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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물여덟 살이 될 때까지 우리 둘 다 짝을 찾지 못하면 결혼하자.” 97년에 개봉한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꽤 로맨틱한 약속으로부터 시작된다. 대학 시절 한 달가량 사귀고 헤어진 뒤, 9년 동안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온 줄리안(줄리아 로버츠 분)과 마이클(더멋 멀로니). 결혼을 약속한 나이인 스물여덟이 되고 줄리안은 마이클에게 프러포즈를 받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마이클은 이미 결혼 상대를 찾았다며 연락해 온다. 마치 마이클을 빼앗긴 것만 같아 상심에 빠진 줄리안은 결혼식을 망치기로 결심하고, 비장한 자세로 마이클의 결혼 상대 키미(캐머런 디아즈 분)를 마주하며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과연 줄리안이 마이클의 결혼을 막을 수 있을까?’, ‘마이클의 속내는 무엇일까?’ 같은 여러 궁금증이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주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서사도 매력적이지만, 개인적으로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를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로는 참여적인 성격에 있다고 본다. 간추려 말하자면 주된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엑스트라가 중심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에 호응하는 것을 뜻한다. 이로 하여금 영화 밖에 있는 관객까지 마치 영화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참여의 형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독려: 자신감의 물꼬
결혼식을 무산시키기 위해, 그리고 마이클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줄리안이 택한 방법의 하나는 키미의 결점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키미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다. 부유한 집안, 아름다운 외모, 유쾌한 성격을 가진 키미는 줄리안이 보기에도 사랑스럽고, 자신보다 적합한 결혼 상대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좌절할 줄리안이 아니다. 그녀는 키미가 음치라는 결점을 알아채자마자 마이클까지 대동하며 단란주점으로 향한다. 이건 키미를 골탕 먹이기에 좋은 기회니까.
술과 음악, 불특정 다수로 꽉 찬 주점은 열기로 가득하다. 줄리안과 마이클은 자리에 앉자마자 마가리타를 동시에 주문하고 둘만 아는 과거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는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키미는 잠시 소외감과 어색함을 느낀다. 그때 술에 취한 손님이 키미에게 노래를 권한다. 이를 목격한 줄리안은 "싫다잖아, 강요하지 마!"라고 하며 본인이 마이크를 채가지만, 곧바로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 키미에게 한 곡 불러달라며 장난스럽게 요청한다. 주점 안 사람들의 박수와 기대에 찬 마이클의 표정으로 인해 키미는 마지못해 노래를 시작한다.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는 키미의 노래 실력으로 가게 분위기는 싸늘해진다. 마이클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줄리안은 작전이 먹혀들었음을 예감한다. 처참한 결말이 예상되지만 노래가 클라이맥스로 향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고 만다. 한 소절, 한 소절 성의를 다해 부르는 키미의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가게 안 손님들이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것이다.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고, 누군가는 ‘잘 하고 있어!’라고 외치고, 누군가는 함께 리듬을 타 준다. 창피할 수 있는 순간을 재밌고 즐거운 상황이 되도록 이끌어준 셈이다. 사람들의 독려 덕에 키미는 자신감을 얻는다. 콤플렉스는 매력으로 승화되고, 부족한 노래 실력임에도 끝까지 열창하는 키미는 더욱 빛이 난다. 예상 밖의 상황을 지켜보던 줄리안도 결국 노래하는 키미를 보며 미소 짓고 만다. ‘인정할 수밖에 없네, 넌 정말 매력적이야.’라는 얼굴을 하고.
노래: 사랑의 전염
포기를 모르는 줄리안은 마이클이 자신에게 일말의 사랑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마이클과의 결혼은 “인생의 행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기 행동이 우습고 유치하다는 걸 알면서도 행복을 위해서 줄리안은 키미에게 “잔인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오랜 진심을 고백할 용기는 없으면서.
질투 작전을 펼치기로 한 줄리안은 절친한 친구이자 게이인 조지(루퍼트 에버렛 분)에게 약혼자 행세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줄리안의 속내를 이미 알고 있던 조지는 어쩔 수 없이 마이클과 키미 앞에서 줄리안과 애정 행각을 벌이며 거짓말을 하고 키미네 가족 식사 자리에까지 초대받게 된다.
