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 장르를 즐길 때면 항상 조금씩 남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리 몰입해서 공연을 즐겼더라도, 두어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이 끝나면 곧 자리에서 일어나 금방 현실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아쉬움은 곧 여운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소중한 시간을 아주 마음껏 만끽하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바람을 완벽히 충족시켜주는 것이 바로 페스티벌이다. 서울숲재즈페스티벌 2025의 개최 소식을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다. 가을의 초입, 살랑거리는 바람과 함께 여유롭게 재즈를 즐길 기회라니! 나무 그늘 밑에서 부드러운 선율을 듣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다.

페스티벌 당일은 불쾌감 없이 쨍쨍한 햇빛과 하얀 구름이 유독 눈에 선명한 날이었다. 현장으로 향하는 동안 마주치는 모든 광경이 아름다웠다. 주말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 산책하는 강아지들, 웃음소리와 음악이 한데 섞여 순간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조금 이르게 벅차오른 기분과 함께 스테이지로 향했다.
가장 먼저 감상한 건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후지와라 사쿠라의 무대였다. 보컬을 포함해 3명으로 이루어진 세션이었지만, 절대 단촐하지 않았다. 후지와라 사쿠라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느긋하고 편안한 세션의 연주가 그날의 분위기와 꼭 맞아들었다. 양산을 쓰고 잔디밭에 풀썩 앉아 박자에 맞춰 이리저리 움직이고, 박수를 치는 관객들. 그리고 그에 호응하듯 정성껏 노래하는 아티스트. 조금 뒤에 서서 그들이 이루는 합을 지켜보고 있으니 50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무대에 흠뻑 빠져있는 동안에는 자각하지 못했는데, 다리가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페스티벌 공연의 묘미는 특유의 자유도다. 공연 시간을 놓칠까봐 긴장하며 나서지 않아도 되고, 조금 힘에 부치면 적당히 쉬다가 다시 스테이지로 향해도 괜찮다. 조급해질 필요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현장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다음 스테이지로 바로 향하는 대신, 잠시 피크닉 매트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숨을 돌렸다.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의 울퉁불퉁한 감촉, 나뭇잎 스치는 소리. 뭘 먹어도 기분이 나는 환경이었다. 주변을 조금 둘러보니 가볍게 와인을 마시거나, 책을 읽으면서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재즈 선율을 배경음악 삼아 사락사락 책장을 넘기는 모습에 절로 마음이 평온해졌다. 스테이지와의 적당한 거리가 오히려 음악을 더욱 오래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조금 기운을 차린 뒤에는 포토존과 행사 부스들을 둘러보았다.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2025 한정 MD 부스, 가벼운 음료나 경품을 얻어갈 수 있는 부스 등 음악 외적으로도 현장을 즐길 만한 요소들이 인상적이었다. 이외에도 으레 페스티벌 하면 떠오르는 '고생길'을 최대한 줄이려는 세심함이 눈에 띄었다. 스테이지 간 거리도 지나치게 멀지 않았고, 환경을 생각한 다회용기 반납 및 대여 시스템도 체계적이었다.

페스티벌 구석구석을 즐기다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무대와 좀 더 가까운 잔디밭 중앙으로 자리를 옮기고 본격적으로 무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실 일부러 집중을 하려고 했다기보단, 절로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알 디 메올라의 무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멘트마저 최소화하고, 악기와의 교감에 골몰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조용해졌다. 테크닉은 물론, 한순간에 분위기를 휘어잡을 정도의 몰입감을 이끌어내는 연주였다.
햇볕을 맞으면서 여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도 있고, 저물어가는 노을과 함께 감상에 젖을 수도 있던 다채로운 페스티벌. 그 마지막 대미는 가수 이소라가 장식했다. 사랑과 슬픔을 이토록 섬세하게 노래하는 이가 또 있을까? '난 행복해'를 시작으로, '청혼', '제발' 등의 명곡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떼창을 듣고 싶다는 아티스트의 요청에 살풋 웃으면서도, 시를 읊듯 애처롭게 이어지는 소절들에 금세 입을 다물고 생각에 푹 잠기기 시작했다. 기분 좋을 정도의 재잘거림이 가득했던 서울숲에는 약간의 진지함마저 감돌았다.

팔에 닿는 바람이 조금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하던 저녁, 차분한 노랫말을 곱씹으며 바라본 하늘은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파랬다. 이 적당함처럼, 때론 짧은 시간 동안의 강렬한 몰입보다 느슨함 속의 자유로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런 마음을 담아내는 듯한 즉흥적인 재즈 선율에 하루 종일 몸을 반쯤 파묻고 있을 수 있는 여유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주말 하루를 온전히 써버렸지만, 전혀 소모적인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맞이한 페스티벌의 끝에는 아쉬움이나 허무함보단 충만함이 가득했다. 잔잔한 웃음기와 함께, 돗자리를 앞뒤로 흔들며 역을 향해 걸었다. 숲을 나서는 내 곁에는 마찬가지로 비슷한 행색을 하고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여유로운 발걸음과 은근히 감도는 미소를 보면서, 아마 내년 이맘때에도 이 여유를 다시 한번 찾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