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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는 전시 제목에 걸맞게 나폴리를 거니는 느낌을 주었다. 동선을 따라 천천히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19세기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정치적, 사회적 전환의 중심에 있던 19세기 나폴리 격동의 시간을 회화로 만나보았다.




여성을 만나다


 

18세기 회화 속 여성은 귀족과 서민이라는 계층에 갇혀 한정적으로 묘사되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한층 더 다채롭게 표현되었다.

 

전시의 큰 두 가지 갈래 중 첫 번째 갈래에서는 이러한 다채로운 여성상을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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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레즈 슈바르체, <마리아 술리에의 초상>,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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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벤함 헤이, <농민여성>, 1872.

 


귀족 여성을 그린 작품과 서민 여성을 그린 작품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진 점은 역동성이었다.

 

<마리아 술리에의 초상> 속 술리에 부인은 우아하고 정적이지만, <농민여성> 속 여성은 눈빛에서부터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이 농민 여성의 귀와 목에 걸린 액세서리가 보인다. 도시 여성들과 비슷하게 치장한 것일까 싶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아우라가 느껴져 액세서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농민여성> 옆에는 염소 옆에서 풀을 뜯는 어린 목동 소녀를 그린 작품도 있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가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이후에 만나본 다른 작품들에서는 어머니이자 가정의 여왕으로서의 여성, 일상의 안녕을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여성, 사교계의 세련된 인물로서의 여성 등 계층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상의 확장과 진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섹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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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 비앙키, <공포>, 1895-1897.

 

 

<공포>라는 작품은 어머니로서의 여성을 그려냈다. 이번 전시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였다.


여성과 여성의 딸로 보이는 아이가 겁에 질려있다.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이 프레임 가득 담겨 있어 무엇에 의한 공포인지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공포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어두운색이 아닌 밝은 색채를 활용하여 그런지 이질적인 공포감이 느껴졌다.

 

선이 명확하지 않고 투박하며 거친 질감 표현 역시 희뿌연 안개와 구름을 표현해 미지의 공포를 더 극대화한다.




격동의 시기, 리소르지멘토



전시에는 인터미션이 있다. 19세기 이탈리아를 다룬 전시답게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접할 수 있었다.


19세기 전반부터 후반까지 60여 년에 걸친 시간 동안 이탈리아에서는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라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전개되었다.


리소르지멘토는 정치적 통합을 넘어서 이탈리아인들에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정체성이라는 비전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결국 다양한 문화 영역에도 영향을 주어 예술, 문학, 회화 등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회화는 사회의 기록으로서 당대 수많은 작가들이 시도했던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베리즈모(Verismo)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담고 있다. 격변의 시기의 중심에 있던 나폴리의 풍경, 정서가 회화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참여했던 조아키노 토마의 작품들이 세 번째 섹션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조아키노 토마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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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아키노 토마, <자화상>, 1880.

 


조아키노 토마는 여섯 살에 수도원과 고아원을 전전하는 불우한 삶을 겪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로 이어져 어머니, 할머니, 병든 아이, 청소년기 여성 고아들이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고, 음울한 국내 공간이 주 회화 소재가 되었다.

 

그의 작품에는 통일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으로서 그가 느꼈던 ‘실존적 불안’이 섬세하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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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조아키노 토마, <쌍둥이>, 1882.

▲ (아래) 조아키노 토마, <죽어가는 아들>, 1882.

 


조아키노 토마의 작품 중 가장 오래 멈춰서서 보았던 작품은 바로 <죽어가는 아들>이었다.

 

바로 위에 전시된 <쌍둥이>라는 작품 속 두 아이의 맑은 눈을 보다가 죽어가는 아이의 눈을 보니 허망함이 느껴졌다. 죽어가는 자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캔버스에 담아내야 했을 토마의 마음은 어땠을지 생각하다 보면 마음도, 발걸음도 무거워져 쉽사리 다음 작품으로 발을 옮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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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아키노 토마, <성베드로의 헌금>, 1861.

 


<성베드로의 헌금>이라는 작품은 앞서 이야기한 실존적 불안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칙칙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한 사제가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자신이 거둔 ‘베드로 헌금’을 혁명운동에 전달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안정과 권위를 상징하는 성직자가 혁명 앞에 주저하는 모습은 마치 기존의 체제와 새로운 변화 사이의 갈림길에 있던 당시의 나폴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자연과 일상


 

다소 어두웠던 동선들을 지나 전시의 마지막을 향해 이동하면 밝고 화사한 벽지가 반겨준다.

 

이곳에서는 광활한 지중해의 풍경과 자연의 힘, 그리고 그것과 공존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포실리포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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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첸초 카프릴레, <해변에서>, 19-20세기.

 


<해변에서>는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이다. 평화롭고 일상적인 바닷가의 모습, 그리고 밝은 옷차림의 남성과 그를 바라보는 여성을 담담하고 소박하게 담아냈다. 등을 보이고 있는 여성은 아마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화려함보다 평범함을 담고자 했던 포실리포 화가들의 여러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서 나에게 가장 나폴리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해주었다. 전시장의 에필로그에는 뤼미에르 형제가 다큐멘터리에 담은 나폴리 영상이 있다. 흑백 화면 너머로 보이는 평온한 나폴리를 오래도록 서서 감상했다.


전시장에 들어설 땐 낯선 도시를 방문한 여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작품들을 보았지만, 전시의 마무리로 향할수록 나폴리에 깊이 들어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았다. 19세기 화가들이 삶의 격변 속에서 기록한 다양한 인간상과 공간, 자연의 풍경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에게 닿는 생생한 감각으로 남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볼 색다른 포인트는 벽지의 색상이었다. 파트마다 벽지의 색상이 다 달라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어떤 곳보다도 조아키노 토마의 작품이 전시된 곳에서 벽지의 색상이 주는 분위기와 몰입감을 크게 체감할 수 있었다. 어둡고 묵직한 벽지의 색상은 조아키노 토마의 작품 세계가 보여주는 특유의 음울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평일 11시, 14시, 16시에는 정규 도슨트가 있다고 하니 시간에 맞추어서 함께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는 삼성역 인근 마이아트뮤지엄에서 11월 30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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