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집에서 만화책 ‘자살토끼’를 발견했다. 아주 어렸을 때 읽었던 기억, 중학생 때 읽었던 기억, 고등학생 때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이었다. 자살토끼에는 온갖 괴상하고도 기발한 방식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토끼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작가는 치밀한 관찰을 통해 일상 속 사물에 새로운 의미(주로 섬뜩한)를 부여한다.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과 같이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일상 속 사물의 위험성을 밑바닥에서부터 긁어와 보여주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토끼가 자살을 시도한다고?
처음 이 만화책을 접하면 자연스럽게 토끼의 행동에 집중하게 된다.
별다른 채색 없이 그려져 있는 그림은 단순하고 간단해 보인다. 대사는 한 줄도 없다. 작품 속 토끼들은 코드가 꽂혀있는 토스트기 안에 들어가 있거나, 팝콘 옥수수를 먹으며 프라이팬에 앉아 있거나, 살기 위해 오아시스로 기어가는 인간과는 달리 오아시스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기어간다. 주식 폭락 날 월가의 고층 건물 아래에서 투자자가 투신하길 기다리기도 하고, 때로는 역사적 사건이나 대중문화 속으로 파고들어 패러디를 시도하기도 한다. 예컨대 노르망디 상륙작전 보트에 올라탄 토끼, 히틀러를 향해 V자를 그리는 토끼, 혹은 ‘스타워즈’ 속 오비완 캐노비를 흉내 내는 토끼 등이 그렇다. 죽은 토끼의 모습은 그려져 있지 않지만 죽음을 위해 세운 기발한 계획과 도구를 보면 독자는 충분히 토끼들이 어떻게 됐을지 혼자만의 잔혹한 상상을 펼치게 된다.
특히 사람을 이용한 자살은 더욱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해당 그림에서는 눈물 범벅에 머리는 산발인 여자가 토끼를 째려보고 있다. 토끼가 무엇을 하는 건지 자세히 살펴보니, ‘운명적 사랑’이라는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왜 토끼를 째려보는가? 찢어진 사진을 보면,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토끼는 여자의 감정을 자극해 자신을 죽이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일까? 간단한 이 그림 하나가 갑작스럽게 섬뜩하게 보인다.
토끼는 왜 자살시도를 할까?
온갖 괴상하고도 기발한 방식으로 자살을 기다리는 토끼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궁금증이 든다. 토끼가 자살하려는 이유. 이 토끼는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이렇게 죽고 싶어 하는 걸까? 하지만 토끼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감정을 찾아볼 수 없다. 웃지도, 울지도, 기쁘지도, 화나보이지도 않는 무표정한 토끼가 죽음을 기다리는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나까지 이 잔혹한 자살시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단순히 ‘즐기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나의 오락처럼 말이다. 혹은 아, 이런 자살 방법도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 수 있고, 토끼가 불쌍하다는 접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토끼는 왜 죽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토끼는 삶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자살시도를 하는 걸까? 아니면, 토끼의 삶의 이유 자체가 자살시도에 있는 걸까? 우리는 토끼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저 상황에 처해있게 된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토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토끼의 자살 과정 뿐이다. 우리는 완벽한 타자에 속한다. 어쩌면 토끼가 저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이유가 이것에 있을 수도 있겠다. 완벽한 타자뿐인 세상에 혼자 있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