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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추억’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가. 현재의 나를 만들어 낸 과거의 수많은 조각들, 그 속에서도 특히 마음에 깊이 남아있는 것들. 그 조각들은 제각기 다 다른 형태와 향기를 지니고 있지만, 차곡차곡 쌓여 무엇보다도 튼튼하게 지금을 지탱하고 있다.

 

그 ‘추억’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유년기 시절의 기억이다. 가장 강렬한 행복을 겪었던 때이자 가장 순수했던 시절이기 때문일까. 운동장을 가득 채우던 텁텁한 흙먼지와 비릿한 쇳내가 나던 그네와 정글짐, 500원이면 충분했던 군것질거리들과 그 옆에 놓인 시시껄렁한 장난감들을 떠올리다 보면 잊지 못한 즐거움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절 즐겨 보았던 것들 또한 그 어떤 것보다도 가슴 깊이 박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일요일 저녁이면 유일하게 허락된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엔딩 음악과 무한도전의 시그니처 사운드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케이블에서 방영했던 각종 애니메이션은 신세계나 다름이 없었는데, 투니버스와 애니맥스, 카툰 네트워크에 갇혀 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근데 최근 들어, 그렇게 과거로 묻어두었던 추억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분명히 전성기는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그 과거의 익숙한 향기가 산들산들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반갑기도 했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이 ‘백투더퓨처’ 열풍이 마냥 신기했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레트로’가 ‘힙’으로 인식되어서 만들어진 현상일까.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열풍이 어찌 됐든 모두에게 반가운 바람이라는 것이다. 하나하나 반가운 얼굴들이 떠오를 때마다 다 커버린 어른들이 젊고 순수했던 그 마음을 쫓아 다시 ‘추억’의 부활을 외치고 있었다. 아직 느껴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이슈를 가져와 봤다.

 

 

 

‘하이킥’ 시리즈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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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Youtube 숏츠를 점령한 ‘하이킥’ 시리즈는 한국 시트콤 역사에 전설로 남을 드라마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까지, 2000년대를 주름 잡은 이 시리즈를 이을 시트콤은 아직까지 찾아보지 못할 정도다. 그렇게 전 국민의 웃음을 책임졌던 ‘하이킥’ 시리즈가 최근 들어 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드라마 전체가 아니라 드라마 속 ‘관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하트시그널’, ‘환승연애’와 같은 연애 프로그램의 흥행은 수많은 사람들을 과몰입의 길로 이끌었다. 사람의 마음을 두고 벌어지는 다양한 흐름을 읽으면서 미묘한 두근거림과 희열을 같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이킥’ 시리즈 속에서도 그런 복잡미묘한 관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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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교사로 등장한 ‘민용’과 ‘민정’이 그 주인공이다. ‘민용’과 ‘민정’은 극 내에서도 독보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다. ‘서민정’은 사랑스러운 매력과 눈웃음으로 대중들에게 이름 세 글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고, ‘이민용’ 또한 특유의 무심하고 츤데레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많은 팬을 모았다. 가뜩이나 매력적인 비주얼로 인기가 많은 둘이었는데, 이 둘을 둘러싼 복잡한 사연들이 둘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결말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수많은 팬들은 이 둘의 케미를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이킥’ 시리즈의 20주년을 맞아 서민정 배우가 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뉴욕에서도 ‘하이킥’으로 자신을 알아봐 주는 팬들에 대해 감사함을 표해 화제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시트콤이 된 ‘하이킥’ 시리즈, 예나 지금이나 재미도 감동도 변함없지만 지금 다시 보는 하이킥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와닿았을까.



 

애니메이션 재방영, 리메이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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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MZ 세대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애니메이션들 또한 다시 TV 속으로의 복귀를 알리며 동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집집이 케이블 TV가 도입되던 시절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뭐니 뭐니 해도 ‘투니버스’와 ‘카툰 네트워크’같은 애니메이션 채널이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접한 아이들은 그렇게 각자만의 꿈과 희망을 품고 자라났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어른들이 많다. 다만 그때 당시 순수한 마음으로 방영 시간을 기다리며 두근거렸던 설렘만은 지금 다시 느끼기 어렵다. 이제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을 OTT 플랫폼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애니메이션들 말고도 우리들을 즐겁게 해줄 콘텐츠들이 너무 많아졌다. Youtube, 웹툰, 웹소설까지 범람하는 콘텐츠의 세계에서 애니메이션 하나만을 보기 위해 TV 앞에서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러나 그 설렘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아이들에게는 누구나 되고 싶은 ‘나’가 있다며 꿈과 희망을 주었던 신개념 마법소녀물 ‘캐릭캐릭체인지’, 친근하면서도 유쾌한 개구리 외계인들의 일상물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재방영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재방영이 그리 희귀한 경우는 아니지만 이 두 애니메이션은 아직도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어 반기는 팬들이 유독 많았다.

 

 

 

 

모든 여자아이가 한 번씩은 눈가에 브이를 만들게 한 ‘슈가슈가룬’은 더욱 파격적인 소식을 들고 오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재팬 엑스포 2025에서 20주년을 기념해 단편 애니메이션을 공개함과 더불어 리메이크를 결정한 것이다. 공개된 단편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쇼콜라와 바닐라, 그리고 그들이 사는 마계가 3D 그래픽으로 더욱 화려하고 정교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그저 상상으로만 그렸던 세계 속에서 생동감 넘치게 살아 숨 쉬는 쇼콜라와 바닐라를 본 팬들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그 시절 우리들의 ‘티니핑’들이 반가운 컴백을 알리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도 먼 훗날 ‘티니핑’의 소식을 듣는다면 감격하고 기뻐할까. 그때에는 또 많은 것들이 바뀌어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만나는 이 얼굴들은 너무나도 반가울 따름이다.

