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요일이라는 이끌림
돌이켜보면 그렇다. 그들이 현악기 곁에 ‘상주’하게 된 것도, 내가 오늘의 글을 ‘쓰게’ 된 것도 모두 필연이겠다. 갑자기 무슨 낭만적인 단어냐 싶겠지만, 9월 4일의 ‘현악 사중주’가 내게 던져준 주제어다.
‘필연’은 ‘사물의 관련이나 일의 결과가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 틀림없이 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결국 ‘클래식’이라는, 그 맹랑한 선생님이 이런 선택과 만남들을 만들어낸 게 아니던가? 사람 머릿속에 음표를 동동 띄워 놓아 30분이나 되는 명곡을 쓰게 하고, 또 계속 전승하게 만든다니—신기하다.
아레테 콰르텟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서 세 번째 무대의 부제를 ‘필연’이라 정하고, 각자만의 세계가 확고한 쇼스타코비치, 라벨, 바르토크를 한자리에 모아둔 것도, 어쩌면 ‘필연적으로’ 그리해야만 할 것 같은 이끌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그렇다. 다 결국은 ‘이끌림’으로 ‘이어진’ 것뿐이다. 이렇게 또 별다른 이유 없이 ‘아름다운 목요일’ 공연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원래 보려고 예정했던 공연도 아니어서 그냥 9월 4일도 흘러가는구나 하고 있었는데, 상주음악가 공연 소식이 인스타그램 피드에 떴다.
아—오늘 목요일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공연이 있는 날이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보러 갈까…’
10월이 지나면 근방에 올 일도 없고, 퇴근길 인파에 치이는 것도 싫었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결론은 자연스레 하나였다. ‘가서 쉬다 갈까?’
그런데 공연이 ‘쉼’이라니? 관객이라면 당연한 말 같겠지만, 요즘 내가 공연장에서 편히 쉰 적이 있던가. 오히려 공연장에 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로비 밖으로 빠져나가면,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든다. 이 안에서 잡념을 잊는 대신, 내 시야가 잡아낸 것들을 길게 뽑아내야 하지 않던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만, 공연이란 게 장르마다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다.
당장 큰 공연을 몇 개나 보았으니 오늘만큼은 결심했다. 리뷰고 뭐고, 아—무 것도 안 할 거다. 가디건 한 장 딱 어깨에 걸치고, 편안하게 가서 듣고만 와야지! 했는데—뭐 하냐, 나 지금?
그래, 결국 이렇게 된다. 음악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니까. 내가 아무리 방심하고 간들, 결국 길게 글을 쓰게 만드는 사람들이 이 안에 가득하다. 에휴—별수 없지. 오늘도 어제를 회상해 내야지, 별수 있겠나.
어제는 진짜—어떤 작곡가들인지, 그날 공연의 부제가 무엇인지 정도만 마음에 담아둔 채 아무것도 예습해 가지 않았다. 악장이 몇 개인지도 직전에야 보고, 공연 시작 5분 전에 여유롭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것도 오른편 측면석에! 보통 무대를 한눈에 감상하고 싶어 중앙 블록에 앉았었지만, 이날은 인파에서 살짝 벗어나 혼자 있고 싶었다.
대부분의 관객은 중앙에 앉아 있었고, 비록 첼리스트를 완전히 등지는 위치였지만 두 대의 바이올린은 거의 정면 시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좌석도 매력 있네) 무대에 매우 가까우면서도 측면이라 그런지, 마주할 수 있는 표정이 정말 많았다.
인터미션 전에 첼로 줄이 끊어졌다고 하는데, 뒷모습만 보이는 자리였던 탓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공연이 끝나고 로비에서야 그 얘기를 전해 들었으니.. 나만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이만큼 릴랙스되고 편안하게 감상한 공연이었다. 오히려 이런 상태면 내 청취력이 무엇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아주 속 편하게 지켜볼 수도 있었을 테니 좋은 기회였다. 그날의 아레테 콰르텟은 내게 어떤 목요일을 선사했던가? 아주 무방비하게 들어보자.
