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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범죄자 맥머피는 정신병원이 교도소보다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해 일부러 미친 척을 해서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 그러나 병원에 수감된 동료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맥머피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병원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사실은 간호사 레취드의 통제 아래 환자들의 자유가 철저히 억압당하는 공간이었다. 이에 불만을 느낀 맥머피는 환자들을 병원 밖으로 데려가 낚시를 다녀오고, 병실에서 파티를 벌이는 등 의도적인 반항을 시도한다. 그러나 병원의 막강한 시스템 앞에서 한계를 느낀 맥머피는 결국 탈출을 감행한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2장 제10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외에도 헌법 제10조에서 제39조에 이르는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는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국민의 다양한 기본권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기본권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존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부여하는 기본권을 통해 국민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든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맥머피와 함께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들의 모습을 보라. 그들은 원하는 대로 의식주를 선택할 자유뿐만 아니라 솔직하게 발언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생활하고 있다. 그들의 일상은 삶이라기보다는 연명에 가까워 보인다. 자신의 모든 것을 외부의 통제에 맡기고 하루하루 시간만 흘려보낼 뿐인, 죽음과 다름없는 삶. 이런 삶의 방식에서 그들의 존엄이 지켜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존엄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가 '자유'라는 것이다. 실제로 헌법 제14조에서 제22조에는 거주, 직업, 주거, 종교, 언론, 집회, 예술 등에 대한 국민의 자유가 명시되어있다. 이렇듯 자유와 존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제외하고 다른 하나를 논하기는 무척 어렵다. 특히 자유의 외연이 확장될 때는 더욱 그렇다.
어떻게 자유로운가

자유에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있다. 소극적 자유는 '~로부터의 자유'라는 말로 표현되며 외부로부터의 강제와 방해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적극적 자유는 '~로의 자유'라는 말로 표현되며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중 적극적 자유는 다시 말해 개인이 자기 자신을 실현하고 자아를 완전히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에서 주목할 점은 강제처럼 보이는 환자들의 부자유가 사실은 대부분 자원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도소에서 이송된 맥머피와 몇몇 중증 환자들을 제외하면 그들은 스스로 병원에 갇히기를 선택했다. 즉 언제든지 퇴원할 수 있는 소극적 자유가 있음에도 그들은 병원의 폭력적인 울타리 안에 머무르기로 한 것이다.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맥머피가 말한다.
모두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냐, 아니라고.
길거리를 버젓이 활보하는 머저리들과 비교해보면 별반 차이 없어.
어떤 이들에게 자유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신에게 그것을 누릴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맥머피의 위와 같은 대사는 병원의 돌봄과 치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단정짓는 환자들에게 용기를 가질 것을 촉구한다. 맥머피의 파격적이고 기발한 반항을 함께하며 환자들은 점차 그에게 동화되어간다. 위축된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여러 환자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인물은 추장이다.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연기하며 모두를 속여온 그는 맥머피에게 알코올 중독으로 망가져버린 아버지의 목숨을 스스로 거둔 과거를 고백한다. 맥머피는 그에게 함께 병원을 탈출할 것을 제안하지만 그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거절한다. 결국 맥머피는 혼자 탈출하려 했지만 직원들에게 붙잡힌 뒤 전두엽 절제술을 받게 된다.

전두엽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뇌의 부위라고 말할 수 있다. 논리적 판단, 계획, 감정 조절, 운동, 언어, 의사소통, 사회적 상호작용 등 다양한 고등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함께 병원을 떠나자며 맥머피를 찾아온 추장은, 전두엽을 절제당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그를 보고 절망한다. 그는 추장을 알아보긴 커녕 제대로 된 지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육체라는 빈 껍데기만 남은 그의 삶은 더 이상 자유로울 수도, 존엄할 수도 없다. 병원 밖으로 풀려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적극적 자유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홀로 날아간 새

이를 아는 추장은 도저히 맥머피를 그대로 두고 갈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친구를 위해 가슴 아픈 결정을 내린다. 오래 전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의 존엄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목숨을 거둬주기로 한 것이다. 적어도 인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자신에게 자유를 알려준 소중한 친구를 직접 죽인 추장은 창문을 깨부수고 병원 밖으로 탈출한다. 숲을 배경으로 서서히 멀어져가는 추장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엔딩의 여운이 무척 강렬하다.
영화의 제목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결국 추장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뻐꾸기를 뜻하는 'cuckoo'는 '미친 사람'이란 뜻도 있어 ‘뻐꾸기 둥지(cuckoo's nest)’는 속어로 정신병원을 의미한다. 그가 갇혀있던 곳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병원이 아니라 갇힌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낙인찍는 감옥이었다. 단순한 감금의 장소가 아닌,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공간인 것이다.
따라서 추장의 탈출은 자기 초월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 창문을 높이 뛰어넘는 추장의 모습은 날아오르는 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추장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모두 손에 넣은, 뻐꾸기 둥지의 유일한 인간이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영화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자유롭게, 존엄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적극적 자유라는 개념이 매우 모호하게 느껴졌다. 소극적 자유는 외부의 억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지만, 어떻게 살아야 자기를 실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부모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했고 직접 돈을 벌어 생활하고 있으며 하고자 하는 일을 스스로 선택했다. 하지만 나 자신이 그다지 존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나도 스스로를 미친 사람이라고 여기며 병원에 갇혀 있는 영화 속의 환자들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존엄이란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믿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추장을 닮은 새 한 마리를 품으며 살기로 했다. 분명 뜻대로 살고 있는데 문득 스스로가 참을 수 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잠시라도 좋으니 우선 떠나라.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몰라도, 자신을 온전히 느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돌아올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먼저 지켜내야 할, 당신 안의 소중함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