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색 배경의 포스터에 한 여성이 빛이 나는 무언가를 번쩍 든 채 걸어가고 있다. 그 아래에는 'MARIE CURIE', 과학자 마리 퀴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폴란드 출생의 과학자 마리 퀴리(1867~1934)는 방사성 원소인 라듐을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체불명의 초록색 빛을 내고 있는 무언가, 바로 라듐을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누구나 한 번쯤은 마리 퀴리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위대한 업적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큰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 종류의 고통이 수반되었을 거라는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자세한 내용을 듣고 보면서 일생을 따라가보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일생을 따라가보는 일. 지난 7월 25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마리 퀴리〉는 위대한 과학자가 겪어온 일생을 무대 위에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면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과학자, 이민자, 여성, 인간으로서의 마리 퀴리를 그려내고 있다.
풍성한 사운드를 위해 7인조 라이브 밴드와 함께 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무대 위의 배우들뿐만 아니라, 무대와 맞닿아있는 아래의 공간에서 라이브 밴드가 각 넘버를 연주한다. 하나의 공연에서 다채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포인트다.

'최초'의 여성 소르본 대학 교수 & '최초'의 여성 노벨상 & '최초'의 두 분야 노벨상. 이 모든 수식어는 바로 주인공인 마리 퀴리를 가리키고 있다. 수식어를 갖기까지, 또 가지고 난 이후에도 '최초'의 무게를 견뎌내었을 마리 퀴리의 모습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이 뮤지컬에서 어떻게 섬세히 표현되는지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여성 차별이 있던 과학계에서 프랑스로 유학을 온 이민자 마리 퀴리의 모습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구현된다. 꿈에 그리던 소르본 대학에 입학했지만 '미스 폴란드'라 불리며 철저한 이방인이었던 그녀의 억울한 표정, 답답한 마음, 그러나 당찬 포부와 힘 있는 발걸음이 마리 퀴리라는 사람을 대변하고 있었다. 어떤 놀림이나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본인만의 신념을 지켜나가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나간 주체적인 사람. 그런 사람의 태도는 넘버 〈두드려〉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났다.
라듐을 발견하기 위한 마리 퀴리의 끝없는 집중과 집념,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모습은 그 인내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라듐은 도대체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그녀의 삶에 필연적인 부분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라듐이라는 존재는 마리 퀴리를 울고 웃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넘버 〈두드려〉를 들으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는 마리 퀴리의 태도가 존경스러우면서도 뭉클해지기도 했다. 비로소 라듐을 발견했을 때, 눈에 고이는 눈물과 웃어 보이는 입가는 그녀가 걸어온 순간순간의 족적이 빛나 드러나는 기쁨이었다.
온 힘을 모아서 부수고 녹이고 집중해
순서만 생각해 있는 힘껏
몸을 내던져 다 부숴지게
저 높은 산도 잡념까지도
두드려 오른쪽 검지에 집중해 간단해
오로지 순서만 생각해
기구 열고 크로노미터를 짧게 3번
좋아 지금이야 놓치지마 순간의 무게
- 넘버 〈두드려〉 中
새로운 방사성 원소를 발견하는 기쁨은 그녀를 웃게 했지만, 위험하고 해로운 것으로 라듐의 정의가 바뀌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마리 퀴리가 겪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은 공연의 연출과 함께 극적으로 흘러갔다.
죽은 이들이 화자로 등장해 본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름을 외치는 연출적 흐름은 라듐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마리 퀴리 모르게 공장을 운영했던 공장장의 이기심과 그 사실을 알게 된 마리의 깊은 슬픔,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를 동시에 표현해냈다. 라듐의 위험성을 알고 있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은 관객 한명 한명에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주어 인상깊었던 연출이었다.
그 연출 속에서 라듐으로 죽어나간 이들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마리 퀴리의 간절함도 돋보였다. '또 다른 이름'이 되어버린 라듐의 실체를 자기 자신이 밝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 피에르를 부검해 사인을 밝혀내어 희생 된 이들의 이름을 되찾아준다.
난 이상한 괴짜야
난 떠도는 이민자
난 설쳐대는 폴렉
내 이름 없었지
홀로 작은 유성처럼
떠다니는 짙고 푸른 너
제 몸에 상처를 내어
폭발하고 독하고 모난 나
나의 또 다른 이름
나의 또 다른 이름
너
라듐
바로 너
그래
바로 나
라듐
바로 나
- 넘버 〈또 다른 이름〉 中

마리 퀴리는 일생의 대부분을 연구에 몰두하고 성과를 이뤄내며 살아왔다. 연구를 할 때면 항상 혼자였던 마리는 홀로 외로운 시간을 견뎌내어 혼자의 힘으로 세상에 밝은 빛을 전달했다. 그 빛이 한때는 어둠으로 변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곧바로 일어서서 새로운 대안을 찾았다.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으로 세상을 밝힌 과학자의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마리 퀴리의 삶이 지금까지 회자되고, 전 세계에서 귀 기울이지 않을까 한다. 과학자, 이민자, 여성, 그리고 그 너머의 인간으로서도 마리 퀴리가 써 내려간 삶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담은 마리 퀴리의 삶은 2020년 초연 이래 창작 뮤지컬로 꾸준히 작품성을 인정받아오며 폴란드·일본·영국 거쳐 서울로 이어지는 찬란한 여정을 펼쳐온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