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되고 나서부터는 자연스럽게 외모와 건강 이야기를 더 자주 꺼내게 된다. '안티에이징', '이너뷰티' 같은 단어들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어떤 스타일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어떤 화장이 가장 무난한지 대강 알게 된 나이에 들어서니, 반대로 내 얼굴에서 눈에 띄는 단점들도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중 일부는 세월이 준 원치 않는 덤이다.
어느 날 보니 이마 잔주름이 너무 심해진 것 같다. 한참 떠들고 웃고 난 다음 아픈 입꼬리를 정리하는데 깊게 패인 주름이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보톡스는 요새 시술로도 안 친다던데… 한 번 맞아볼까. 원래도 심각했던 다크서클이 눈밑 처짐으로 더욱 더 깊고 고달파 보인다. 밭을 매도 되겠다. 컨실러로도 안 덮이는 이걸 대체 어떻게 해결하나. 박명수가 받았다던 눈밑 지방 재배치 좋다던데. 야 이마 보톡스 맞아봐 나 받아봤는데 괜찮더라. 그래? 응 원래 보톡스는 주름 생기기 전에 관리하는 거라더라.
그 자리에서 바로 이마 보톡스를 예약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시술이 시작됐다.
차갑게 얼려진 쇠덩어리를 이마에 문지르고 있으면 의사가 들어와 이마를 꾹꾹 눌러보고 눈썹을 들어보라고 이야기하고 나선 8방 정도의 주사를 놓고 떠난다. 상담시간보다 시술시간이 짧았다. 참고로 꽤 아팠다. 타투를 받아본 적 있다면… 핸드포크를 이마에 받는 기분…
나는 얼얼해진 이마와 함께 집에 돌아가면 된다.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확인하니 주사 바늘 모양대로 부풀어 있는 8개의 작은 뿔들이 보였다.
효과는 놀라웠다. 눈을 뜨려면 늘 이마 근육을 사용해야 했는데, 시술 후에는 눈썹을 억지로 치켜세우지 않고도 편안하게 눈이 떠졌다. 짝짝이였던 눈썹 모양도 한결 맞아 보였다. 작은 시술이 가져다준 만족은 생각보다 컸고, 그 경험 이후 나는 '자연을 거스르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덜 낯설게 느끼게 되었다. 불안과 불만족 속에서 보낸 시간에 비하면, 내 몸으로 직접 해 본 실험의 결과는 꽤 괜찮았다. 그렇게 나는 3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이마 보톡스를 맞았다.
피부과에서 점과 기미를 한꺼번에 빼던 시기도 있었다. 재생 테이프를 붙이고 햇빛을 피하느라 일상을 조심스레 살아야 했고, 눈가에 깊게 자리한 점은 빼고 빼다가 결국 흉터로 남았다. 점이 좀 많다는 이유로 '점순이'라는 별명을 들었던 시간보다는 흉터가 나았다.
돌이켜 보면 10대와 20대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외모를 미워했다. 코가 휘었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옆모습을 거의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고, 셀카를 수십 장 찍어도 대부분 보정에 매달리며 시간을 보냈다. 원본 사진은 모두 지워버리고 어색하게 뒤틀린 결과물만 남긴 것도, 결국은 자기 얼굴을 받아들이지 못한 증거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불만족을 현실로 옮길 만큼의 용기를 가지지 못했던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싶다.
이제 30대가 된 나는 또 다른 고민을 한다. 날씬해지는 것보다 근육이 붙고, 자세가 바르게 돌아오기를 바란다. 틀어진 골반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길 원한다. 얼마 전에 박서련 작가의 <몸몸>에서 "나는 내 피부 바깥으로 0.1밀리미터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라는 문장을 발견하고 한동안 그 문장 안에 갇혀 있었다. 몸에서 비롯된 고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시간이 얼마나 되겠냐는 물음에 대해 나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다. 몸은 내가 아니지만 나는 몸이니까.
또... 작년에 본 영화 〈서브스턴스〉가 한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만약 좀 더 젊고 완벽한 나를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약물을 주입할까? 의심이 많은 성격 덕분에 나는 서브스턴스를 주사하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 또 다른 '서브 약물’ 같은 것이 내 몸을 유혹할지 모른다.
얼굴이든 몸이든 비정상적으로 들여다 보는 일은 잠정적으로 그만둔 상태다. 언젠가는 다시 이마의 주름이 잘 보여서 새로운 보톡스를 찾을지 모르고 또 다시 생긴 점을 빼고 싶어질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 살기로 했다. 몸과의 불화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지속되겠지... 그래도 그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보다 하나의 이야기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