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급변하는 사회 속에 경계는 허물어지고 예술은 범위를 넓혀 간다.

    

특정한 마티에르와 고정된 모습으로 오랜 시간 동일한 영감을 주던 회화, 설치와는 달리 현대미술은 비정형의 예술을 주창한다.

 

선두에 선 퍼포먼스 아트는 일시성, 즉흥성, 상호작용성을 중심으로 발생한다.

 

한국에서의 짧은 여름 방학 중에 관람한 두 가지 퍼포먼스를 소개한다.

 

 

 

《백프로》(스페이스애프터, 2025.06.20 - 07.20)


 

《백프로》는 결속의 허상과 단절을 체감한 이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위기를 극복하고자 우리가 고안한 불완전하고 유동적인 연결 방식을 관찰한다. (전시 서문 발췌) 네 팀의 참여 작가 중 컵케이크와 치와와(유지영, 조주현)가 전시 기간 내 10회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컵케이크와 치와와(유지영, 조주현)는 시각 예술과 공연 예술을 결합해 선보이는 팀으로, 신체가 데이터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미끄러지거나 어긋나는 순간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Through Z>는 '잠재 공간(Latent Space)'을 매개로 동물과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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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퍼포머는 작은 갤러리 공간을 세 개의 각기 다른 가상 공간으로 만든다. 이들의 몸짓을 설명하는 건 기계마냥 감정 없이 내뱉는 어색한 말과 뜯어보면 어떠한 연관성도 없는 문장이다. 바닥에 누워 '분출하는 소'를 표현하는 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포켓몬 혹은 피크민 마냥 머리 위에 뭔가가 떠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 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종이를 꺼낸다. 그 안에 그려진 맵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며 좁은 공간을 활보한다. 무표정한 그들의 딱딱하고 인위적인 걸음이 내 코앞에서 멈출 때엔 무섭거나 기괴하다. 배경음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퍼포머의 걸음도 빨라지다가 어느 순간 반지하 갤러리의 문을 열고 나간다. 이들이 밖으로 나가면 따라 나가라는 사전의 공지에도 당황스럽기만 하다.

 

벙찐 관람객 사이에서 선두로 그들을 따라 나서본다. 시선은 손에 쥔 기하학적인 맵에만 고정한 채 세 퍼포머는 똑같은 간격을 두고 전진한다. 더운 날씨에 상의 탈의를 한 채 식물에 물을 주는 동네 주민도, 좁은 골목 사이를 지나는 회색 세단도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듯이, 다만 걷는다. 연희동 골목은 그저 게임 속 배경일 뿐 그들이 걷는 길은 또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 갤러리 앞으로 돌아왔지만 세 사람은 멈추지 않고 걸어 홀연히 어딘가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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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빠른 걸음을 좇느라 가쁜 숨을 고르고 나니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현실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 점과 점을 잇는 선이 끝나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들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건 어떤 모습의 동물일까. 이 퍼포먼스 안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나 역시 존재하지 않는 어떤 종류의 동물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짜여진 게임 속에 등장한 뜻밖의 자연물이었을까?


 

 

《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아트선재센터, 2025.05.09 - 07.20)


 

전시장 한 가운데 커다란 원형의 태피스트리에 시선이 사로잡힌다. 그리고 여백을 채우듯 장난감 같은 조각들이 군데군데 자리해 있다. 홍영인은 자수,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동등성'을 미술로 구현하는 개념미술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부장적 역사 속에서 주변화된 여성과 동물의 시선으로 제의적 공간을 새롭게 엮어낸다. (전시 서문 발췌)

 

훌라후프나 고리 던지기 등 전통 놀이 기구를 연상시키는 조각들은 섬세함과 민족성이 돋보인다. 눈으로만 관찰하기보다 만져보고, 때려보고, 굴려보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그래서 퍼포먼스 일정에 맞춰 다시 미술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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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는 한 명의 북쟁이(드러머)와 네 명의 퍼포머가 이끈다. 여백을 채운 각각의 조각들을 한 명씩 차지하고서 공연을 시작한다. 북소리에 맞춰 어떤 종류의 동물 마냥 기이하고 자유롭게 몸을 움직인다. 느린 템포로 훌라후프를 몸에 감고 방울을 만져 소리를 만들다가, 빨라지는 리듬에 따라 원형의 태피스트리를 주위를 걷거나 달린다. 누군가는 구심점에 자리 잡고 날 것의 육성을 내지른다. 자기만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서로의 몸을 섞는다. 각자는 세상의 중심이자 서로의 주변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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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분 간 진행된 공연이 끝나고 땀에 젖은 퍼포머들이 또 홀연히 사라진다. 전시장을 누비던 그들이 떠난 자리엔 생기를 잃은 물건들만 남는다. 무용수들의 낯선 몸짓에 오감을 뺏기던 '관객 1'은 비로소 '나'로 돌아온다. 여전히 어딘가 엄숙하고 숭고한 분위기에 애써 친구와 관람 후기를 나누며 몸을 움직여보지만, 나는 그들의 눈빛과 움직임에 불쾌하리만큼 압도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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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에서 태피스트리, 사운드, 그리고 다섯 번의 즉흥 퍼포먼스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비로소 <다섯 극>(2024/2025)을 완성한다.

 

이곳에서 저항의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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