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jour!"
마담의 유쾌한 인사와 함께 극장 안은 100여년 전 파리의 어느 스튜디오로 변신한다. 에펠탑이 보이는 배경과 그 시절 프랑스를 연상케 하는 의상, 섬세한 무대 소품들이 시선을 끌었다.
뮤지컬 <르 마스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부상병들을 위해 실제 운영되었던 '초상 가면 스튜디오'라는, 역사적으로 흥미롭고 참신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다. 극은 두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절어 사회적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살아가던 '레오니'와, 전쟁으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된 '프레데릭'이 그들이다.
각자가 가진 문제는 다르고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둘은 그 속에서 결국 서로를 마주하며 위로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찾게 된다. 레오니는 가면 제작자로서 자신의 꿈을 향해, 프레데릭은 상처를 딛고 일어설 날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감싸오는 듯했다.
특히 남녀 주인공이 중심이지만, 이성 간 사랑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심과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담아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서로뿐 아니라 레오니를 좋아하는 잡화점 직원 '페르낭'과도, 프레데릭의 약혼자였던 '르네'와도 확실한 매듭은 지어지지 않는다.
이를 통해, 사랑이라는 전형적인 주제로 흐르기보다는 오히려 진정한 치유의 힘과 관계의 본질을 강조하며, 현대 관객들의 정서에 맞는 감동을 전한다. 전반부에선 레오니가 프레데릭에게, 후반부에선 프레데릭이 레오니에게 다가가 문을 두드리는 대표 넘버 '편하게 말해봐요' 역시 뭉클함을 남겼다. 레오니가 좋아하는 <오만과 편견>이 유치하다던 프레데릭은 어느덧 먼저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또, 이 작품은 스토리 외에도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넘버 소화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신체적 불편함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표현해야 하는, 쉽지 않은 배역임에도 배우들은 상황과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해 낸다.
전쟁이라는 큰 사건은 누구나 알지만, 그 전쟁이 지나간 뒤 상처와 함께 남겨진 개인들은 과연 누가 보듬어주었을까. 사회의 무심함 아래 소외되어 있던 이들과 그들의 연대에 관한 조명은 오늘날에도 더욱 유의미하게 와닿는다. 시대적, 내면적 상처에 대한 통찰도 모두 깊이 있었다.
장애, 질병, 흉터 그 무엇이든 아픔을 지닌 인물들이 문화 창작물에서 지금보다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등장할 필요가 있다. 결핍이 억지로 극복되거나 소모되지 않고, 인물의 일부로 녹아들어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르 마스크>와 같은 창작극의 등장은 반갑기만 하다.
다만 이렇듯 주제 의식이 건강한 만큼, 전체적인 전개는 다소 예측 가능하고 무난하게 흘러가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레오니의 '1살 연상' 언급이나 페르낭의 귀여운 행동처럼,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낸 인간적인 요소들을 더 풀어내는 것도 극에 더욱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르 마스크>는 초연 창작극임이 믿기지 않는 높은 완성도와 안정적인 구성을 선보인 극이었다. 역사적 소재를 따뜻한 시선과 연출로 재해석한 이 작품에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와닿는 그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했다. 이 작품을 통해 아름다운 위로와 여운을 느껴보기를 바라며, 앞으로 더 발전해 나갈 한국의 창작 뮤지컬들이 기대되는 바다.
<르 마스크>는 오는 11월 9일까지 대학로 et theatre 1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