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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전쟁은 우리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는다.’ 오늘을 평화라고 너무 성급하게 말하면서,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애써 외면하면서, 우리는 이런 얘기를 너무 쉽게 한다. 정작 전쟁에서 무언가를 정말로 빼앗긴 사람은 끔찍한 충격에 말을 잃게 됐거나, 포화를 피하지 못해 이미 죽음을 맞이했을 테지만. 어쨌거나 우리가 지금 전쟁에 대해 배우고 있는 것은 그것이 빼앗은 것에 대한 사실적 기록들이다. 전쟁은 거대하고 끔찍한 비극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역사와 숫자를 통해 먼저 배운다.


그러나 전쟁이 단지 역사적 텍스트와 차가운 숫자들을 통해 거대한 규모를 재현하며 다뤄지는 것에만 그친다면 그 속에 있는 작은 슬픔들, 실제로 무고한 삶을 다치고 죽고 사라졌던 작고 처절한 비극들은 희미해진다. 그 작음을 기억하는 것, 전쟁이 빼앗은 작고 사소한 그 모든 것마저 기억하는 것, 그것은 예술이 오래도록 반복하고 있는 일들 중 하나다.


연극 <퉁소소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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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땅에서 무료한 날들을 보내던 젊은 최척(박영민)의 고민은 이것이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것. 왜란의 전운이 아직 감돌고 있는 조선에서 그토록 한가하게 내뱉던 최척의 푸념은 조만간, 아주 빠른 시일 내에, 강한 소망으로 변모될 테다. 차라리 재미없는 삶이 그리워지는, 평범한 삶에 대한 간절한 기원. 글공부를 하며 세상을 배우던 최척이 옥영(정새별)과 사랑에 빠져 혼인하고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던 정유년 어느 날, 조선 땅을 재차 침략한 왜에 의해 전쟁이 다시 발발한다. 최척과 그 일가는 평범한 삶을 덮쳐온 전란을 피해 뿔뿔이 흩어지고, 서로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긴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수많은 죽음이 낭자한 땅을 벗어나 흩어진 최척의 가족들은 천신만고 끝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최척과 옥영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타국의 장수에게 몸을 의탁하거나, 뱃사람이 되어 억척같이 살아간다. 이처럼 생존은 삶에 대한 개별적 의지와 처절한 노력이 결실을 맺는 영역일지 모른다. 다만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의 재회는 기적이 개입해야 하는 영역일 테다. 최척과 옥영이 먼 타국 베트남에서 재회하고, 또 다른 전쟁에 의해 다시 헤어졌다가, 마침내 모든 가족들이 그리운 고향에서 재회하는 극중 사건들은 수많은 우연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늙은 최척(이호재)이 소설 같은 자신의 일대기를 들려주는 연극의 형식은 사실과 환상을 섞은 설화를 전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연극 <퉁소소리>는 서사에 우연과 운명이 개입하는 해결 방식을 통해 리얼리즘과 판타지 장르의 경계에 안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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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퉁소소리>는 전쟁이라는 소재를 빌린 한 편의 판타지 소설에 불과한 것일까. 다만 연극은 리얼리즘을 위한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두는데, 이별과 재회의 과정을 연결시키는 요소들이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 주로 사람의 힘이라는 것. 나라와 민족을 초월해서 전하는 연민과 도움, 기꺼이 눈물 짓게 만드는 사연들에 대한 인간적 공감. 괜찮지 않은 세상에서 ‘메이꽌시’, ‘다이조부’, ‘괜찮다’고 각자 다른 말로 같은 용기를 주는 모든 사람들과, 그 용기를 통해 끝까지 살아보기로 결심하는 일들이 만들어낸 과정과 결말이라면, 이것은 허구적 기적의 서사가 아니라 사실적 극복의 서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우리의 민초들은 그런 방식으로 절망을 극복하며 살아왔다는 것. 전쟁의 반대말을 하나 더 추가한다면, 인류다.


전쟁은 우리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고, 너무 적은 것들을 준다. 전쟁이 주는 것은 전쟁이 빼앗은 것들에 대한 소중한 감각, 평화에 대한 절실한 갈망이나 일상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다. 전쟁이 뒤늦게 준 너무 소중한 것들에 대해 다시 말하는 것이 예술의 일이다. 전쟁의 비극을 다룬 예술은 이미 너무 많지만 언제나 부족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최척은 퉁소를 분다. 길고 좁은 통 안에 공기를 울리면서 소리를 내는 퉁소처럼, 누군가는 닫힌 곳에서 울면서, 울리면서, 그렇게 끝내 살아서 소리를 낸다. 최척이 부는 퉁소는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위로이자, 죽어간 이들에 대한 애도의 소리다. 다시는 전쟁이 있어선 안 된다는 아름다운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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