2. 세 곡을 건너며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현악 사중주 제1번 C장조 Op.49
I. Moderato — 보통 빠르기로
시작만 보면 바흐 같아서 내가 아는 그 ‘쇼스타코비치’가 맞나 싶었다. 이 곡을 듣기 전에 굳이—뭔가를 생각하지 말자 다짐했지만, 노래 자체가 쇼스타코비치의 처음 보는 얼굴이라 낯설었다.
약간—엄청 행동거지가 어색하지만 거구인 사람이 첫사랑을 가지게 된 느낌이랄까. 몸집은 산처럼 거대한데 품어낸 것은 앙증맞고 귀엽다. 2m가 넘는 사람의 수줍음이니, 소인족인 내가 바라볼 때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유순해서 요상하고, 다정해서 이상하다.
원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러다간 목가적이기까지 하겠다. 종달새를 데려다 놓고, 낮은 휘파람까지 불어 넣으려는 모양새가 딱—어색한 입꼬리를 닮았다. 억지로 웃는 건가? 탄압의 그림자를 간신히 비켜 나왔다면, 아마 어떻게든 미소 지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II. Moderato — 보통 빠르기로
1악장과 같은 보통 빠르기인데도 미묘하게 이 악장이 더 느리게만 느껴졌다. 2악장에서 스멀—스멀 내가 아는 사람의 면모가 드러나나 싶은데, 뭐야—파스텔 연두빛의 순풍이 옆으로 불어왔다. 이건 없던 얘긴데? 아리아도 하고, 동—동—피치카토로 발걸음을 묘사하기도 한다.
약간 흑백영화 배경에서 볼 법한, 지팡이를 든 신사의 걸음 모양새를 닮았다. 그렇게 몇 발자국 바닥에 놓아두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III. Allegro molto — 매우 빠르고 경쾌하게
그래, 이제 진짜 내가 아는 사람이 나오나? 싶었다. 아직까지도 ‘삐걱거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멀—찍이서 신나게 그어내기 바쁘지 뭐…라고 하는 순간에 1악장에서 만난 모르는 얼굴이 또 나타났다.
들판에서 꺾어온 듯한 성마른 잡초 사이로 꽃 몇 송이로 이뤄진 다발 하나가 내 앞에 건네진다. 주는 모양새는 어떤가. 절—대 이쪽은 바라보지 않고, 깔끔한 차림으로 최대한 단정하게(?) 꾸민 것을 건넨다.
IV. Allegro — 빠르고 활기차게
진—짜 적응 안 된다. 누구세요? 약간 쇼스타코비치의 낭만적인 제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작이 당황스러웠지만, 듣다 보니 서서히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역시—이래야지! 하마터면 같이 왈츠를 출 뻔했다.
우리가 티격태격만 해봤지 이렇게 발 맞춰 걸은 적이 어디 있다고 갑자기 이러나! 사람이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하면 큰일 나는 법이다. 리듬감이 되살아난다. 숨었다가 내어놓고, 전면에 확—마음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아이고—과유불급인데, 여기는 폭풍이나 다름없다. 빛도 이 정도면 쓸려 내려가겠다! 적당히 해야지—말릴 틈 자체가 없다. 그러다 서서히 뒤뚱거리더니, 꽃을 건네줬다는 그 사실 자체에 만족스러워하며 혼자 축제를 벌이다가 확! 끝나버린다. 쇼스타코비치 씨, 이런 곡도 쓰는 사람이었어? (억지로 쓴 건가…?)
