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저자 김은영은 1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이자 작가,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이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용감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여행 중 마주하게 되는 어떠한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계획적이고 치밀하다기 보다는 어쩐지 허술한 행태이지만 그것마저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에너지야말로 저자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4살에 악착같이 6개월 간 모은 800만원으로 시작한 유럽 여행부터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는 인도, 몽골 여행까지 그녀의 사적인 좌충우돌 여행기는 때로 공감을, 또 때로는 리스펙을 자극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게 어설프고 서툴렀다’고 표현한 작가의 첫 유럽 여행에서 나와는 너무도 다른 그녀의 무던함이 참 생경하게 다가왔다. 경유지에서 찾아볼 수 없던 캐리어의 행방을 주변인들의 평온한 표정으로 미루어 도착지에서 나오겠거니 추정한 채 평온한 마음을 얻었다는 대목에서 나는 ‘말도 안돼’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마인드는 지인들이 ‘걱정 인형’이라고 칭할 만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얼마든지 이런저런 가정을 붙여 언제든지 불안해질 수 있는 나로서는 다시 태어나도 상상도 못할 영역이었다. ‘여행’이라는 영역의 시험이 있다면 이 ‘긍정 마인드’야말로 고득점으로 향하게 해주는 치트키이자 재능이 아닐까 싶다.
‘낙관적인 호구들의 패턴은 늘 이러했다.
이해되지 않는 금액이어도 일단 지불하고,
이해는 우리 둘만 남았을 때 신속히 진행했다’ – P.32
이제는 오래 묵은 기억이 되어 버린 나의 첫 유럽 여행을 돌이켜 보면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이 책에서 전개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온라인 속 정보의 바다를 열심히 헤매며 낚아 올린 정보들로 미지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변수들을 통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매 순간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슬로베니아에서 교통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일화가 문득 떠오른다. 블로그 글을 수십 개 뒤져 찾아낸 교통카드 발권기의 카드 배출 슬롯을 사탕 막대기가 가로막고 있었고, 현금만 낼름 받아 먹은 기계는 무슨 짓을 해도 카드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 작은 사탕 막대기가 당시 나에게는 넘어갈 수 없는 통곡의 벽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느껴졌다. 일행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걱정과 불안으로 과부화 된 뇌를 부여잡고 나는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첫번째 고비는 지나가던 행인의 작은 힌트로 손 쉽게 해결됐다. 온라인에서 교통권을 구매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시도 때도 없이 우리는 곤경의 순간을 맞이했고, 그 앞에서 번번이 사전에 수집해온 대비책은 좌절되고 말았다. 오히려 현장에서 어찌저찌 주워들은 경험과 정보를 통해 허술하게 상황은 해결되곤 했다. 이때 나는 어쩌면 처음으로 여행의 성질을 파악했는지도 모르겠다.
직접 경험한 적 없는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은 그 자체로 변수투성이고 모험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저자처럼 용감하고 당찬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인드로 곤경의 상황을 산뜻하게 마주하다 보면 정말 말 그대로 상황은 어떻게든 풀리고, 그것을 즐김으로써 여행은 추억이 된다.
‘노을이 예뻐 보였을 때,
노을이 노을로 보였을 때,
비로소 여행이 여행이 되었다’ – P.21
여행은 또한 서로 다른 각을 가지고 있는 삼각형인 동행인들이 만나 타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여행 메이트인 ‘박서우’는 여행지마다 노을 스팟과 타이밍을 찾아내는 사람이었고, 저자는 새로운 스팟을 찾아 기뻐하는 그를 향해 다소 밋밋한 감흥을 뱉어 내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여행이 끝난 후 베네치아에서의 여행은 저자에게 아름다운 노을로 기억되었다. 저자 스스로도 박서우의 노을 사랑을 이해하는 그 순간이 비로소 여행을 여행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때라고 회고하였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기 다른 취향과 습관을 가진 타인이 가장 밀접하게 스며들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여행에서 존재하지 않나 싶다.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도, 그것들이 축적되어 갈등으로 향하는 순간들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같은 숙소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여정 위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완전한 원까지는 아니어도 타원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리하여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에게는 조금은 다른 나를 이루는 새로운 취향이 생길 수도 있다. 저자와 같이 새삼 노을의 아름다움을 깨다는 그 지점이 일상에 새로운 환기점을 가져다 주는 지점이자 여행의 즐거움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