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AI는 IT 기술, 개발의 영역 뿐 아니라 마케팅, 디자인, 기획, 영상 제작, 문학, 의료 분야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분야에 걸쳐 필수적으로 활용되는 요소이자 상식이 되었다. 당연히, 늘상 인간이 해오던 많은 일들이 이제는 대부분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서도 구현 가능하게 되었다. 대체의 수준을 넘어,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인간 개개인의 고뇌와 사유, 수작업의 비중이 점차 줄고 기계화, 자동화, 공론화, 빠른 결과 도출이 대세가 되고 있는 시대다. 뭐든 천천히 고민할 새가 없다. 그 사이 누군가는 모니터 속 세상에서 화려한 단축 손기술들을 선보이며 아날로그 시대에 멈춰있는 듯한 느림보들의 상념을 비웃는다. (아날로그 애호가로서 너무나 슬픈 일이다.)
요즘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특정 기업의 문제 해결을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이다. 프로그램에 흥미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공백기 때의 의미 있고 쓸모 있는 경험 정도로 말의 구색을 맞추고자, 억지로라도 ai와 친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나와 잘 맞지 않는다. 스트레스다. 총 칠십 여명 정도의 지역 청년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가운데, 내가 속한 팀은 폐장난감을 재활용해 아동들에게 무상으로 장난감을 지급하고, 유, 초등생을 대상으로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울산의 한 사회적 공헌 기업의 과제를 맡게 되었다.
AI의 명령어 습득 및 구현 능력은 말 하기도 입 아플 정도로 경이로웠다. 기계가 인간의 질문 내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질문의 대략적인 의도와 적절한 문제 해결법 및 필요 자료와 개발 소스까지 제공해주니 말이다. 이를 통해 앱 프로그램 개발 및 배포까지 가능하다. 조금 과장 보태서 요즘 시대에는 정말 왠만한 비전공자, 기계치도 타이핑 몇 차례와 클릭 몇 번이면 원하는 기능을 탑재한 앱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했으니 말이다.
실력의 차이보다도 시대의 흐름을 읽는 성실함. 지금 시대에서의 ‘성실함’이란 무작정 우직하고, 한 우물을 파고, 열정 넘치고, 부지런한 태도를 말하지 않는다. '2020 - 2030' 버전의 ‘성실함’이란, ‘IT 기술의 발전 흐름 및 정보 수용 방향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자세를 뜻하지 않을까. 시대상에 걸맞는 지혜로운 성실함, 지혜로운 노력은 평생에 걸쳐 필요한, 중요한 요소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우울감을 부쩍 많이 느낀다. 앞서 말했듯 나랑 잘 안 맞는다. 태생적인 기계치의, 초등학교 시절 때 부터 남들보다 느려 애를 먹었던 컴퓨터와의 낯가림, 이른바 ‘컴퓨터 공포증’은 아직도 완전히 극복해내지 못했다. 그나마 강점이었던 착한 심성과 성실함, 필력, 특유의 감수성 따위는 기계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요즘 ai는 공감능력 쯤이야 가뿐히 학습해내니까.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위로가 필요한지, 해결책이 필요한지 분간도 할 줄 알고, 때때로 내 생각보다도 더 빠르고, 정확하고, 넓은 시야에서 맞는 소리를 한다. 너무 맞는 말을 잘하고 정확하다. 조금도 나 자신이 비교 선상에서 두드러지게 나은 점이 없는, 근사한 점이 없는 존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몸은 편안하고 풍족하지만 마음은 어딘가 불안하고 자꾸만 허기지는 시대의 특징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푸념에서마저도 나는 영 특별한 구석이 없다. 자꾸만 인간의 쓸모에 대해, 나의 쓸모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한 편으로, IT 기술의 존재가 반갑고 고마운 것 역시 사실이다. 의지만 있다면 인간과 기계는 충분히 공생 관계에 놓일 수 있다. 단지 무기력하고 게으른 개개인의 탓이다. 무엇보다 성실함과 간절함이 중요하다. 어머니의 투병 상황을 극복해내기 위해 평생 들어보지도, 손도 대 본 적 없던 기술 적용을 시도하고 수십 가지의 논문들을 치열하게 접하며, 병력 치료 아이템을 성공적으로 구현해 낸 한 여학생의 사례처럼, 간절함 역시 중요한 덕목이다. 고통과 그를 이겨내기 위한 간절함이 위대한 사람과 상황을 만든다. 기계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 기계에는 자아가 없다. 자아가 있는 듯한 착각을, 결과물을 불러 일으키는 것 역시 사람의 몫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 기술을 갖춘 기계라 할지라도 ‘명령어’를 입력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오너다. 질문도, 명령도 결국 인간 고유의 이해력과 지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손길을 통해 기계는 태어나고, 작동한다. 공상 과학 소설 혹은 영화에 나올 법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기계의 출현과 대체에 무지성으로 불평하고, 겁내기 보다도 가장 선한 결과를 창출하는 ‘명령어’를 입력할 줄 아는 인간들이 되기를 꿈꿔보자.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게 무엇이 되었던 간에 기술을 리드할, 기술 수행자에게 명령할 몫이 있다. 기계와 공생하며, 명확한 명령을 내릴 줄 아는 이가 결국 디지털 시대의 성실함을 인정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