모리스 라벨 — 현악 사중주 F장조 M.35
I. Allegro moderato – Très doux — 보통 빠르기로, 매우 부드럽게
시작부터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여러모로 부러운 일이다. 노을이 세상을 차지할 무렵, 가끔 자주색으로 보일 만큼 진한 분홍빛 하늘이 구름 뒤에 얹혀 있을 때 있지 않은가? 그 그림이 연상된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팀은 확실히 응집돼야 하는 순간의 밀도가 남다르다. 사람들의 몰입을 이끌려면 사실 네 갈래의 파도가 아니라 하나의 숨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 아마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저 멀리서 올 때도, 사근거리며 화음을 이뤄야 할 때도, 강세를 줘야 할 때도 반드시 누군가는 그 아래를 받쳐 주어야 한다. 제1바이올린의 소리 색감이 확실한 타입이 아닌가. 여러 번 들어봤지만, 내가 봤던 바이올리니스트 중 가장 캐릭터가 분명한 소리를 가진 분이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도 이분의 소리는 단번에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다. 전에는 마냥 딸기우유 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주황이 엮인 청록빛이 분명히 섞여 있다. 단순히 옅은 파스텔로 설명하기엔 두터운 개성체가, 애간장 태우는 영역 안에서 확실히 논다. (되게 특이하고 매력 있어)
II. Assez vif – Très rythmé — 상당히 활기차게, 매우 리드미컬하게
이제 손으로 구슬을 튕겨낼 시간이다. 콰르텟마다 스타일이 다른 게 이런 영역에서 드러나는 게 신기하다. 직관적으로 딱 듣기만 해도 좋은 부분에서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할 텐데도, 서로 힘을 주고 풀어내는 지점과 악력이 확실히 다르다. 어디서 빛을 내고 어디서 물러서는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아레테는 내가 알던 버전에서 ‘힘을 빡—주던’ 곳들이 더 뒤에 있어서 대비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런 악장은 그냥 눈을 감고 기다리면 된다. 아, 작은 요청 정도는 하나 해도 되겠다. 제게 풍경을 가져다 주세요— 듣다 보면 그들이 뭔가를 그리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는 시점이 찾아온다.
명확한 서사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추상체를 중첩해 쌓아가는 흐름. 이럴 때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있다 보면 잠이 오기 십상이다. ‘저들이 뭔가 쌓고 있다. 향하고 있다. 흐르고 있다.’라고 가정해 버리고 기다리다 보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힘과 텐션으로 보답한다. 왜냐? 그림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참, 아레테라는 붓은 힘을 정확히 줄 곳을 안다.
III. Très lent — 매우 느리게
사실 오늘 레퍼토리를 쭉 들으면서 라벨이 가장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주가들이 마음에 들지 않게 연주했다는 게 아니라, 추상과 완벽주의의 밀도가 높아 지금의 내 호흡과는 조금 거리가 있달까.
클래식을 듣다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 연주자들끼리 비밀스레 그림을 그려가는 듯하지만, 배경을 모르는 내겐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고즈넉해”라는 느낌만 남는다. 오히려 바르토크 바이올린 소나타 1번 2악장 도입부처럼 이명처럼 아득하거나, 아예 불협으로 치솟는 순간에 더 멍—하니 빠져드는 편이다.
이미 나라는 사람이 생각과 잡념이 많은데, 나를 긁어주지 않는 선율은 마음에 와닿기가 여간 쉽지 않다. 너라도 확실해야 내가 ‘지금’을 인지할 수 있지 않겠니? 그런 의미에서 라벨의 완벽주의적·인상주의적 색채는 나와 곧장 친구가 되기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아무리 아득해도 나보다 너무 아름답고, 내 안에서 품어질 것이기엔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닮은 구석을 찾기가 어렵다. 마치 미술관에서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던 누군가의 일상을 무심히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고조되고 있는 건 알겠는데… 글쎄,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IV. Vif et agité — 빠르고 격렬하게
‘뭔 그런 생각을 하냐’는 듯, 곧장 무언가를 이 앞으로 확 불러낸다. 뭘까? 이미지로는 폭풍, 세기로는 강렬한 소나기. 내리꽂았다가 다시 유순히 질러 간다.
옆에서 턱을 괴고 어디까지 가나 구경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동양의 바람 두 방울이 스치듯 얹히는 느낌이 있었다. 오—더 넓은 길로 들어서는 건가 싶다.
마치 한 사람이 눈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명작을 완성해 가는 중이라면 나도 모르게 몰입할 수밖에 없다. 터치가 거칠어졌다가 머뭇거렸다가, 두 걸음 물러나 “음, 나의 결과물—” 하고 바라보는 순간까지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뭐가 완성되려나? 상상이 잘 안 되는데, 막판으로 치닫는 기세와 물감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쓰는 에너지가 전해진다. 그런데 결말을 보기 직전—훅, 끝났다. 어, 안 보여주고 가셨다.
