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5 청년예술가도약지원작으로 선정된 오현택·오명석의 『TRANS III: 주어 없는 움직임』.
이 작품은 언어를 완전히 배제한 채 오로지 신체와 밧줄, 그리고 사운드만으로 60분을 채워낸다. 이 실험적 퍼포먼스는 일종의 부조리극으로도 볼 수 있다.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8월 5일부터 6일까지 단 이틀간 선보인 이 작품은, 움직임 퍼포머 오현택과 사운드 퍼포머 오명석이 각각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함과 동시에 하나의 공명체를 만들어낸다.
현대 사회의 효율성과 표준화 구조 속에서 개인의 리듬이 어떻게 동일화되는지를 밧줄이라는 매개를 통해 물리적으로 질문한다. 작품을 관람한 관객들은 답변 없이 질문을 안고 자리를 나서게 된다.

1. 밧줄이라는 부조리한 세계
관객에게 주어진 언어는 단 하나뿐이다. “주어 없는 움직임”.
언뜻 뜻을 가늠하기 어렵다. 과연 ‘주체’ 없는 움직임이 가능한가? 그것을 배제했을 때 움직임이란 누구의 것인가?
언어의 자투리만을 들고 자리에 앉았을 때, 무대 위엔 미로와 같이 기하학적으로 구부러져 있는 밧줄이 놓여있다. 그 가운데 한 퍼포머가 엎어진 채 정지해 있다. 조명이 집중되고도, 이 풍경은 변함 없이 지속된다. 웅성이는 사람들의 소리, 이따금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점차 고조되는 사운드가 이 ‘장면’을 채운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그리고 모두가 주어진 사운드에 집중하는 순간, 퍼포머가 벌떡 일어난다.

ⓒ최근우
퍼포머 오현택이 다루는 밧줄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그것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리는 고도처럼, 명확한 정체성을 갖지 않은 채 끊임없이 의미를 생산하는 존재이다. 처음에는 가지런한 밧줄 미로 사이사이를 탐색하던 그가 점차 밧줄을 꼬아보고 모양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마치 부조리극의 등장인물이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하면서도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려는 몸부림과 닮아 있었다.
밧줄을 타려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실패한다. 무대 가장자리를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힘겹게 타는 모습에서는 시지프가 바위를 굴리는 것 같은 절망적 반복이 느껴진다. 주어가 없음은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모든 실패는 여러 주어를 가지는 동시에, 무엇도 가지지 않으니. 그것은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도 그는 계속해 몸부림친다. 밧줄-관계, 사회적인 시선, 제도, 규범, 질서, 우리를 가두는 그 모든 것-에 순응하지 않으려, 억압당하지 않으려 한다. 이를 보며 우리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주어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이 모든 몸부림이 주어로부터 시작했다는.
2. 정적이 만드는 소음의 철학

ⓒ최근우
『주어 없는 움직임』에서 오명석의 사운드는 음악이라기보다 환경에 가까웠다. ‘음악’이 아닌 ‘사운드’ 퍼포머라 칭한 이유도 이것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공기음, 금속음, 파이프 소리, 우리의 공간을 채웠던 다양한 소리들, 그중 일부를 선별하고 선별해 여기에서 재구성해낸다. 그리고 그 선별된 ‘사운드’에는 ‘정적’ 역시 포함되어 있다.
사운드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공명과 정적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밧줄과 오현택 안무가의 움직임과 더불어, 오명석의 사운드를 한자리에서 접하며 관객은 이들 사이에 끈질긴 연결을 만들어 내려 자연히 노력하게 된다.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시각, 청각에 자연히 집중하게 된다.
진동을 오롯이 감각하며 공간 전체를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주어를 되찾으려는 움직임, 언어가 부재한 퍼포먼스를 관객 내에서 끈질기게 구조화하려는 노력.
3. 과연 주어 없는 움직임은 성공했는가?
카뮈가 말했듯, 인간은 합리적 설명을 갈구하지만 세계는 침묵한다. 이 침묵 앞에서 인간은 부조리를 느끼고, 그 부조리와 맞서 살아가야 한다. 오현택은 작품 내내 밧줄과 맞서고, 굴복하고, 다시 저항한다. 이 과정은 이러한 실존적 투쟁을 물리적 구현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배치되어 있던 밧줄이 점차 얽히고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은, 인간 개인이 원초로 돌아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빳빳하게 놓여있던 밧줄. 규격에 맞춰 미로처럼 놓여있던 밧줄이 얽히고 꼬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가는 과정.

ⓒ최근우
현대 사회의 효율성과 표준화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고유한 리듬은 얼마나 쉽게 동일화되고 마모되는가? 퍼포먼스는 그러한 제도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개인의 고유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거꾸로 주어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기에 ‘주어 없는 움직임’은 실패로부터 완성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면서 자아를 얻게 된다. 사회적인 압박과 규격화된 현대에서, 이를 인지하고 다시 처음부터 나를 재구성해가는 과정. 그것이 설령 얽혀 있을지라도,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TRANS III: 주어 없는 움직임』은 완성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60분 동안 언어 없이 진행되는 이 공연에서 관객은 단순한 관찰자의 위치에서 벗어난다. 명확한 서사가 없기에 스스로 의미를 발굴해야 했고, 계속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이 실험적 퍼포먼스는 이미 막을 내렸지만, 10월 스튜디오 오프비트에서 아카이빙북과 함께 상영회 및 애프터 토크가 예정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