 

 

 

페리페라X궁 컬렉션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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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추억은 그때 그 모습과는 조금 색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기도 했다. 지금 브랜드 시장은 수많은 ‘콜라보레이션’에 빠져있다. 브랜드와 브랜드를 엮고, 매번 새로움을 자극하며 각기 각층의 소비자를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이 ‘콜라보’가 제일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업계는 바로 뷰티 업계다. 산리오, 미피, 보노보노 등 주 타겟층인 여심을 자극하는 귀여운 캐릭터라면 드럭 스토어에 그 모습이 비춰지는 건 시간 문제다.

 

그 속에서 이들과는 조금 색다른 노선을 선택한 콜라보레이션이 있다. 바로 페리페라와 ‘궁’의 만남이다. 박소희 작가의 순정 만화 ‘궁’은 2000년대 초중반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하며 드라마로도 대성공을 거둔 만화다. 전통과 현대가 결합한 특유의 배경과 감성 속에서 펼쳐지는 두근거리는 러브 스토리가 그 시절 여심을 휩쓸었었는데, 그 감성을 화장품에 녹여낸 것이다.

 

사실 화장품 소비 시장에서 콜라보레이션은 ‘그저 귀여우면 장땡’이라는 감성이 강하다. 원하는 컬러가 없더라도 패키지가 예쁘면 구매하기도 하고, 역지사지로 원하는 굿즈를 얻기 위해 화장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대중적인 캐릭터를 선호하는데, 이 구조 속에서 ‘궁’을 골랐다는 건 노리고자 하는 타겟층이 그만큼 명확하다는 뜻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시절 향수를 다시 일상 가까이서 느끼고픈 30대들, 이와 더불어 디테일하고 영롱한 패키지에 이끌릴 Z세대. Z세대가 궁을 알기는 하겠냐고 물을 수 있지만, Z세대는 본인이 직접 겪지 못한 추억이라도 Y2K 트렌드로 인식하며 소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궁?’이라기 보다는 ‘감다살’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렇기에 페리페라가 만들어낸 ‘궁’ 컬렉션의 패키지는 꽤나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전체적으로 전통적인 자개 느낌을 살리면서도 촌스럽지 않고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퀸플루언서’라는 네이밍으로는 Y2K 컨셉까지 트렌디하게 가져가며 자칫 올드해보일수도 있는 톤앤매너를 환기했다.

 

이런 페리페라의 ‘궁’ 컬렉션 출시로 얼떨결에 훌쩍 추억여행을 떠난 소비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 속으로만 그리던 ‘채경’이 된 것같이 두근거릴까. 과거만큼이나 반짝이는 팔레트를 펼칠 그들의 마음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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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이렇게나 놀랄 만큼 희귀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마냥 그런 것도 아니다. ‘레트로’는 이미 대중적인 트렌드가 되었고 수많은 과거의 추억들이 끌어올려져 현대에서 다시 살아 숨 쉬고 있다. 다만 계속 눈길이 가는 이유는 그중에서도 어떤 추억이 불쑥 나타나 특정 대중들의 향수를 자극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특히 ‘동심’이나 ‘환상’과 관련된 작품들이 다시금 주목받았다. 점점 꿈을 잃어가고 있었다면, 메마른 현실이 질려가고 있었다면 이 흐름이 꽤 반갑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이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나 ‘추억’에 열광할까. 왜 끊임없이 과거를 꺼내보고자 할까. 단순히 오래된 앨범을 보고 닫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그때 그 감성을 제대로 느껴보고자 하는 이 흐름은 왜 자꾸 불어오는 걸까.

 

그만큼 우리의 현재가 즐거운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가 불쑥 찾아온 ‘동심’과 ‘환상’에 눈을 반짝이는 이유, 그때 두근거렸던 그 마음을 되찾고자 하는 이유. 그만큼 ‘검증된 행복’이 필요한 이유. 이 이유들을 따져보자면 이 흐름이 반가운 이유는 우리에게 ‘도파민’이 아니라 ‘엔돌핀’을 뿜어내게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엔돌핀’은 ‘도파민’과 비슷하지만, 흥분이 아니라 진정과 안정을 유도한다. 고통을 완화하고, 스트레스를 줄인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사방팔방에 널리고 널린 게 ‘도파민’이다. 새로운 자극들이 지천으로 깔려있고, 금세 판도를 뒤집어가며 또 다른 자극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계속된 자극은 마음을 무뎌지게 만든다. 과도한 자극은 종종 스트레스가 되고 우리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그렇게 되니 결국 이 속에서 빛나는 건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감동과 기억들이다. 제일 순수하게 느꼈던 행복, 기쁨은 도파민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에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 된다.

 

결국 이 흐름은 콘텐츠 업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지속될 것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지나친 자극으로 마음이 피곤하고 가난해졌다면 과거의 순수했던 행복으로 평온을 되찾고, 그 힘으로 되살아나 다시 새로움을 즐길 것이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만나며 개인화된 현대 사회에서 잠시나마 따뜻한 연대감을 느낀다. 그렇게 과거에서 위안을 얻고, 현재에서 동질감을 확인한 후,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또 어떤 추억이 불쑥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해보자. 그것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지친 마음을 달래고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만의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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