벨러 버르토크 — 피아노 오중주 BB 33, DD 77
I. Andante — 느린 듯 걷는 빠르기로
시작부터 이렇다고? 0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이미 70%쯤 달아오른 상태다. 오히려 일반적으로 ‘하이라이트로 달려가는’ 4악장의 도입부를 닮은 1악장 같았다. 아니면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 2번 4악장인 줄 알았다.
바르토크가 이런 노래도 쓰는 사람이었구나. 특이한 곡조만 쫓는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었다. 아까 말했던 분홍빛 하늘이 오렌지를 더해 짙어져 가던 순간처럼, 음악은 이미 절정 근처까지 물들어 있었다. 이런 1악장이 있을 수가 있구나.
관객을 직접 밀어붙이지 않는데도, 네 명의 현악기가 마치 천장에서 빛을 쏟아내리려는 듯 고조된다. 딱 이 1악장에서 예감했다. 아… 또 글 쓰게 생겼네..
연주자들은 어떻게 이렇게 ‘후기를 쓰게 만드는’ 연주를 해내는 걸까. (한숨) 눈짓 하나에도 다 연습으로 깎아낸 결론이 묻어날 텐데 그게 자연스레 드러난다. 예습을 하나도 안 했는데도 듣자마자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 연주, 제대로 흐르고 있구나. 이 곡은 다시 듣겠다.
클래식 연주의 ‘성공’은 결국 관객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날의 곡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느냐에 달린 것 같다. 소리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각인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운이 좋게도 나는 오늘도 새로운 플레이리스트를 얻었다. 오늘은—바르토크겠구나. 또 이렇게 인사하네.
쇼스타코비치도, 바르토크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는지 몰랐다. 그냥—뭐 아프기만 하고, 희한한 춤을 서사적으로 예쁘게 춰주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 곡은 어떻게 1악장부터 이렇게 몰아쳐서 끝까지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좋긴 한데, 이게 맞나? 싶은 기분이 자꾸 들었다.
형식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지금은 준비운동을 할 시간 같았는데 벌써 등을 두드리며 따라오라 하니 묘한 기분이다. 이게 혹시 사랑 얘기일까? 벌써 쇼스타코비치의 거인이 첫사랑을 이뤄낸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빛을 낼 수 있나.
왜 인터미션 후에 이 곡 하나만 있었는지—이제 조금 알겠다. 한 곡이 두 역할을 다 한다.
II. Vivace — 생기 있고 활발하게
뭐야,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1악장보다 확실히 ‘생기’가 있고 조금 더 ‘빠르게’ 흐른다. 음도 한층 가볍게 논다. 아까는 강물처럼 밀고 들어오기 바빴지 않았던가.
여기선 한 번씩 멈추고, 사그라들기도 한다. 저 봐—아득하지만 그리 멀지만은 않은 얇은 선도 몇 번씩 그려 주고, 나긋나긋하게 긴 노래도 부를 줄 안다.
그렇다고 이 악장의 소제목을 잊어선 안 되리라. 보다 ‘스피디’하게 달려나가야 하지 않겠나. 얼마나 사랑에 빠진 거야. 이러다간 단거리 달리기 금메달을 따게 생겼다.
에게게? 가만보니 점프도 한다. 내가 오른편 사이드 좌석에 앉아 있어서 첼리스트의 뒷모습만 보이는 대신, 악보의 하얀 면을 마음껏 응시할 수 있었다. 이 악장은 특이하게—끝날 것 같다고 예고를 날리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헷갈리는 포인트가 몇 번이나 있었다.
그 악보가 아니었다면 나도 모르게 “끝났나? 끝난 줄 알았네.” 했으리라. 막 하이라이트로 향할 것처럼 치솟는데—안 끝난다니까?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 알다가도 모를 바르토크… (니 짱나하나)
III. Adagio — 아주 느리고 서정적으로
뭔가 이런 길이는 바이올린 소나타에선 ‘이명’ 정도의 얇기로만 들은 것 같은데, 두텁게 들으니 꽤 매력적이다. 아—니, 이렇게 서정적이고 깊은 사랑을 논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약간 배신감 드네.
