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최종_국문포스터.jpg

 

 

마이아트뮤지엄이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19세기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를 개최한다.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 가운데 74점의 명작을 통해 도심 속 미술관에서 즐길 수 있는 나폴리 여행을 선사한다.

 

전시의 부제 ‘나폴리를 거닐다’라는 말 그대로, 걸음을 천천히 옮기다 보면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어지는 나폴리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전시의 시작과 끝에 한 도시가 겪어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예컨대 귀족에서 서민으로 확장되는 인물의 범위라든가, 세밀하던 붓 터치가 점차 거칠고 투박해지는 과정이 그렇다. 화려한 황금 액자 속에 담긴 대형 초상화는 차츰 평범한 액자에 담긴 소박한 그림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나는 미술에 넓은 식견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전공을 한 적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틈이 날 때마다 전시를 찾으려는 이유는 작품을 보는 시각과 상상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는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추상화보다 정물화나 초상화가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진다. 상상할 여지가 넓은 추상화와 달리, 초상화는 당대의 사회적 배경과 화가의 삶을 알지 못하면 금세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이번 전시는 나와 같은 난점을 가진 관람객들에게도 꽤 친절한 전시라 할 수 있다. 네 개의 장으로 구분된 전시장을 따라 걷기만 해도 앞으로 곧 이어질 작품들의 정서와 분위기를 미리 짐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때마침 내가 방문한 날에는 정우철 도슨트의 전시 해설이 무료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의 해설에 나의 시선을 덧붙여 여러분을 잠시 그 시절의 나폴리로 초대하고자 한다.

 

 

 

1부 Female Images. 그녀들을 마주하다



KakaoTalk_Photo_2025-08-21-20-21-17.jpeg

 찰스 하워드 호지스, 〈헨드릭 도에프의 아내 초상〉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ㄷ'자 형태로 배치된 공간이 시선을 끈다. 왼편에는 서민 여성의 초상화들이, 오른편에는 귀족 여성의 초상화들이 서로 마주 보듯 걸려 있다. 양쪽 벽을 번갈아 바라보니 같은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임에도 차이점이 뚜렷했다. 꼿꼿한 자세, 기품 있는 자태, 풍성한 옷자락과 반짝이는 장신구. 그림 속 귀족 여성들은 온화하고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과하게 화려한 복식이 당시 살롱 문화의 확산과 사교계의 유행을 드러낸다.

 

서민 여성들의 초상은 더 담백하고 차분하지만, 정우철 도슨트의 해설처럼 자세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귀족 여성들은 단 한 번도 노동을 경험한 적 없는 듯 곧추서 있는 데에 반해 서민 여성들의 목과 어깨는 거북목처럼 구부정하고 표정도 왠지 무겁다. 겉으로는 귀족 못지않게 장신구를 걸치고 있지만, 그 화려함이 오히려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KakaoTalk_Photo_2025-08-21-20-24-20.jpeg

안토니오 레토, 〈우아한 산책〉

 

 

안토니오 레토의 1844년 작 〈우아한 산책〉속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배경의 이질적인 조합은 어색한 감정을 더욱 부각한다. 정비조차 되지 않은 도로 위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있다. 옷은 화려하지만, 풍경은 초라하다. 말을 끄는 남성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힘겨워 보이고 여인을 태운 당나귀의 표정마저 지쳐 보인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도시 여성처럼 치장한 당시 서민 여성을 풍자화한 그림이다.

 

이 작품은 레시나파로 불리는 사조에 속한다. 나폴리의 작은 해안 마을에서 이름을 딴 레시나파는 프랑스 인상주의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등장했다. 튜브 물감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 돼지 방광에 물감을 넣어 다니며 작업했던 까닭에 밑그림은 야외에서, 채색은 실내에서 마무리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인상파보다 한층 더 섬세하고 정교한 붓 터치가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부터 서민들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작품의 크기도 작아지고 주제 역시 일상적 풍경으로 옮겨가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KakaoTalk_Photo_2025-08-21-19-10-00.jpeg

안드레이 페트로니, 〈여인상 / 원해요!〉 

 

 

이어지는 오리엔탈리즘 회화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섹션 중 하나였다. 파란 눈을 지닌 서양인처럼 생긴 외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리엔탈리즘 이미지와 다소 다른 형상이다. 아시아인으로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그림 속 여성들은 모두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리엔탈리즘 미술은 19세기 유럽, 특히 프랑스와 영국의 화가들이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거나 상상하며 제작한 회화 양식으로 동양에 대한 낭만화된 이미지가 반영되었다.

 

안드레이 페트로니의 〈여인상 / 원해요!〉는 오리엔탈리즘 미술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넓은 흰 쿠션에 두 팔을 벌린 채 드러누운 여인이 관람객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은 분명히 노골적이고 의도적이다. 속살이 비치는 시스루에, 앞에는 과하게 큰 꽃이 놓여 있다. 앞서 보았던 귀족 여성이나 서민 여성의 초상과는 확연히 다른 여성상이다.

