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복판 광화문, 그리고 그곳에 자리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7세기 고전소설 <최척전>이 연극 <퉁소소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최척전>은 조선 광해군 대에 서포 김만중과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 이식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작품으로, 전란 속 가족의 흩어짐과 재회를 다룬 한국 고전 서사문학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이번 무대는 그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쟁과 피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사랑과 의지를 그려낸다.

연극 <퉁소소리>는 평범한 삶을 살던 한 부부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통과하며 겪는 파란만장한 여정을 따라간다. 조선의 수많은 백성들이 그러했듯, 이 부부 역시 집과 일상을 잃고 타국으로 끌려가며 수없이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기가 막힌 우연과 억누를 수 없는 집념, 그리고 가족을 절대 놓을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이 그들을 다시 묶어주며, 끝내 재회를 이루고 평화를 되찾는 순간까지 관객을 이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전쟁의 아픔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 울림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이 닿는다.
연애와 결혼의 세계에서 흔히 말하는 ‘상황 이별’이 그렇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외부의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순간을 뜻한다. 내 주변에도 그런 이별을 겪은 이들이 있다. 유학이나 해외 이주 때문이기도 하고, 바쁜 업무나 가정 형편 때문이기도 했다. 관계는 언제나 외부 상황에 흔들린다. 우리는 그 속에서 “간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수많은 핑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때 연극 <퉁소소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에게 거울이 된다. 극 중 부부는 전란이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찾아 나선다. 세상이 무너지고 삶이 송두리째 흔들려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만나기를 택한다.
그들의 선택은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무수한 가능성을 접어버린 우리의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바빠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미뤄두었던 만남과 기회들 말이다.

뿐만 아니라 <퉁소소리>는 연출과 무대 구성에서도 인상적인 선택들을 보여준다. 전쟁의 소리가 멀리서부터 점점 커지는 듯한 음향 효과,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조명, 그리고 흩어지는 그림자를 적극 활용한 무대 미술은 관객으로 하여금 시대의 혼란과 인물들의 아픔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 무대 전반을 가득 채우는 한국 전통 악기의 소리는 우리를 마치 전래동화 속 장면에 몰입한 듯한 기분으로 이끈다. 말 없는 장면에서도 무대 위 조형물이 던지는 여백, 배우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파편처럼 흡수된다. 이러한 시각적·청각적 장치들은 단순한 배경 묘사를 넘어 ‘상황’이 인물들을 어떻게 압박하고, 어떻게 분리시키며, 다시 어떻게 연결시키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은 세밀한 인간 드라마로 관객의 마음을 깊이 파고든다. 배우들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외부 상황 속에서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절망과, ‘가족을 되찾겠다’는 간절함 사이를 오가며 고뇌한다. 그 과정에서 부부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그리움, 타향에서의 외로움이 서로 포개진다. 감정은 ‘헤어짐’을 거듭하며 날카로워지고, 마침내 재회를 이루는 순간에 터져 나오는 감격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울림을 남긴다.
이처럼 <퉁소소리>는 기가 막힌 우연에 기대지 않고, 인간의 내면과 삶의 결을 신뢰하며 쌓아 올린 감정의 여정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결국 <퉁소소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내는 이야기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포기하지 않았다면 다른 결말을 만들 수 있었을까.
퉁소의 울림처럼, 이 질문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며 관객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