첫 인사를 민속적인 걸로 하는 바람에 내가 하루이틀 고생한 게 아니었는데—. 이런 곡이었다면 오히려 금방 손붙잡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다고 소나타가 좋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히히) 그 곡이 있었으니까 당신이 이런 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된 것 아니겠나.
생각해 보면 피아노가 있어서 더—애절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서정성에 또렷한 물방울들이 선들의 곁을 동—동—지켜주지 않은가. 김준형 피아니스트의 건반은 또 이런 형태를 가지고 있구나. 참—맑고 또렷하다.
물방울도 아닌 것 같다. 입자가 분명하다. 현악기가 막 타고 오르는 시점에 아래에서 때로는 옆에서 갈 길을 알아서 가주니—소리의 위아래가 든든하다. 너무 바람만 불면 좀 그렇지 않던가.
IV. Poco a poco più vivace — 조금씩 점점 더 활기차게
막 저물었다가 피어나기도 하고, 막 신나게 차오르기도 하고 쿵—짝 쿵—짝 마음을 맞춰 나가는 호흡이다. 그냥 뭐 판단할 게 있겠는가. 마지막은 거의 프로포즈 수준이다.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겠다!” 팡파르? 100만 송이? 보석 반지? 뭐—말만 해라! 해 달라는 거 다 해주겠단다. 아닌가? 이미 식장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 결혼했대,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어디까지 흥에 타오르나 지켜봤는데, 마지막엔 거의 불꽃놀이까지 열렸다. 으아—바르토크 뭐 하는 사람이냐~~
앙코르, 쇼스타코비치 — 피아노 5중주 g단조 Op.57 (3. Scherzo: Allegretto)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줄라이 페스티벌에서 감상했던 곡이 아니던가. 드디어 내가 아는 곡이 나왔다! (기쁨)
클래식 초보자는 이런 작은 보상만으로도 무척 행복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즐겁게 이 스케르초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아는 버전과는 또 다른 느낌의 3악장—그냥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짱—짱—쨍—쨍— 거리는 재미난 발걸음)
3. 필연적으로 우리는
세 명의 작곡가를 오로지 소리로만 건너온 여정의 끝에 무엇이 남았을까. 놀랍지 않게도, 결국 늘 보던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뭐일지 예상하시겠는가? 미소다. 미소. 소리 없이 빙긋 웃는 것을 표현하는 바로 그 단어. 쉿! 소리가 있으면 안 된다—여긴 클래식 공연장이니까. (호호) 꺄르륵—대는 듣기 좋은 건 잠시 넣어두고, 광대만 살짝 올려야겠다.
그날 참 웃는 얼굴이 많았다. 특히나—전채안 연주가께서 어찌나 연주 중 행복하게 웃음 지으시던지—나도 모르게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진짜, 진짜 좋아하시나봐, 바이올린.”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바이올린 좋아하시죠?” 이런 물음 자체가 어찌 보면 황당할 수도 있겠다.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근데—그럼에도 물어보게 되는 표정이 있지 않은가. 자기가 딱—하고 싶은 걸—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저기 있는데, 어쩌겠는가! 나도 모르게 물어보게 된다!
행복해 보였다. 제2바이올린 박은중 연주가 쪽으로 상체를 완전히 틀어 합을 맞출 때, 미소를 나눠 가지는 순간도 있었다. 어디 무대에만 있었겠나. 나와 종종 공연장에서 마주치는 또 다른 클덕 메이트께서 중앙 블록 중간에 앉아 무대를 감상하고 계신 것을 마지막 바르토크 때 발견했다.
빙긋 웃는 부드러운 입꼬리로 무대를 바라보고 계셨고, 뒷자리 관객분들 역시 다들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고요하고 온화한 얼굴로 계시길래 환호성도 잔잔할 줄 알았는데, 곡이 끝날 때마다 “호오!” 하며 힘껏 환호를 터뜨리셔서 같이 박수치는 재미가 있었다.
그들의 옆모습을 살짝씩 보면서 나는 어떤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클래식이, 아레테 콰르텟이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물었던가?
“너, 진짜, 진짜 좋아해?”
내 대답은 이렇다.
“응! 진짜, 진짜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