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구석이 있다는 건 어쩌면 행운이다. 이때 그 형태는 유형일 수도, 무형일 수도 있다.
당신의 기댈 구석은 무엇인가? 나에게 그것은 음악이었다. 사소하지만 동시에 강렬하고, 선명한 것. 플레이리스트 어딘가에 소중히 담긴 단 몇 곡은 때때로 어느 날의 나를 다시금 일으켰다. 신기했다. 형체 없이 떠도는 음악이 마치 나를 다독이는 듯한 손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어떤 이도 찾을 수 없을 때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어깨와도 같은 존재, 나는 지금 그런 기댈 구석에 대해 슬그머니 이야기해 보려 한다.
Peace N' Rock N' Roll - 체리필터
헛것을 믿지 않지만, 종종 일부러 미신의 뒤로 숨는다. 이를테면 네이버에 ‘오늘의 운세’라고 검색하여 나오는 짤막한 운세라던지, 일본의 오하아사(별자리 운세) 같은 것들 말이다. 때로는 그런 사소한 미신이 나에게 어떠한 확신 혹은 용기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이와 비슷하게 필자가 근 몇 년 동안 열렬히 추종하던 미신이 있으니, 바로 새해 첫 곡이다.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상에서는 1월 1일이 될 때면 자신이 원하는 그해의 모습과 닮은 곡을 가장 먼저 듣는 행위가 유행하게 되었다.
조금은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가오는 새 시작의 염원을 곡에 담아 귀 깊숙이 흘려보내는 이 미신을 철저히 지켜왔다. 해마다 첫 곡으로 선정했던 노래들을 이제서야 다시금 돌아보면 당시 내가 원했던 자신의 형태가 어렴풋이 떠올라 제법 흥미롭기도 했다.
2025년 1월 1일.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꺼내 든 노래는 체리필터의 ‘Peace N' Rock N' Roll’이다. 이 곡을 처음 마주했던 그날을 잠시 떠올려 보겠다. 체리필터, 아마 이걸 보는 당신도 익히 알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한 국내 밴드이다.
어느 겨울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여담이지만 당시 필자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연유는 밝힐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 시절 나의 매일은 태양 없는 세계 속에서 빛을 한사코 기다리는 사람과도 같았으리라. 그때 여러 음원을 방황하던 중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누구 앞에서건 당당한 모습이길
떨어뜨린 너의 꿈을 주워야 하잖니?
소리쳐봐
네 맘속에 분이 다 할 때까지
언제나 너만의 자유를 믿어
- Peace N' Rock N' Roll 中
노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음껏 소리쳐보라고, 너만의 자유를 믿는다고. 그들은 꿈을 온전히 끌어안기보다도 떨어뜨린 꿈을 몇 번이고 주울 수 있길 바라준다. 늘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그럼에도 당당히 존재할 수 있기를, 살아볼 수 있기를 염원한다. 몇 차례를 곱씹었다.
그 겨울 나는 체리필터의 정규 4집 2번 트랙을 반복했던 것 같다. 태양 없는 세상에서 인간으로부터 빚어진 한 줄기의 빛을 목도한 기분. 빛은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1월 1일 오전12시에 다시 재생했다. 그토록 아끼던 이 노래가 나의 자화상이 되길 바라며.
청춘 - 오월오일
당신이 떠올리는 청춘은 어떤 모습인가? 유일하고도 특별한 단 한 번의 순간, 팔레트 위에 청춘을 놓아야 한다면 그 색채는 찬란하고도 푸른색에 가까울 테다. 대개 묘사되는 청춘이란 그렇다.
다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청춘이란 어떠한 정답도 없는 것. 기필코 그래야만 하는 시절이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어떤 이의 청춘은 빛보다는 그늘에 가까울지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하루의 일부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청춘은 하얀 마음을 타고
그곳을 달려가는 거
아쉬운 대로 달려가는 거
사실은 청춘 뭐 없네
툭 하고 터져버린 울음 앞에
뚝 하고 그만 우는 거
입술을 꽉 깨물고 남들처럼
웃으며 살아가는 거
-청춘 中-
이를 발화해 주는 노래가 있다. 국내 인디밴드 오월오일의 ‘청춘’이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늘 그들이 말하는 청춘을 재생하곤 했다. 청춘이란 울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그냥 살아 보는 것. 이 사실을 타자에게서 듣는 게 어떤 날에는 그리도 위안이 되었다.
무엇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에 들었던 노래, 멍하니 곡을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다시 살아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