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가끔은 우연히 방문한 전시회에서 난해하고도 추상적인 메시지에 그 뜻을 이해하려 애쓴 적이 많다. 그러나 그 앞엔 언제나 ‘문화’가 있다. 마냥 복잡하게만 느껴지던 예술을 ‘문화’를 들여다보고 같이 머금어본다면, 조금은 가까워지는 것 같다. 당대 그림을 그리던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부터 화가가 가지고 있던 내면의 이야기까지. 폭넓은 이야기로 나폴리를 조망하게 도와준 전시회를 소개한다.
삼성역 인근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개최하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은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미술관, 그리고 그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에 대해 간략히 짚으며 시작한다. 이번 기획전의 부제는 ‘나폴리를 거닐다’다. 이 문구처럼 관람객들이 촘촘하게 짜인 미술관 동선에 따라 걸음을 옮겨보며 이탈리아의 역사와 미술사를 함께 이해해 보고 조합해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역사적 배경
이탈리아는 ‘리소르지멘토’라고 부르는 통일 운동을 60여 년에 걸쳐 진행했다. 여러 개의 왕국과 공국으로 나뉘어 있었던 이탈리아반도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고자 한 움직임이다. 이 과정에서 ‘주세페 가리발디’의 큰 공으로 남부 지역이 해방돼 북부 지역과 원활한 교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왕권 중심의 체제가 무너졌고 푸르른 아말피 해변처럼, 화가의 시선이 잔잔한 파도로 서민들의 발끝에 닿았다.
가장 첫 번째 파트에서 그 시선으로 그려낸 여성 형상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우아함과 화려함을 고루 갖춘 귀족 여성들과 대비되는 서민 여성들의 이미지가 또렷하게 빛나는 것이 특징이다. 서민들은 산업화 및 도시화, 그리고 교육, 소비 등으로 점차 세력을 키웠다. 니콜로 칸니치의 ‘목동 소녀’에서 보이듯 부드럽게 염소를 어루만지는 소녀의 모습이 거친 목초지의 질감과 대비되어 생기가 느껴진다.
니콜로 칸니치(Niccolò Cannicci, 1846–1906), 《목동 소녀들》(Pastorelle che filano)
계몽, 그러나 명확한 대비
이어지는 방에서는 빈첸초 부시올라노의 ‘가엾은 사포’가 중심을 지키고 있다. 사포는 고대 그리스의 가장 오래된 여성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이 작품은 고전적인 요소로부터 영감받아 사포가 절벽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의 순간을 그려낸 것이다. 오리엔탈리즘 상상력을 가미해 재탄생한 인물에게서 동서양의 만남이 조화롭게 물씬 느껴지기도 한다.
빈첸초 부시올라노(Vincenzo Busciolano, 1836–1900), 《가엾은 사포》(La povera Saffo)
낭만을 표현하려 했던 화가들의 시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실과 이상 사이에 있는 대비가 명확히 느껴진다. 상징과 사실주의를 곁들이며 문학 속 이상을 그림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또한 중산층 여성들이 상류층 여성들의 모습을 모방하며 동경과 욕망을 드러냈다. 그러나 조반니 볼디니의 ‘공원 산책’에서 느껴지는 황량함처럼, 어딘가 우두커니 남아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현실이 다소 공허하고 쓸쓸한 감정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조반니 볼디니 (Giovanni Boldini, 1842-1931), 《공원 산책》(Walk in the Park)
어느덧 전시는 중반에 가까워졌고 다음 방에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공간의 내면이자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실내’에 집중한다. 당시 아이들을 상대로 이루어지던 놀이와 소품으로, 또 신고전주의가 눈에 띄었던 미술 사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천장화로 시선을 옮긴다. 당시 어떤 이상을 지향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다양한 작품들을 손 안에 가뿐히 담아내듯 벽의 색은 밝은 상앗빛인데, 분위기에 반(反)하는 작품이 섹션 끝에 걸려있다. ‘베토벤을 위한 습작’이다. 이 그림을 그린 리오넬로 발레스트리에리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베토벤’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빛나는 순간을 위해 소리 없이 이루어지던 경험을 담백하지만 어둡게 담아냈다.
젠나로 말다렐리 (Gennaro Maldarelli, 1796-1858), Four mythological scenes
어둡고 쓸쓸한 구석을 밝히다
자연스럽게 관람객들은 어두운 전시실로 이동하게 된다. 그곳에는 직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또 쓸쓸하면서도 너무나 일상적인 서민의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안토니오 만치니가 그린 ‘아픈 소년’ 주변에는 오렌지 핑크빛 코랄 색상이 환하게 감싸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햇살을 머금은 듯 발랄하고 따듯한 에너지가 어둠 속 그림을 밝혀준다.
안토니오 만치니 (Antonio Mancini, 1852–1930), 《아픈 소년》(Ragazzo Malato)
이와 가장 닮아있는 화가로, 바로 옆에서 소개하고 있는 ‘조아키노 토마’가 있다. 그는 실제로 고아가 되어 수도원과 보육원을 전전하는 불우한 삶을 겪었다. 그럼에도 서정적이고 내밀한 주제를 그려냈던 화가의 작품들이 우리 옆에서 늘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다. 어쩌면 화가들은 삶을 깊게 조명하면서 묵묵히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역할일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다시 찾은 광명
‘베리스모’라는 미술 사조가 있다. 이탈리아어로 ‘진실’을 뜻하는 단어 ‘Vero’에서 파생되었는데 사조로 등장한 것도 이와 연결되어 있다. 신화 등 이상화된 미(美)보단, 눈앞의 현실과 농부, 노동자, 상인, 풍경 등에 주목하려는 것이 바로 그 의미이기 때문이다. 뜻을 알고 나니 빈첸초 카프릴레의 ‘해변에서’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바닷가의 먹먹하고 싸그락한 소리 위로 음표처럼 들린다. 또 빈첸초 밀리아로의 ‘야외 트라토리아’에서는 나른하고 흥겨운 음악 소리가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울린다.

빈첸초 카프릴레 (Vincenzo Caprile, 1856–1936), 《해변에서》(On the Beach)
모든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오래전 낯선 대륙에서 날아온 흑백의 영상과 사진들이 나폴리 산책을 마치고 나가는 길을 배웅해 준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듯 가본 적도 없는 도시가 바로 내 옆에 있는 것 같다. 조각조각 모인 미술 작품들과 나폴리의 역사 이야기들로 장소와 나 사이의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순식간에 생략하더니, 가까워진다. 그 끝에서 비로소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말의 뜻을 깨달았다. 발끝에 나폴리가 닿을 때까지, 그곳을 꿈처럼 그리워하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