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겁고 활기찼던 여름을 지나 차분하고 사색적인 가을이 왔다. 이 가을의 분위기는 여름 내 잊고 있었던 서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재즈를 떠오르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가을엔 곳곳에서 재즈페스티벌이 열린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가을의 재즈 페스티벌들에 눈을 돌린다.
재즈 페스티벌은 온 감각으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다. 초록색이 빠져가는 나무들, 선선해진 바람, 파랗고 높은 하늘. 이 모든 자연의 경관은 실내 공연장의 장치들보다 풍부하고 풍성하다. 여기에 자유롭고 즉흥적인 재즈의 선율, 소울 가득한 가수의 목소리가 더해진다면 더욱 풍요로운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이번에 다녀온 페스티벌은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이다. 2017년부터 서울에서 가을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는 ‘Nature, Music&Love’를 슬로건이다. 슬로건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연과 음악 그리고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우리가 재즈페스티벌로 향하는 축약된 이유 그 자체인 것 같았다.
그저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 의미를 다할 수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9월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열렸는데, 나는 20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마이크스턴밴드, 아론팍스 리틀빅, 스텔라장, 비츠냅, 더 사운드 오브 얀씨 클럽, 전자공방×난아진, 유호정 재즈 바이올린 훅, 임채희 트리오를 만날 수 있었다.
재즈를 단순히 좋아만할 뿐, 심도 있게 알지는 못해 페스티벌 라인업의 곡들을 많이 들어보려고 했다. 조금이나마 귀에 익으면 더 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준비는 통했다. 들어본 듯한 멜로디가 흐를 때면 행복감은 배로 커졌다.
그 중에 비츠냅의 “베스트드라이버”라는 곡이 인상 깊었다. 햇볕 드는 서울숲을 내리쬐는 듯한 밝은 템포가 모두의 흥을 올리는 듯 했다. 돋보이는 색소폰, 방향이 있는 듯 없는 예측할 수 없는 자유로운 기타 선율, 전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키보드, 가슴 뛰게 하는 드럼의 소리까지 이곳 저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드라이버가 된 듯했다. 모두가 잠시나마 현실은 잊고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좋았다.
비가 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선명하게 느껴졌던 자연의 향기에 취해있을 때 쯤, 스텔라 장의 무대를 만났다. “어떤 날들”, “L’Amour, Les Baguettes, Paris”, “빌런” 등이 흘러나왔다. 주말의 평온함과 함께 파리의 공원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풍경이 로맨틱하고 따뜻하게 보였다. 음악이 조급했던 나를 잔잔하게 만들고, 불평을 내려놓고 사랑을 느낄 수 있게끔 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여유를 찾는 시간을 가졌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포인트는, 공연 중간 중간 관객석 사이를 누볐던 어노잉박스의 퍼레이드이다. 하나의 이벤트처럼 관객들은 모두 즐거워했고, 낭만이 극대화되는 느낌이었다. 관객들은 이 행진을 따라다니며 재즈를 즐겼다.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이 관객들의 행진마저 재즈의 일부 같았다. 틀에 벗어나도 문제가 되지 않고 재즈의 한 부분이 되는 것처럼, 정형화되지 않은 연주자나 관객들이 모두 재즈의 선율처럼 보였다.
서울 빌딩 숲에서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될까. 날 좋은 주말이면 한강을 찾는 것처럼 사람들은 도시로부터 조금은 해방되는 시간을 싶어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경관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고 값질 것이다. 잠시나마 번잡함을 내려놓고 내 안의 고요함과 평안함을 찾게 도와주는 가을의 숲, 향기, 자연에게 감사했다.
또한 젊은이들 위주의 축제가 아니라는 것에도 매우 좋았다. 나이 드신 분들도 함께 어우러지며 와인 잔을 부딪히고, 어린이들이 뛰어다니며 서울숲을 누빈다. 이 페스티벌에는 ‘펫 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귀여운 강아지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개를 돌리는 곳 마다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 투성이였다. 가장 원초적인 행복을 만날 수 있는 페스티벌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행복은 가까이가 아니라 먼 곳에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지방에서 오로지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을 위해 올라왔는데, 이 말에 적극 공감하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가을을 채우고 재즈를 마시는 시간, 잊지 못할 9월의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