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봐요 우리."
한 명의 동생이자 친구인 A에게서 이 말을 들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안 지 오래되지 않은 친구 B에게서 또 한 번,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말이 들을 때마다 좋다고 했고, ‘그래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이라서 그럴까, 익숙한 듯 반사적으로 답을 서둘러 보내놓고는 미묘하게 잔상이 남아 대시 채팅창에 들어가 들여다보았다. 오래, 봐요, 우리.
바쁘다는 이유로 새로운 만남은 미루고 미뤄왔다고 생각했는데. 느리고 간헐적이지만 아주 조금씩, 새 환경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새 나에게도 새로운 친구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나의 인간관계가 조금은 다른 형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의 옛 인연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건 왜일까.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한창 어울릴 때 어쩌면 내가 막연히 ‘우리는 언제까지나 친구 일거야’ 하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어서가 아닐까.
학교가 끝나면 어김없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스티커북 놀이를 했던 Z.
반대로 내가 집에 놀러 가서 반나절을 보내고 같이 공유일기를 썼던 Y.
고등학교 3년 중 2년은 다른 반이었지만 가장 친하게 지냈던 X.
노래라는 공통 관심사로 누구보다 빠르게 친해졌던 W.
나와 누구보다 친했고 가까웠던 관계의 사람들. 사소한 싸움을 계기로 서먹해진 사이가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하고 굳어져 버린 관계도, 왠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서부턴가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긴 관계도 있다.
모두 다 지금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리가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게 참 그렇다.
이렇게 떠나보낸 인연들을 나의 무의식 저편에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기 때문에, 그것이 일종의 관계 데이터 베이스가 되어 어쩌면 생각만 하고 말은 못 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넌지시 든다. ‘오래 보자’는 말. 언젠가는 우리도 자연스럽게 다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괜히 더 말을 아끼게 된 건 아닐까.
만나고 헤어지고, 또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앞으로의 예정된 필연 앞에서 조금은 회의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들은 좋은 말들을 담아두었다 따라 하는 좋은 습관이 있는 나는 앞으로 또 새로 만날 나의 인연들에게, 또 지금 가장 소중한 현재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용기 내 말해보고 싶다.
오래 봐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