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8월 전에는 에어컨을 틀지 말자는 다짐이 무색했다. 7월의 어느 밤, 베개를 적시는 땀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고지서를 받아 들 미래의 내 눈치를 보며 28도로 맞춰놓은 에어컨에서는 미지근하게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서울의 작은 자취방, 바람이 닿는 곳 어디에도 나의 것은 없었다. 나는 월세와 관리비, 각종 요금 위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그 돈을 감당하지 못하면 가라앉는 건 한순간일 판자 위에서, 어떤 눅눅한 소설과 마주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잉.jpg

 

 

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복 있는 자들>. 곰팡이의 가장 축축한 부분을 내보이는 듯한 소설에 우리 집 에어컨의 묘한 오줌 냄새가 더해지니 마치 4D 영화를 보는 듯했다. 이만큼의 감정이입도 주인공 ‘희재’과 희재의 ‘엄마’에겐 우스울지 모르겠다. 에어컨을 틀 수 있는 처지에 감사하라고 말할지도. 그렇다. 그들은 아주 가난하다.


소설은 “충분한 가난은 행운이 되기도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충분히 가난한 덕에 주거급여 수급자로 살며, 주거급여 수급자인 덕에 신축 임대주택에 20년 동안 살 수 있다. 그들에겐 수급자 자격을 유지하는 게 집과 삶을 지키는 방식이 된다. 그래서 회사도 그만두며 중위소득의 43% 내로 소득을 조절한다. 엄마는 이모 집으로 세대를 옮겨 모녀가 1인 가구로 분류되도록 한다. 애매하게 가난한 것보다 확실히 가난한 쪽이 그들의 생계에는 나은 것이다. 이 역설을 나도, 어쩌면 많은 이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한 달에 20만 원씩 자취방 월세를 지원해 주는 복지 사업에 신청하던 날, 부모님께 본가 소득이 충분히 낮다는 걸 확인받았을 때. 그날 나는 분명 안심했다. “어차피 부자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아주 가난한 쪽이 좋았다”는 희재의 마음은 분명 곳곳에 살아 숨 쉰다.


이쯤 되어 등장해 주어야 하는 건 일해서 돈을 벌라는 꾸짖음이겠지. ‘류아 언니’처럼 열심히 일해서 일한 만큼 벌고 그 돈을 야금야금 모아 목돈을 마련해 전세 계약을 하는, 그런 일반적인 방식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하라는 목소리들. 하지만 첫 번째 단계부터 삐그덕거린다. 정녕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는가? 당신은 일한 만큼 버는가? 이 세계가 그렇게 공정한 곳인가? 희재의 아빠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가게를 열었지만 결국 죽고 나서 아무런 재산도 남기지 못했다. 일과 돈이 따로 노는 게 어디 소설만 그런가. 야근을 밥 먹듯 하고 받았던 나의 첫 월급은 200만 원을 넘기지 못했다. 월세에 교통비에 이것저것 내고 나면 식비도 겨우 남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월급날 며칠 전 전해 들은, 모 연예인이 광고 하나를 찍고 30억을 받았다더라 하는 이야기. 이건 뭐 부루마블도 아니고 30억이 장난이냐며 낄낄댔지만, 정말로 30억이라는 숫자는 다른 행성의 언어처럼 낯설었다. 며칠 후엔 외국인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은 물론 임금체불까지 당했다는 익숙한 뉴스가 들려왔다.


모 연예인처럼 몇억씩 턱턱 벌든가. 아니면 찢어질 듯 가난해서 복지 제도의 대상이 되든가. 소설은 그사이에 있을 다수를 응시한다. 불쾌할 정도로 정확히 현실을 꼬집는다. 당신은 위보다 아래와 가까울 텐데 왜 위를 올려다보며 부러워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더러워하냐고 묻는다. 따지듯 묻는 소설에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다. 다만 누군가 희재네를 부정수급자로 신고했다는 공문, 편법 쓰지 말라는 류아 언니의 문자, 그리고 굳게 닫힌 아파트 창문들을 함께 바라볼 뿐이다. 정말로 더러운 건 여기에 있다. 자립을 기다려 주지 않는, 소득 수준이 선을 넘자마자 내쫓아 버리는 복지 제도. 애매한 근로소득보다 확실한 수급이 나은, 처참한 임금수준. 다른 이의 가난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정작 그들의 울음소리는 못 들은 체하는 이기주의. 물론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을 모조리 세상 탓으로 돌려선 안 되겠지만 세상에는 노력 따위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에 깔린 사람들도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요즘. 그래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 따위는 영원히 뒤로 미루게 하는 요즘. 그런 시점에 이런 소설이 나타났다는 건 가느다란 희망 같다. 소설을 읽고 나서도 빈곤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을 심정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당사자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처절한 생존기를 들여다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시야는 엄연히 다를 것이다. 소설이 꾹꾹 눌러 담은 비명은 당신의 마음에 오돌토돌한 돌기로 솟아나 당신이 세상과 접촉하는 표면적을 넓혀줄 것이다.


마침, 내 세상에서는 유튜브에서 20살짜리 가장의 사연이 흘러나온다. 사연을 듣고 두 연예인이 고민 상담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우연인지 뭔지, 홀로 동생 두 명을 돌봐야 하는 그는 수급비가 끊길까 일을 하지 않고 있단다. 그 앞에 앉은 두 명의 연예인이 한심하다는 듯 소년을 노려본다. 소년이 일을 했을 때 대략 벌 수 있을 임금과 두 연예인의 출연료는 각각 얼마일까. 두 값 사이에 존재할 틈이 너무나 오싹해서 오늘은 에어컨은 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