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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버겁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2025)>의 주인공 팬지(마리안 장 밥티스트)는 속된 말로 ‘아가리 파이터’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말을 다 하는 그녀의 입담은 솔직함을 넘어 무례하기까지 하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지적과 질책, 불만과 비난으로 가득하고, 무엇보다 그녀는 늘 화가 나 있다. 

 

팬지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곤 한다. 그녀의 악담을 듣는 직접적인 대상이 아님에도 그 불쾌감이 스크린 너머까지 전이된다. 반면 여동생 샨텔의 집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극명한 대조는 팬지와 가족의 문제를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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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지의 곁에 오래 머문 사람들은 점점 그녀를 포기하고 있다. 그녀와 초면인 사람들은 오히려 불같이 화를 내며 맞대응하지만, 자주 대면하는 주치의는 초연하고 가족들은 무반응에 가깝다. 어쩌면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 팬지는 세상과 사람들을 혐오하는 듯하면서도 정작 외로움과 소외감을 두려워한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버겁다’⏤이 딜레마가 팬지와 관객들을 맴돈다.

 

 

 

팬지의 불행에도 이유가 있다


 

팬지의 날 선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뾰족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지적은 반박하기 어렵다. 때론 그 촌철살인이 너무 정확해 웃음이 새어 나오기까지 한다. 강점이 될 수도 있었던 그 관찰력과 표현력이 좋은 방식으로 발휘되지 못하는가.

 

‘나는 틀린 말은 안 해’라는 자기합리화가 그 가능성을 틀어막고, 자기 객관화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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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팬지의 상처가 무엇인지, 엄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인지, 방어기제와 신경증, 우울이 어떤 양상으로 굳어졌는지 영화는 끝내 다 설명하지 않는다. 그 공백은 의도된 부재로 끝내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가설 수 없다. 곳곳의 공백이 시원치 않은 감정을 주기도 하지만, 섣부른 판단보다 인물을 더 오래 응시할 기회로 다가온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었다면 더 용서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의외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설명은 용서를 보장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문제들에도 이유가 있듯, 그녀에게도 이름 붙이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음을 상상하며 눈물을 훔칠 뿐이다.

 

 

 

열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이 필요해


 

팬지를 끝까지 품는 사람은 여동생 샨텔이다. 팬지의 말에 가장 많이 상처받았을지도 모르는 그는 한편으로 팬지의 사연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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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문제(Problem)’에 집중한다. 문제는 직접적이고, 그 부정적 영향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를 ‘해결(Solve)’하려 든다. 방법은 단순하다. 나쁜 말을 좋은 말로 교정하거나 말문을 닫게 만들고, 나쁜 행동을 좋은 행동으로 바꾸거나 금지한다. 그러나 그런 해결은 대개 일시적이다.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원인’에 다가서야 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조치에서 그친다. 빠르게 돌아가는 삶이 상처를 톺아볼 시간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지하철역에서 취객을 위로한 청년의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취객이 난동을 부렸고, 이를 말리던 경찰과의 몸싸움이 격화되던 순간, 청년이 다가가 취객을 안아주었다. 취객은 몸부림치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싸우고 싶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주길 바랐던 것이다. 종종 의도와 다르게 겉으로는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것은 보통 ‘민폐’라는 오명을 입고 있다.

 

다만 바쁜 현대사회에서 그 모든 것을 돌볼 여유가 없다. 민폐는 절대 저지르면 금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모두가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하는 팍팍함보다 내가 한 번 실수하면, 다른 사람 실수를 한 번 눈감아주는 여유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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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처럼 삶은 여전히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과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마이크 리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갈등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이 점이 답답함으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단에 앞서 서로를 마주해야 하고, 결국 그의 곁에 머물러야 한다. 한 발 떨어져 관조의 시선으로 도움이 될 만한 몇 마디를 던지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전히 막막한 상황 속에 샨텔은 다시 팬지를 포옹하고, 포용하며 그의 곁에 남을 것이다.

 

팬지에게는 해결이 아닌 회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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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증을 고치기 위해서 날을 정해 물건을 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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