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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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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집에서

 

 

나에게는 잃어버린 옛 취미가 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2020년에서 2022년 사이. 내 갤러리 속에는 사람보다 자연이 더 많았다. 하늘, 나무, 강,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들까지. 지금처럼 웃긴 짤이나 친구들과 찍은 사진으로 가득한 앨범과는 사뭇 달랐다. 마스크 의무 착용, 인원 제한, 거리두기. 당연시되는 일상에 제약과 제한이 따르던 시절. 밖으로 나가도 할 수 있는 거라곤 집 앞 산책로를 따라 옆 동네까지 걷는 일뿐이었다. 쇠창살 없는 감옥 같은 집에서 내게 주어진 자유는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하늘이 그렇게 예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시 시절엔 늘 고개를 숙인 채 글자와 씨름하느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틈이 없었다. 교실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집으로. 쳇바퀴처럼 굴러간 일상에서 기억되는 하늘은 늘 어두컴컴한 모습이었다. 코로나가 찾아오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 평소라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을,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을 시간. 저녁이 되면 핸드폰을 집어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구름 모양만 모아도 오늘 노을이 아름다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노을이 예쁘면 자기 전까지 행복했다. 그렇게 모은 사진들이 갤러리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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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집앞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봐도 제법 잘 찍었다 싶은 사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사진 계정을 만들었다. 친한 친구들 몇 명만 알고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곳에 일상에서 포착한 아름다운 순간들을 올렸다. 거창한 장면은 아니었다. 밤거리에 빛나는 가로등 불빛, 황금빛 노을 뒤로 드리운 나무 그림자, 벚꽃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 그런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아름다운 순간 말이다.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한 삶이 조금씩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 건 아마 사진 덕분이었을 것이다.

 

사진 계정은 생각보다 큰 반응을 얻었다. 친구들이 장난처럼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기분을 돋워주기도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그때부터 집 근처를 넘어 도시 외곽으로 답사를 나가기도 했고, 여행을 떠나게 되면 평소라면 찍지 못할 사진을 남길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답사 준비물은 핸드폰 카메라 하나였다. 장비는 단촐했지만 상관없었다. 당시의 내가 자기합리화처럼 말하고 다닌 말이 있었다. 사진은 찍는 게 아니라 그리는 거라고. 구도만 멀쩡하면 부족한 부분은 보정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고,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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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망상에서 

 

 

여행의 목적은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편히 쉬려고 떠난 여행에서 정작 쉬지 못했다. 한 손에는 핸드폰, 다른 손에는 보조 배터리. 먹잇감을 쫓듯 촬영 스팟을 찾아다니며 같은 풍경을 수십 장씩 눌러 담았다. 그중 몇 장만 건진다 해도 괜찮았다. 2022년 여름, 망상해수욕장에 갔을 때도 그랬다. 여행마다 비를 몰고 다니는 날씨 요괴답게 그날도 비가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한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게 됐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도중에 뛰쳐나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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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7월 거제에서

 

 

모두가 여행을 추억하는 나름의 방법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촬영한 사진을 수시로 보는 것이다. 사진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시간이 흘러 잊힌 기억들이 한 장의 사진만으로 금세 살아나는 걸 보면. 밟고 있던 모래사장의 촉감은 어땠는지, 내리쬐는 뙤약볕은 얼마나 뜨거웠는지, 카메라 뒤에 있었을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기억의 파편들이 한꺼번에 제자리를 찾는 경험을 한다. 나에게 사진은 잊고 있었던 과거의 촉감과 냄새, 그 모든 것들을 간직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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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8월 제주에서

 

 

나중에는 관광 사진 공모전에 작품을 내기도 했다. 동네 공원에서 찍은 사진 두 점과 제주와 거제의 풍경을 담은 사진 두 점. 이전 당선작들에 압도되는 바람에 잠시 기가 죽기는 했지만, 내심 기대했던 덕분일까. 운이 좋게도 한 작품이 예선을 통과했고, 그 사실만으로도 한동안 설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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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제주에서

 

 

그렇게 열정적이던 사진이 왜 지금은 옛 취미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코로나 이후 사진보다 더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들에 눈과 손이 먼저 갔기 때문일 것이다. 핑계는 아주 많다. 바깥세상보다 화면 안에 있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날이 많아져서. 길거리에 북적이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자연의 고요보다 더 익숙해져서. 전문 장비로 촬영한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껴서.

 

핑계라면 차고 넘치지만, 결국 애정이 서서히 식은 탓일 테다. 다만 글을 쓰며 돌아보니 취미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취미는 사라질지언정 취미로 얻은 습관과 가치관은 여전히 사람 몸속에 배어있는 것 같다. 사진 덕분에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풍족하게 만끽할 수 있었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크게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런 아름다운 삶이라면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문득 다시 카메라를 들고 싶어진다. 무모하더라도 맨몸으로 뛰쳐나가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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