 

 

KakaoTalk_Photo_2025-08-21-20-27-46.jpeg

조반디 볼디니, 〈공원 산책〉

 

 

이어지는 신흥 사회 섹션으로 넘어가면 조반니 볼디니의 〈공원 산책〉이 걸려 있다. 19세기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초상을 남기고 소장하는 것을 즐겼다. 특히 벨에포크 시대의 화려한 의복을 아름답게 묘사했던 볼디니에게 초상화를 받는 일은 하나의 사회적 유행이 되었다. 작품 속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모습은 가을 공원 속에서 강렬히 빛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옷의 주름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움직이듯 선명한 질감으로 표현되어 있다. 

 

 

 

2장 Interiors. 각자의 방, 각자의 세계


 

KakaoTalk_Photo_2025-08-21-20-59-51.jpeg

제나로 말다렐리, 〈비너스에게 스틱스 강물을 바치는 프시케〉 외 3점

 

 

19세기 전반은 고대 미술과 신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고조되던 시기였다. 전시장 정면에는 제나로 말다렐리가 나폴리 왕궁 천장화를 위해 준비한 큐피드와 프시케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습작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습작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KakaoTalk_Photo_2025-08-21-20-29-58.jpeg

빈첸초 아바티, 〈부엌 내부〉

 

 

이 시기의 이탈리아는 물질적 조건과 생활 환경이 빠르게 변화했고, 화가들은 실내 풍경을 통해 그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빈첸초 아바티의 〈부엌 내부〉는 그 흐름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겉으로 보기엔 서민의 소박한 부엌을 단순히 옮겨 놓은 듯 보이지만, 정확한 원근법과 빛의 사용, 주방 도구와 식기 묘사에서 드러나는 디테일이 기술적으로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다. 신화와 영웅담을 그린 작품만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는 작품이었다. 〈부엌 내부〉를 보며 평범하고 소소한 삶을 그린 작품 앞에서도 충분히 압도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3부 Gioacchino Toma, evoking the state of mind 토마의 시선


 

전시는 조아키노 토마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그의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망한다. 그는 불운한 삶을 겪어온 화가였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랐고, 친척들의 외면 속에서 수도원과 고아원을 전전했다. 이후 부르봉 왕조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반정부 활동에 연루되어 16개월간 유배를 겪기도 했다. 이 불운한 개인사는 곧 그의 고유한 화풍으로 이어졌다.

 

 

KakaoTalk_Photo_2025-08-21-19-12-17.jpeg

조아키노 토마, 〈쌍둥이〉와 〈죽어가는 아들〉

 

 

그의 회화는 대체로 어둡고 음울한 정조를 띠는데, 그중에서도 〈쌍둥이〉와 〈죽어가는 아들〉은 부모로서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이 압축적으로 담겨있는 작품이다. 전자는 아버지로서 두 아들을 향한 애정을 담은 작품이지만, 후자는 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코앞에서 지켜보며 단 두 시간 만에 완성한 작품으로 전해진다.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된 그림이기에 구체적인 배경이나 세부 묘사는 생략되어 있지만, 아이의 힘 빠진 표정과 무거운 공기가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배경을 비워둔 것은 시간의 제약 때문만이 아니라 아픈 자식 앞에서 주변 풍경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아버지의 시선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장 Exteriors. 빛이 있었고, 삶이 있던 곳


 

KakaoTalk_Photo_2025-08-21-19-13-16.jpeg

빈첸초 카프릴레, 〈해변에서〉

 

 

마지막 섹션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전환된다. 벽면 가득 퍼지는 밝은 노란빛 속에서 나폴리의 아름다운 풍경화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어둡고 무거운 조아키노 토마의 방을 지나온 직후라 갑작스러운 조명이 눈부시게 느껴질 정도다. 18세기 후반부터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하며 이탈리아 풍경을 담은 기념품이 유행했다. 여행객들은 건축과 자연 풍광을 간직하기 위해 베두타로 불리는 풍경화를 수집했고, 나폴리의 화가들 역시 이러한 수요에 맞춰 화풍을 발전시켰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판매용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궁정의 대형 장식화나 초상화에 비해 훨씬 작은 크기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사실적인 기록을 위해 밝은 색채와 햇빛 표현이 강조되는 것은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야외의 풍경을 표현하는 붓질은 점점 간결하고 투박해졌다. 정교하고 세밀한 디테일은 없지만 그 시절 나폴리의 바다와 하늘을 바라본 여행객의 시선을 따라가듯 그림을 바라보았다. 화려하진 않아도 담백하게 남겨진 풍경들이 전시의 끝을 차분히 맺었다.

 

*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Vedi Napoli e poi muori.” 

 

18세기 유럽의 예술가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회자된 이 구절은 전시장 초입 벽면에 크게 적혀 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하지만 전시가 끝날 무렵에는 그 말 의미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회화 속 여성상에 투영된 당대 사회와 가치관을 엿보며 나폴리라는 도시로 걸어 들어가면, 이어지는 귀족과 서민의 실내 풍경 앞에서는 나폴리의 구석구석을 거니는 듯한 감각이 들고, 교외 풍경과 지중해의 푸른빛을 담은 풍경화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나폴리라는 도시에 마음을 빼앗긴다.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관람객은 현실로 돌아오지만, 당대 이탈리아 남부의 향취와 공기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걸음을 옮기게 된다.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는 마이아트뮤지엄에서 2025년 8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명함.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