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연의 선율' 은 보호자를 잃은 열세 살 수연과, 입양된 일곱 살 선율의 여름을 따라간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수연은 홀로 남았다. 세상은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수연에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 속에서 이상적인 가족을 발견한다. 다정한 엄마 유리, 든든한 아빠 태호, 그리고 입양아 선율. 아침 식사와 웃음소리, 햇볕이 잘 드는 부엌. 화면 속 풍경은 수연이 오랫동안 그려왔던 ‘집’의 모양과 닮아 있었다.
“아이를 한 명 더 입양할 계획”이라는 말은, 거의 사라졌던 희망을 다시 키워 올렸다.
수연은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운다.
선율의 하원길을 따라가고, 집 앞까지 배웅하며 자연스럽게 유리와 눈을 맞춘다. 유리가 갈치를 좋아한다고 하자, 직접 갈치조림을 만들어 찾아간다. 아직 중학생도 안 된 아이가, 마치 면접을 치르듯 매일 최선을 준비하는 모습은 애틋하면서도 숨이 막힌다.
그 노력은 잠시 통하는 듯 보인다. 유리는 수연에게 호감을 보이고, 선율도 마음을 연다.
하지만 카메라 밖의 부부는 다른 얼굴이었다. 그들은 결국 한밤중에, 수연과 선율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남겨진 두 아이는 재개발을 앞둔 수연의 동네로 돌아온다.
몇 번이나 선율을 놓아버릴 기회가 있었지만, 수연은 끝내 그러지 않는다. 선율도 악몽을 꾸는 수연 곁을 밤새 지킨다. 서로를 보살피는 일 속에서, 두 아이는 점점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간다.
'수연의 선율'이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아이들이 그들을 지켜줄 어른의 보호는 비어 있고, 그 자리를 메우는 건 결국 또 다른 아이들이다. 어른들이 비운 책임의 자리를,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짊어지기 때문에 이는 아이들이 안정적인 환경이었다면 생겨날 수 없는 관계이다.
생겨나선 안되는 보호자다.
철거를 기다리는 동네 한가운데서, 수연과 선율은 보호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간다.
영화는 한국의 입양제도 및 법제적으로 지켜야할 보호제도의 허술함과 어른들이 만들어낸 제도사이로 떨어진 이들의 관계로서의 ‘돌봄’을 나란히 놓는다.
보호망 없이 세상을 버텨야 하는 아이들의 시선, 느리고 무력한 구원, 그리고 사회제도에 비판적 시선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에는 사각지대의 아동을 주제로 다룬 션 베이커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법적 보호자는 아니지만 '바비'같은 어른들의 돌봄이 있었던 반면 '수연의 선율'은 정서적으로 기댈 어른이 없다. 이는 또 다른 아이가 보호자가 되어버리는 역설이 남는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끝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세계 속에서, 두 영화는 똑같이 아이들의 등을 오래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