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낡은 옛 다이어리 맨 뒷장에는 어렸을 적 나의 소원들이 쭉 나열되어 있다. 지금은 그 다이어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 리스트를 쓰고 보았던 기억은 아주 선명하다. 보통은 100가지를 적는다지만 그때 나의 세상은 다소 작았기에 50도 채 채우지 못하고 20 언저리에서 숫자가 끝났다. 그리고 숫자 하나마다 할당된 소원도 작디작았다.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보자면 ‘20살 전에 혼자 여행 가보기 (이왕이면 바다로)’, ‘일본 여행 가서 당고 먹기’, ‘게임 캐시 패키지 구매하기’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때 당시 1인 1닭 붐이 일었던 탓에 ‘1인 1닭 해보기’까지 적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치킨 한 마리를 혼자서 다 먹어 치우겠다는 각오는 아니었고, 언제나 가족과 치킨을 나눠 먹으면 좋아하는 부분들을 나눠야 했기에 생기는 아쉬움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그 리스트들을 떠올리면 이제는 너무 손쉽게 이룰 수 있어 웃음이 나오는 것들이 있는 반면, 아직까지도 이루지 못해 놀라운 부분이 있기도 하다.
그때에는 그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다. 되돌아보면 웃기지만 난생처음 ‘1인 1닭’을 하게 되었을 때는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의 행복을 느꼈었고, 그 만족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이야 당장 치킨 한 마리를 사서 혼자 다 먹어 치우는 건 일도 아니지만 그땐 그랬다.
지금 버킷리스트를 다시 작성해 본다고 하면 어떨까. 당장 떠올려 보면 추후 진출할 업계에서 명확한 성과 내보기, 통장에 1억 모으기, 주식으로 N 원의 수익 내보기 같은 것들이 있다. 이렇게나 사람이 물질적으로 변할 수 있나 싶다가도 뭐, 그게 하고 싶어진 걸 어떡하나 싶기도 하다.
맨 상단에 적힌 글씨가 ‘버킷리스트’라서 그런가, 더 거창한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도 있다. 사소한 목표들이 없는 건 아닌데, 적자니 약간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그게 정말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인가,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미떼 한 통이 그렇게나 커 보여서 ‘꼭 사보고 싶은 물건’에 들어갔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더 고민하게 된다. 내가 진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이지.
일단 제일 먼저, 집을 갖고 싶다. 자가 소유가 아니더라도 온전한 나의 공간. 나의 취향을 백퍼센트 녹일 수 있는 공간이 갖고 싶다. 그러려면 자가인게 편하지만 그렇게 빨리 달성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주어진 공간에 나의 취향과 색깔을 반영하는 법을 찾아내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 공간에 노란 조명을 설치하고 싶다. 노란 조명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조명빛을 받으며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것도 놓치기 싫은 낭만 중 하나다.
공간 한켠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과 만화책, 음악 앨범들을 빼곡히 놓아두고 싶다. 관리는 제쳐두고, 딱딱한 양장본 책들이 줄지어 꽂혀있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만족스러울 것 같다는 게 이유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그림에는 책이 빠질 수 없다. 그다지 열렬한 독서인은 아니지만, 이 또한 되고 싶은 모습이기에 그렇다. 그러면 버킷리스트에는 먼저 ‘1년에 책 10권 이상 읽기’로 적어야 할까.
여행, 여행은 빠지지 않고 여건이 된다면 떠나고 싶다. 사실 여행지는 잘 모르지만, 온난한 기후였으면 좋겠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호주다. 시드니의 거리에서 커피를 마셔보고도 싶고, 베이글이나 머핀도 빼놓을 수 없다. 외국 마트를 구경하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버킷리스트에 적는다면 ‘호주 마트 구경하기’가 될 것 같다.
이 외에도 하고 싶은 일들을 꼽아보니 의외로 수없이 많았다. 이 모든 일들이 버킷리스트에 들어갈 만한 일인지, 그렇게나 하고 싶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느낀 점은 그 규모가 작든 크든 ‘결국 내가 해야 일어나는 일’이란 점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소원 성취 리스트’가 아니라 ‘버킷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이 리스트를 적는 이유를 약간 깨달은 것 같았다. 이건 어떤 요정이 별안간 나타나서 이루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는 게 아니라, 이 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나를 생각하며 적는 것이었다. 과거 어릴 적 나는 점점 책임을 지고 능력을 갖출 미래의 내가 해내길 바라며 그 리스트들을 적었을 것이고, 지금의 나도 조금은 게으른 마음으로 이다음 미래의 내가 이 목표들을 해내 주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금의 내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가 대신 이뤄주지 않는 이 버킷리스트가 진짜 이루어지길 원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러니까 버킷리스트는 사소해도 된다는 결론도 동시에 도출된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굳이 거창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어차피 내가 할 일들인데 뭔 상관인가 싶다.
사소한 이야기지만, 사전에 이 주제에 대해 AI에게 물어보니 ‘‘평범함’도 버킷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란 주제를 던져주었다.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평범함’도 거저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평범해지기 위해서 온종일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 귀찮음을 아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사는 것’ 또한 충분히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일만 하다. 내가 위에 나열한 장면들도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가.
결국 크든 작든 인생에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기필코 그 목표를 손에 쥐었을 때 마음껏 만족하는 것. 죽기 전까지 반복할 인생의 매커니즘이다. 사람들은 이 매커니즘에 ‘버킷리스트’란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
그럼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리스트에 줄을 치며 살 수 있을까. 오늘의 목표와 내일의 목표가 다르더라도 상관없다. 막상 그 결과가 그닥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남는 것들은 무조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줄을 그어가며 사는 인생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