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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잘할 수 있지?"

  

어릴 적, 엄마가 나를 두고 외출할 때면 현관문 앞에서 늘 저렇게 묻곤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찝찝한 물음표 하나가 남았다. 혼자서도 잘하는 건 대체 뭘까?


당장은 알 수 없어도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는 미약한 믿음에 기대어 늘 답을 시간에게 미뤘다. 하지만 질문의 빈칸은 저절로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인형을 끌어안지 않아도 잠들 수 있게 되었고, 혼자 지내는 시간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느끼던 어느 날, 농도 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만약에 이 세상에서 나 혼자 남겨지면 어쩌지?'라는 이름의 두려움.


그즈음 처음 가봤던 장례식장의 풍경은 나의 두려움을 더 짙게 만들었다. 현관문을 나선 엄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상상.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혼자서도 잘 사는 법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한 건.


막연하고도 막막했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 처음으로 생긴 버킷리스트 같은 다짐이었다. '혼자서도 잘 살아 보겠다'는 그 마음. 이를 이루기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독립성’을 키우는 거였다. 혼자서도 무엇이든 척척 해낼 수 있다면, 그게 곧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잘 사는 방법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먼저 혼자서는 잘하지 못했던 일들부터 해보기로 했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의도적으로 낯선 공간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도움이 필요할 때도 어쩐지 남들에게 말을 꺼내는 게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나의 다짐을 저버리는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무엇이든 능숙하게 해내야 한다고 믿었다. 나의 목표는 그냥 사는 것도 아닌, ‘잘’ 사는 법이었으니까. 가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도 꾹 참고 능숙해질 때까지 계속했다. 연거푸 실패해도 일단 계속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신기하게도 포기하지 않으면 늦더라도 결국 뭔가 하긴 했다.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혼자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이 생겼다. 손에 닿지 않던 ‘잘 사는 법’이라는 나만의 버킷리스트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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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속 불안은 여전했다. 혼자서도 잘해야 한다는 결의에 찬 다짐은 어느 순간부터 내 발목에 무겁게 달라붙은 모래주머니가 되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뻘 안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내가 놓치고 있던 게 있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아서 머릿속으로 점점 ‘내가 할 수 있을 법한 일’을 먼저 가늠하고 있었다는 것.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나?’ 어느새 보이지 않는 기준이 생겨났고, 위험부담이 적어 보이는 도전들을 고르고 고르게 됐다. 그렇게 나는 이리저리 재고 따지며 내가 맞춘 틀 안에 들어오는 목표만 시도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이번에도 가능성을 계산한 뒤 내 소중한 체력과 시간을 베팅한 선택이었는데, 막상 힘들어지니 포기하고 싶어 지니까 불안해졌다. 내가 내린 결정의 옳고 그름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됐다. 잘 살고 싶어서 시작한 방법인데, 오히려 그 길이 내 마음을 더 곤궁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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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들던 선생님은 상담 마지막 날, 내게 말했다. 나는 혼자가 될 자신이 무서워서 성장에 매달리고 있는 거라고, 내일 더 나아지지 않으면 미래의 내가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불안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고 말이다.


집에 돌아와 나는 그 말을 한참이나 곱씹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정말 두려워했던 건 실패나 외로움이 아니었다는 걸. 실은 먼 미래에 혼자 남겨질 나를, 남들이 아닌 나조차도 사랑해주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는 사실과 직면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본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사랑은 지더라도 끝까지 한편이 되어주는 거라고. 살다 보면 노랫말처럼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을 테고, 내가 선택한 길이 그저 헛수고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거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로 내가 혼자 남겨지는 순간도 오겠지.


그때의 나에게도 내가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준다면 나는 그걸 '잘 사는 법'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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