다. 예를 들어 자기 뺨을 때린 선생님에게 화를 내는데, 그 이유가 자기를 때려서가 아니라, '리듬에 딱 맞게 때리지 않아서'였다. 이렇게 아드리앙의 세상을 보는 시선은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정적은 소리만큼 중요하다"
극 중 아드리앙은 자신을 괴롭히는 같은 반 친구 크리스토프에게 참다못해 주먹을 날린다. 그리고 그가 쓰러지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순간을 목격하며, 음이 아름다운 이유, 나아가 삶이 아름다운 이유에 대해 깨닫는다. 음표는 전에 없었다가 잠깐 존재하고, 곧 사라지기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삶 역시 순간만 존재하다 사라지기 때문에, 아드리앙은 "우리가 산다는 건 음표처럼 아름다울 수 있는 기회들을 얻는 것이다"라고 얘기해 준다. 이때 배우들은 손가락으로 관객들 한 명 한 명을 가리키며 대사를 하기도 한다. 그 순간 나도 하나의 음표가 되었다. 극장 안에 있는 모두가 유한한 삶의 아름다움을 표방하는 존재가 되었다.
"다른 악기가 아니라 왜 드럼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내가 선택한 거 아니에요.
그냥 드럼이 온 거에요, 나한테."
아드리앙이 드럼 비트에 눈을 뜨게 된 건 엄청나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저 농구공 튀기는 소리와 부엌에서 칼 써는 소리가 우연히 겹쳐 들리며 아드리앙의 귀에서 만나 하나의 음악으로 어우러졌을 뿐이다. 이렇게 비트에 대한 관심이 거창하지 않은 계기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드리앙의 이야기는 더욱 진정성 있게 와닿는다. 아드리앙은 비트와 사랑에 빠질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아드리앙은 직감한다. "이게 내 인생의 전부가 될 거라는 걸 알았다"고.
"이건요, 단순한 악기가 아니에요. 내 뛰는 심장이에요"
이후 아드리앙은 손에 닿는 모든 것은 다 두드려보며 리듬을 만들어낸다. 또한 LP 판의 음악들에 맞춰 빨래통들을 드럼 삼아 연주하며 음악적 감각을 키운다. 그리고 드럼을 갖기 위해 집안일을 도맡으며, 반에서 1등도 한다. 마침내 드럼을 치게 된 순간, 드럼 소리 하나하나에 몸을 떨며 행복해하고, 헤드폰을 쓴 채 전자 드럼을 하루 종일 연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순수하고도 강렬한 열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에게도 그러한 대상이 있었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스포를 조금 하자면, 아드리앙은 나중에 드럼을 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아드리앙은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그 이유가 다음 대사에서 나온다. "드럼이 진짜 엄청난 건요, 악기가 없어도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러고 나서 아드리앙은 자신의 몸을 드럼 삼아 비트를 만들어내는 데에 몰두한다. 즉 드럼은 존재만으로도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로 작품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건넨다. 아드리앙에게 드럼이 있다면, 당신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3인의 배우, 3개의 우주의 아드리앙
아드리앙 역에는 3명의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초연부터 참여해 온 윤나무, 강기둥 배우와 이번 재연에 합류하게 된 강승호 배우이다. 이 배우들은 서로 다른 스타일의 훌륭한 연기를 구현해 내며, 각양각색의 아드리앙을 보여준다.
먼저 윤나무 배우는 다이나믹한 '연기 차력쇼'를 보는 듯하다. 극 중에는 아드리앙뿐만이 아니라 엄마, 베르나르 아저씨, 교장 선생님, 세실 등 무려 총 24인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아드리앙에서 다른 인격으로 완전히 변하는 듯한 경이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여자친구 세실과의 대화 장면에서 대사마다 실시간으로 자아가 바뀌는 연기가 감탄을 자아낸다.
두 번째로 강기둥 배우는 '재간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드리앙인 듯하다. 배우가 가진 특유의 코믹한 매력으로 극을 에너제틱하게 이끌어나간다. 또한 드럼이 너무 좋아서 한숨을 쉬기도 하고 울먹거리기도 하는 등 누가 봐도 드럼에 진심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연기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될 정도 드럼을 사랑한다는 것이 잘 와닿았다.
세 번째로 강승호 배우는 비교적 차분하고 잔잔한 느낌으로 아드리앙을 표현해낸다. 지루하거나 밋밋한 연기라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담백함 속에 집중력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윤나무 배우가 다른 인물들을 연기할 때 인격이 완전히 변하는 역동적인 느낌이었다면, 강승호 배우는 '아드리앙이 다른 인물들을 흉내 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나무 배우는 잘 다져진 연극적인 느낌이었다면, 강승호 배우는 마치 한 소년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극을 4번 관람한 관객이자 연기 비전공자인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이므로 가볍게 참고해 주신다면 좋겠다. 아무튼 이렇게 같은 대본임에도 전혀 다른 색깔로 인물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무궁무진한 연기의 세계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동일한 장면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모습들을 목격하는 순간, 마치 세 개의 유니버스 속에서 각기 다른 아드리앙들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특히 이 작품이 '1인 극'이기에 그 경이로운 감정을 더욱 짙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점에서 이 연극은 공연예술만이 가진 진정한 매력이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일깨워준다.
"<온 더 비트>가 엄청난 건요, 극장에 없어도 전율을 느낄 수 있다는 거에요!"
이렇게 <온 더 비트>가 왜 특별한 공연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마치 아드리앙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두 눈을 반짝이며 드럼을 사랑하는 이유를 풀어내던 그 아이처럼, 나 역시 <온 더 비트>가 왜 나에게 전율을 돋게 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활력을 주는지 열정을 담아 적어보았다. 이 연극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 얼마나 눈부신가를 보여줄 뿐 아니라, 그 메시지를 실제로 내 삶에 심어준 고마운 작품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아드리앙에게 드럼이 그러했듯, 나에게 공연이 그러했듯,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떠올랐기를 바란다. 혹시 아직 그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면, 언젠가 반드시 발견하게 되기를. 그리고 그 순간이 이 작품의 커튼콜 장면처럼 찬란하게 빛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