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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가지고 있다. 병자호란은 그때 몇 번 접했던 전쟁이었다.

 

근데, 올해 광복절을 맞아 문득 이 전쟁을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늘 그렇듯 관련 책부터 찾아보았고, ‘병자호란: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를 구매했다. 이후, 벌거벗은 세계사 병자호란 편도 찾아보고 남한산성 영화도 보았다. 차가운 겨울의 역사는 500년 후의 나에게도 아프게 다가왔다.


병자호란은 말 그대로 병자년에 청나라가 침입한 난리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단순히 ‘일방적 침략’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이 ‘전략적으로’ 패배한 전쟁이라 규정한다. 그렇다면 조선의 패착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500년 전 전쟁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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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전후 상황


 

청나라의 뿌리는 변방의 여진족이었다. 작은 세력이던 그들은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통합되며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 명나라는 조선을 돕느라 임진왜란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 틈을 타 누르하치는 1616년 후금을 세운다.


후금은 곧 명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조선도 1만 3천의 군대를 파병했다. 명은 크게 패했으나, 전세는 누르하치의 죽음으로 잠시 주춤했다. 뒤를 이은 홍타이지는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조선 침략을 선택했고, 1627년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조선은 패배 후 후금을 ‘형의 나라’로 섬기게 된다.


1636년, 홍타이지가 청나라를 선포하고 황제 즉위식을 열었을 때, 조선 사신만이 절을 거부했다. 더구나 인조가 후금(청나라)을 오랑캐라고 지칭하는 서신이 발각되며 청과의 불신은 깊어졌다. 결국 홍타이지는 조선 정벌을 결심했고, 병자호란이 발발했다. 사실 이는 명분과 무관하게 홍타이지의 욕망으로 인해 예정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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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남한산성

 

 

 

조선의 전략


 

조선은 나름 대비를 했으나 청의 기동력은 예상 밖이었다. 기병 300명은 상인으로 위장해 단 6일 만에 한양에 도달했다. 조선은 각 지역 산성에서 장기전을 준비했으나, 청은 오직 한양을 목표로 인조의 강화도 피난을 차단하기 위해 달려왔다.


결국 인조는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지만, 청 군대는 곧 성을 포위했다. 병자호란은 불과 50여 일 만에 조선의 항복으로 끝났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했고, 이는 조선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조선은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여유따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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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남한산성

 

 

 

조선의 패착


 

조선의 가장 큰 문제는 외교 전략의 부재였다.

 

명과 청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읽지 못했고, 수차례 신호에도 준비가 부족했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도 강화도로 갈지, 남한산성으로 갈지를 두고 시간을 허비했다. 성 안에 갇혀있을 때는 항복 여부와 시기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질질 끌다가 결국 무너졌다.

 

반면 청은 조선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었다. 치밀하게 준비된 외교와 전략 앞에서 조선은 속수무책이었다.

 

 


백성의 고통


 

전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에게 돌아갔다. 의주의 백성들은 성 보수와 훈련에 밤낮으로 동원되었지만, 정작 최전방 전력은 써보지도 못했다. 나 또한 군 복무 시 최전방에서 훈련했던 경험이 있어, 당시 백성들의 헌신과 허무를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패전 이후 상황은 더 참혹했다. 수십만 명의 조선인이 포로로 끌려가 노예로 팔리고 고문당했다. 청 수도 거리마다 조선인을 가두는 감옥이 있었다고 하며, 그들은 탈출에 성공해도 다시 청나라로 송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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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한산성 스틸컷

 

 

 

오늘날의 교훈


 

마지막으로, 이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 보았다.

 

병자호란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외교 능력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외교의 중요성을 어릴 때부터 교육하고, 국민 전체가 이를 인식해야 한다. 주변국과의 관계에 늘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우리는 꾸준히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외교정책은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장군과 백성은 조선을 위해 한 몸 바쳐 싸워 승리하고 싶었다. 병자호란은 단순히 500년 전의 사건이 아니다. 외교 전략의 실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책의 부제목처럼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 싸움을 포기한 나라가 평화를 지키는 방법은 단 하나다. 싸울 결의를 지닌 나라에게 끌려다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총칼 없는 싸움은 지속되고 있다. 자주적인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더 지혜로워야 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병자호란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며,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우고 나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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