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렸을 적 위인전에서 한 번쯤 읽어봤을 법한 마리 퀴리의 이야기로부터 그녀가 훌륭한 과학자 중 한 명임을 알고 있다. 성공한 과학자로서의 퀴리는 익숙하다. 하지만 고군분투하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간 인간 퀴리는 어떨까. 뮤지컬 <마리 퀴리>는 단지 한 명의 위대한 과학자를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 이민자, 노동자, 과학자라는 다층적 정체성을 가진 한 인물을 통해 인간과 과학의 윤리, 연대, 책임이라는 보편적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는 퀴리가 소르본 대학교로 진학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퀴리는 우연히 만난 안느에게 자신에 대해 소개하며, 주기율표를 ‘지도’라 부르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소를 찾고자 하는 열정을 드러낸다. 그녀의 연구는 단순한 과학적 탐구를 넘어서, 세계 속에서 폴란드인이자 여성이라는 주변부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곧 실존적 투쟁의 일환이기도 하다. 새로운 원소에 자신의 언어를 붙이는 일은, 말하자면 여성 과학자로서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정치적 행위인 셈이다.
이 같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자기 존재의 표명 욕구는 퀴리가 끝나지 않을 듯한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조국의 이름을 딴 '폴로늄'을, 이어 만능 물질처럼 여겨졌던 '라듐'까지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발견은 예상치 못한 비극의 서막이기도 했다. 퀴리의 연구를 지원했던 자본가는 라듐을 산업화하여 야광 시계, 화장품, 의약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했고, 이 과정에서 '라듐 걸스'로 불리는 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점차 방사선 피폭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라듐의 위험성은 당시에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학의 위대한 진보가 누군가에게는 파멸을 불러올 수 있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퀴리는 견디기 어려운 고뇌에 빠진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퀴리가 맞닥뜨리는 윤리적 책임이라는 주제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라듐의 부작용으로 죽어간 여성 노동자들의 존재는 이 작품을 단순한 위인 영웅담에서 사회비판적 드라마로 확장시키며, 과학이 인류에게 무엇이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이러한 서사의 무게를 뒷받침하는 데 있어 배우들의 연기력은 탁월했다. 마리 퀴리 역을 맡은 배우들은 퀴리의 과학자로서의 냉철함과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했고, 안느 역의 배우들은 노동자이자 진실을 추구하는 시민으로서의 감정을 진정성 있게 전달했다. 이 연대의 서사는 단순한 서브 캐릭터를 넘어서 극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로 기능한다.
무대 연출도 감정선을 따라 빈틈없이 채워졌다. 무엇보다도 이번 시즌에서 새롭게 더해진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사운드는 각 장면의 긴장감과 감정을 더욱 극적으로 고조시키며 관객의 몰입을 한층 높였다. 전반적으로 오감에 호소하는 무대 경험이 빼어났다.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퀴리가 라듐의 의학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동물 실험을 모티브로 한 군무와 노래다. 여기서 배우들은 쥐와 같은 동물의 움직임을 형상화하며 과학의 이름 아래 감춰졌던 생명 착취의 문제를 춤과 노래로 표현했다. 짧지만 강렬한 이 장면은 동물 실험에 관한 윤리적 질문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생명에 대한 경외와 책임 의식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결국 퀴리는 과학적 성취의 영광과 그에 따른 비극을 모두 목격한 인물로서 무대 위에 선다. 그러나 작품은 그 책임을 결코 퀴리 한 사람의 몫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퀴리의 발견을 상품화한 자본,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사회, 무지한 채 소비했던 대중들 모두가 이 비극에 일정 부분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렇기에 "마리 퀴리"는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물음을 우리 모두에게 되돌린다. 과학은 한 사람의 천재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작동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합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 뮤지컬은 단지 과거를 복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숙고와 논의의 장을 열어준다.
"마리 퀴리"는 단순한 전기적 서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억눌렸던 목소리들, 희생된 존재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꿋꿋이 나아갔던 여성들의 연대를 포착하는 작품이다. 이 뮤지컬을 통해 관객은 한 여성 과학자의 여정을 따라가며, 동시에 우리가 직면한 윤리의 문제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우리의 마음에 남는다. 과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