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치된 믿음
『방치된 믿음』은 언론인의 시선으로 오늘날 무속 문화의 어두운 단면을 조명한 책이다.
책의 제목에서 ‘믿음’은 종교적 의미에서의 순수한 신념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세속적인 복을 비는 행위라기보다는, 정신적 수양과 정화에 가까운 개념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억울하게 죽은 이를 위로하거나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굿을 행했다. 이는 구체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집단적 공감을 기반으로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적 문화에 가까웠다. 이러한 종교적 믿음 위에서 무속인과 신도가 만날 때, 무속은 민속 종교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저자들은 오늘날 이러한 믿음이 ‘방치되었다’고 선언한다.
‘MZ세대’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에서 무속은 종교라기보다 놀이나 오컬트적 요소로 소비되고 있으며, ‘신점’을 찾는 이들은 신도가 아니라 소비자, 무속인은 제사장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소비자 중심의 시장 구조 속에서 무속은 종교적 성격을 잃고 상업적 서비스로 전환되었고, 그 결과 무속 관련 범죄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속 문화는 정치와 미디어 영역까지 침투했다. 대통령이 ‘왕(王)’자를 손에 쓰고 등장하거나, 무속인이 출연하는 연애 예능이 방영되는 일 등은 무속이 사회 전반에 스며든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책의 저자들은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 언론계 출신 기자들로,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오컬트 문화가 아닌, 실제 통계와 질적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책의 목표는 방치된 믿음의 현실을 객관적 데이터와 서사를 통해 정리하는 데 있다.
2. 책의 구성
1부에서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무속 범죄 사례를 소개한다. 1장과 2장에서는 저자들이 직접 인터뷰한 사례를 바탕으로 기자의 시선을 최소화한 전지적 작가 시점의 서사를 구성했다. 몰입감 있는 구성 덕분에 독자는 실제 사례의 실상을 직관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첫 두 장의 제목은 사례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1장의 제목은 판결문 중 “피고인, 무죄일지 유죄일지 신령님께 물어보세요”라는 문장을 인용한 것이고, 2장은 지인의 가벼운 권유인 “이상한 말하면 안 믿으면 되잖아”를 따왔다. 각 사례 뒤에는 ‘취재 후기’가 이어지며, 저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생생한 어조로 복기한다.
이 ‘취재 후기’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었다.
저자들은 피해자들을 구조적 희생자로 바라보며, 그 목소리를 전하려는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을 묵묵히 수행한다. 무속인들이 전통적으로 맡았던 ‘해원’과 ‘신명’의 역할을 저버리고 사리사욕을 위해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기자들은 객관성과 윤리의 원칙을 끝까지 지키려 한다. 이 점에서 ‘취재 후기’는 책의 가장 강렬하고도 감동적인 지점이라 할 수 있다.
1부의 3장 ‘거대한 현혹 시장의 규모’에서는 구체적인 통계자료가 정리되어 있다. 저자들은 무속 관련 범죄로 기소된 320건의 판결문을 분석해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대출 및 투자 사기(144건), 과도한 기도 유도 및 횡령(109건), 성범죄(53건), 돈을 받고 약속 미이행(41건), 폭행(34건).
주목할 점은 법원이 무속적 행위에 대해 내리는 판단이다. 법원은 무속 신앙을 직업으로 인정하고, 무속적 목적에서 비롯된 행위는 사기로 간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사건에서는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판결도 나왔다. 폭행이나 협박 같은 강제력이 없을 경우 성범죄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수사 단계에서 아예 기소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2부에서는 무속의 사회적 확장 양상을 다룬다. 이 파트는 범죄의 영역을 넘어 현대 무속이 사회 속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4장은 지역 사회와 경제적 관계를 맺은 무당의 사례, 5장은 지역별 점집의 경향성, 6장은 온라인 점사와 유료 서비스, 그리고 ‘연출된 무료 점사’의 배우 고백을 다룬다. 7장은 무속 문화의 세계화, 8장은 무속인의 윤리를 조명한다.
2부는 이야기보다 분석과 요약 중심의 구성을 취하며, 무속의 상업화·디지털화·세계화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2부의 핵심은 무속이 서비스업의 형태로서 지역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고 확산되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빠르게 확산되는 문화적 흐름에 대한 우려는 8장에서 정리된다.
3부는 무속의 현재와 미래를 고찰한다. 8장은 무속의 본질과 윤리를 간결하게 다룬 후, 9장에서는 무속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지를 다룬다. 이어지는 K-샤머니즘 연구 교수와의 인터뷰는 무속 문화의 역사적 맥락과 국제적 시선을 더한다.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마무리 파트가 분량이 짧고 제언이 뚜렷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문제의식은 분명하지만, 마지막까지 날카롭게 관통하지 못하고 다소 무뎌진 인상이었다.
마지막 장에서는 무속인 인식 및 현황을 소개한다. 무속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사회적 인식, 교육 실태, 양지화 현황 등을 통계로 정리하고, 유사 업종(점술·사주 등)의 사업자 등록 추이 등을 통해 무속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제도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3. 나가며
이 책은 통계와 사례를 중립적인 시선으로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독자로서 나는 그 통계들이 다양한 사회적 감정과 문제의식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예를 들어, 유료 운세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는 계층은 20~30대 여성이다. 이는 단순히 ‘여성이 미신에 쉽게 빠진다’는 식의 해석이 아니라, 사회에서 자신을 설명할 언어나 통제력을 갖기 어려운 위치에 놓인 이들이 ‘불확실성’을 제어하려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무속을 다룬 콘텐츠들이 쏟아지면서 이를 젠더 중심의 단선적 분석으로 해석하려는 경향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분석이 늘 불편하게 느껴졌다. 무속을 찾는 사람들은 단지 ‘비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사회·심리 구조 속에서 벼랑 끝에 선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여성’이나 ‘MZ세대’라는 키워드로만 설명하고 단순화하는 일은, 또 다른 낙인과 소외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방치된 믿음』은 단순한 무속 비판서가 아니다. 이 책은 믿음의 기능이 사라진 사회에서 무속이 메우고 있는 균열을 추적하며, 그 틈이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우리는 모두 불확실성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 불안을 ‘놀이’로 치환하거나, 서비스로 외주화하면서 해소하려 한다.
하지만 그런 욕망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존재의 서사를 구성하려는 치열한 시도다. 문제는, 그 절박한 틈을 파고드는 사기와 착취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방향이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질문’을 향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것이 고맙고, 또한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