대가족으로 이뤄진 키미네 테이블과 저마다 재미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손님들로 인해 식당 안은 소란스럽다. 연기를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줄리안과 달리 조지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러던 중 키미의 어머니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묻는다. 돌발적인 질문이지만 조지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말투로 줄리안과의 첫 만남을 즉흥적으로 지어낸다. 그저 구술에 그치지 않고 여기서 조지는 한술 더 뜬다. 바로 노래까지 첨가하며 이야기에 흥을 더한 것이다.
노래 ‘I Say a Little Prayer’가 시작되자, 주된 화자인 조지뿐만 아니라 키미의 가족까지 한 소절씩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이때 엑스트라인 식당 직원이 피아노 앞에 앉아 반주를 넣고, 영화는 흡사 뮤지컬을 연상케 하는 모양새로 바뀐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요/ 영원토록 내 마음속에 머물 그대여/ 당신을 영원히 변함없이 사랑할게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도한다는 가사는 평범하게 식사하고 있던 다른 손님에게까지 닿고, 결국 모두가 노래를 따라 부르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애정이 넘실거리는 공간에서 어떤 이는 입을 맞추고, 어떤 이는 장단에 맞춰 팔을 흔들고, 어떤 이는 박수를 친다. 핑크빛 기운이 전염된 식당 안에서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기쁘게 사랑을 나눠 가진다. 그 덕에 화면 밖에서 영화를 시청하는 관객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를 준다.
밀집: 싸움의 마침표
도무지 성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결혼 방해 작전은 영화가 후반부로 향하면서 딱 한 번 완벽하게 먹혀든다. 줄리안의 계략으로 마이클과 키미는 서로가 결혼을 원치 않는다고 오해하고, 이로 인해 결혼식 취소라는 최악의 상황에 점점 가까워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근한 분위기에 휩싸인 줄리안과 마이클은 입을 맞추고, 키미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만다. 이렇게까지 망칠 생각이 없었던 줄리안은 여러 겹의 오해가 쌓인 상황에서 괴로워한다. 모두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건 줄리안이 진정으로 바라던 결과가 아니기에.
저녁에 시작되는 예식을 순탄하게 진행하기 위해, 그리고 꼬여버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줄리안은 화장실에서 홀로 머리를 싸매고 있던 키미에게 다가간다. 분노와 배신감에 잠식된 키미는 악담을 쏟아붓고, 이때다 싶어 줄리안도 그간 숨겨 왔던 진심을 발설한다. 싸움이 벌어지자 화장실 안에 있던 여자들이 줄리안과 키미의 주위로 몰려든다. 결혼을 앞둔 사람을 빼앗으려던 줄리안의 잘못이 드러날 때, 화장실 안 여자들은 “나쁜 것”, “못된 계집애”라며 한 마디씩 덧붙인다. 줄리안과 키미의 싸움에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굴었던 줄리안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마이클을 빼앗으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자신이 외면해 왔던 진실은 마이클이 키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라며 키미가 가졌던 오해를 바로잡는다. “키미, 지난 3일 동안 나도 잘한 건 하나도 없지만 널 식장으로 데려갔으면 해.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서 우리가 꿈에도 그리던 그 남자와 결혼해. 마이클은 정말로 너와 결혼하고 싶어 해.” 줄리안의 사과와 격려를 가만히 듣고 있던 키미는 이윽고 잔잔한 미소를 띤다. 그리고 줄리안에게 포옹하며 그녀를 용서한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여자들은 박수를 보내고, 줄리안과 키미의 화해 장면을 보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까지 줄리안이 보인 태도로 인해 화해의 순간이 자칫 과시적이거나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다른 이들의 참여로 완성된 장면은 그런 걱정은 고사하고 더 큰 감동을 선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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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독고다이'라는 말이 최근에 자주 보인다. 어차피 삶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고 타인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마음이 현대인들의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사람을 믿지 못할 만큼 사나운 사회 분위기가 이런 풍조를 유발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타인에게 신뢰가 떨어질 때면 모든 인간은 어차피 혼자구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기쁨을 나누면 커지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진부한 말을 믿는다. 사람에게 기꺼이 뛰어들고 연결되면서 내 안에 남는 소량의 행복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 때문에.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자주 꺼내 보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다수가 모여 공감을 표시할 때 빛이 난다고 말하는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 지닌 이러한 미덕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