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는 꿈이나 장래 희망이 보다도 더 태곳적에 존재하는 단어다.
까마득히 멀리서 망설임 없이 크게 그려낼 수 있던 꿈은 한발 다가설수록 추가해야 하는 디테일이 많아졌고, 이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그렇게도 치열하게 밑그림을 그리는 동안 배경을 화사하게 채워줄 버킷리스트는 그려 넣지 못했다.
'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떠오르는 것은 세모난 지붕의 집을 그리던 시절 많기도 많았던, 언젠가는 이룰 거라 확신했던 행복한 상상들이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번뜩이는 상상은 중학교 수행평가로 '쇼앤텔'을 준비하며 달달 외운 세 가지 버킷리스트였다. 그때의 내가 생각하기로, 버킷리스트는 지금 당장 이룰 수 없으면서 다른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경쾌한 것이어야 했다. 지금 돌아봐도 흡족한 버킷리스트들이지만 죽기 전에 꼭 이룬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로 축소해야 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는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 타기'이다. 결국 같은 곳으로 가면서 커튼 하나를 두고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이 총체적으로 다르니 이것이야말로 성공의 상징이라고 여겼던 건지, 그저 컵라면 무한리필에 홀렸던 건지 이게 내 첫 번째 버킷리스트였다. 심지어 정해진 도착지가 없었던 것을 보면 이때의 비행기는 이동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였나보다. 두 번은 안 타봐도 아쉽지 않게 충분히 먼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유효하다면 유효한 항목이지만 비즈니스 정도로 타협을 봐도 괜찮겠다는 합리성과 '부모님과 함께'라는 도리를 좀 더 갖추게 되었다.
두 번째는 '그랜드 피아노 갖기'. 그리고 그 울림이 제값을 할 높은 층고를 가진 전용 홀에 층간 소음 문제도 없어야 하니 언덕 위에 지어진 독채까지 한 세트로 이뤄진 버킷리스트였다. 어떻게 보면 악기 자체 보다는 그것을 포함한 무결한 공간에 동경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많은 상징을 그러쥐고 있는 버킷리스트이지 않나 싶다. 피아노를 그만둔 지는 꽤 됐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버킷리스트다. 이번에도 조금의 변형을 가하자면 '집에 악기 한대 들여놓기' 정도가 될 듯하다.
세 번째는 '외국에서 살아보기'. 마지막 버킷리스트는 내가 상상하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미 이뤘다. 동시에 횟수는 명시하지 않았으므로 진행 중이기도 하다. 해외 취업이나 이민 의사는 전무하지만, 그래서 더욱 대학 시절에 다양한 문화권에서 '거주'하는 경험을 쌓고 싶다. 원래는 유럽에 대한 로망이 컸었는데 지금은 유럽은 물론 중국에 가봤으니 미국도 가봐야 될 것 같고, 베이징을 가봤으니 남방지역도 가봐야 할 것 같은 무한한 욕망이 증식 중이다.
여기까지가 그 시절의 버킷리스트이다. 무작정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모두 '경제적 자유'라는 카테고리로 취합되는걸 보니 속은 참 투명하다.
현시점의 버킷리스트는 떠오르는 게 없다.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를 잠깐 지워내고 보면 오늘 하루, 10월 한달, 앞으로 일년의 캘린더는 빽빽한 목표들로 새까맣다. 수백가지의 목표를 떠받들고 살지만, 버킷리스트를 함부로 목표라는 말로 치환하는 순간 생산성에 눈이 멀어 낭만을 저버리고말게 분명하다.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는 그저 취미로 즐기는 악기하나, 꾸준히 하는 운동하나, 몇쪽의 책과 매일매일 함께하는 것인데, 이것들을 행하는데 지금도 아무 제약이 없다는 점과 이것들이 특별하지 않은 삶을 지향한다는 면에서 버킷리스트로 정하긴 아쉽다.
마지막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최근에는 그림책 워크숍을 하면서 각지에서 모은 그림책을 서가에 한 권 한 권 채워 넣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림책의 언어는 문자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바, 당분간의 버킷리스트는 자석이나 엽서를 모으듯이 세계의 그림책을 모아 나의 공간을 채우는 것으로 삼고 싶다.
설계도에는 무채색의 선만 있어도 그만이지만 굳이 좋아하는 색을 채워넣으며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