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실려 덜컹거리는 두 시간. 팔이 맞닿는 것이 싫어 필사적으로 몸을 구겨야 하는데도 이 공간이 열차의 비명이 아니고서는 참으로 조용하다는 것이 때론 낯설게 보인다.
세상은 사람들로 포화했고 사건사고로 매일이 시끄럽다. 동시에 어딘가에는 외로움에 못 이긴 사람들을 위한 병원이 있고, 자기만의 방을 표방하고선 나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 세상이 있다. 누구든 한 번쯤 겪어볼 법한 일들로 언젠가 누군가는 고독에 잠기게 됨을 대개는 모를 것이다.
나를 봐 줘, 라는 귀엽고 애절한 눈초리는 어째서 심각해지고 이름에서부터 완고한 ’고독‘이란 것이 될까? 거기에 빠진 사람들은 어째서 빠져나오지 않고, 고독하게 숨을 거둘까? 무엇이 사람을 절대적인 외톨이가 되게 만들까?
<외로움의 함정>에서 인상 깊을 내용 중 하나가 그것이다. 어떻게 외로움은 고립으로 심화되는가? 이는 세 단계로 설명되고, 단계별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일상적 단계의 외로움이다. 누구나 일상에서 겪곤 하는 사건에서 유발되는 것이 이것이다. 예컨대 회사에서 어울리지 못하거나, 자신 빼고 모든 친구가 잘나가고 있어 위축되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자기 자신도 스스로의 실수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괴로웠던 순간들이 있다. 혹은 말 그대로 혼자 있는 상황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요컨대 자신이 남들과 외따로 떨어진 존재처럼 느껴지는 상황. 이런 경우에 우리는 일상적인 외로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이는 상대적으로 쉽게 해소될 수 있는데, 가볍게 쇼핑을 하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도 있고 나를 깊이 이해하는 상대를 만나 고충을 털어놓으며 위로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단계의 외로움이 종종 우리를 괴롭히더라도 마음의 상처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어지는 두 번째 단계는 심화된 외로움이다.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과 이별하거나 이사를 가게 되어 주변의 모든 환경이 변화하거나 실직을 당하는 등 가족관계의 변화, 사회관계의 축소, 소득 감소 등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 앞선 단계보다 외로움이 깊어진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이제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다행히 여기에도 방법은 있는데, 외로움이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해결되거나 그 사건을 바라보는 개인의 시각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책에서는 실직 탓에 자신감이 위축되었다면, 다시 소득이 올라가도록 기다리거나 돈보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식으로 마음을 바꿔보라는 조언을 제시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방법으로 해소되지 못하는, 개인의 힘으로는 결코 되돌릴 수도 없으며 오래도록 깊고 묵직한 상처를 남기는 사건도 있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선 이전과 같이 그를 내 곁으로 되돌아오게끔 하겠다는 다짐은 말도 안 되고, 그러한 상실감도 괜찮다는 식의 속 편한 사고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경우 그들은 전문 심리상담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거나, 혹은 사건 이전과 비슷한 상황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뼈저리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눈물겹도록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하겠지만, 자신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을 통해 이전 단계로 되돌아갈 여지가 아직 남아있다.
세 번째 단계로 들어서면 더 이상 외로움이라는 단어로 담을 수 없다. 이제 그들은 고립적 외로움을 끌어안은 채 생존의 문제에 놓이게 된다. 앞선 심화적 단계에서 전문가의 도움으로 외로움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거나 큰 스트레스 사건을 겪고 부정적인 자기 인식이 확대된 이들은 더 이상 이전으로 되돌아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생활로 되돌아가기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저 자기만의 골방에 틀어박히며 사회적으로 완전히 단절되게 된다. 고립적 외로움은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고, 최종적으로 고립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고립적 외로움의 가장 위협적인 측면은, 자기 자신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의미한 존재라고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기는 무능하고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강력한 인식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당연하게 스스로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으며 반대로 청해오는 도움의 손길도 거부하게 된다. 그들에겐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마음의) 자물쇠"가 단단히 매였다.
비에 젖은 불씨가 사그라들듯, 그들의 생명력도 가늘어진다. 청결을 유지하며 때에 맞춰 적절한 식사를 하고 병에 걸리면 치료하려는, 생명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도 등한시하게 된다. 서서히 닥쳐오는 생명의 위협에도 무심해지는 것이다. 살아있지만, 죽어가는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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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절망적인 진전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우선적인 과제는 일상적 단계의 외로움을 잘 다루어내는 것이다. 책은 자신이 어떤 계기로 다음 단계로 진전되는지 파악하고 위기가 닥쳤을 때 실행하여 외로움의 진전을 예방하도록 추천한다. 나아가 상황별로 자신에게 잘 맞는 대책을 확인해두는 것도 좋다. 학교와 회사에서 잘못했을 때, 모임에서 어울리지 못했을 때,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위축되었을 때를 떠올려보고 그때 외로움을 어떻게 해소했는지 기억해두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비슷한 사건을 다시 겪을 때 과거의 대책을 사용하여 외로움을 해소해야 한다. 물론 죽음과 이별과 같은 라이프 이벤트를 미리 대처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상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자신을 달래는 일이다. 그러한 적극적 대처가 해당 순간 자신을 위한 길이며, 동시에 미래의 큰 감정적 동요를 예방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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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개인적 차원의 외로움과 고립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인의 외로움을 개인의 영역에서 해치우라는 정없는 이야기로 맺음되어서는 안된다.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특정 개인 또는 세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립은 세대를 막론하고 발생하는 사회 현상이자 사회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일상적 외로움 이상의 단계에 놓인 채 고립으로 향하는 이들을 발견하고 고통이 심화되지 않도록 돌보고 관리해야 한다. 자력으로 회생하기엔 버거운 그들에게 손을 내밀자고 <외로움의 함정>은 제안한다.
고립은, 고독사는 조용히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 한 번 뻗치지 않고, 소리 없이 숨을 거둔다. 사람들이 어떠한 일로서 죽어가는데 세상은 왜 이렇게나 조용한가? 이 불길한 고요, 불편한 침묵이 무언으로 호소한다. 사그라드는 목소리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