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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개념과 정의를 명확하게 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디서 출발하여,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로 돌아올지를 알려준다.

 

마치 운동장 한 바퀴를 뛰는 것과 같다. 출발선을 긋지 않은 달리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왕복운동이다. 개념과 정의가 없이 시작하는 일도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고 계속 나아가기만 하는 무의미한 달리기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면 인생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우리는 자아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는 사람의 개념을 대신한다. 자아라는 건 구체적으로 정의하기도 힘들지만, 한 번 정한 대로 끝까지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환경이라던가 지식이라던가, 혹은 사람 등등 여러 가지 변수의 영향을 받아 유동적으로 변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변화가 심한 편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자아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건 아니다. 마치 도시국가들이 패권 싸움을 하듯이 서로 다른 자아가 나라는 사람의 헤게모니를 두고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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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의 Tomas Anton Escobar

 

 

요즘 내 안의 슈퍼파워는 미디어 인간이다. 전공을 미디어학 쪽으로 옮긴 영향이 꽤 크다. 자주 접하고 많이 배우는 게 미디어다 보니 세상의 모든 걸 미디어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소설을 읽을 때도 등장인물의 갈등을 미디어라던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작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에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도 수신자의 유형을 고려한 효과적인 미디어 활용을 설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예시가 아닐까 싶었다. 카뮈의 ‘이방인’이나 카프카의 ‘변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증 미디어 만능 질환을 앓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미디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스타그램, 뉴스, 유튜브 같은 것들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들은 뉴 미디어나 매스 미디어에 속하는 것들이다. 내가 말 한 미디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인공적인 수단’이다. 문자, 편지, 책, 나아가 기차나 컴퓨터를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의 미디어다. 이렇게 넓은 개념의 미디어를 적용하면 의외로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된다.

 

사회는 미디어의 작동 방식을 학습한다.

 

간단한 예시로 설명할 수 있다. 친구가 있는 곳의 위치를 모를 때, 예전에는 전화하거나 톡으로 길을 물었지만, 요즘은 위치를 보내라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그 위치를 찾아갈 수 있다.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가는 건 4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KTX로는 2시간이면 족하다. 하루 안에 서울까지 오가는 생활을 한다.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욕심을 반영하는 미디어다. 그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따라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일일생활권의 범위를 넓혀간다. 미디어는 우리를 바꿔놓는다.

 

사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미디어를 배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미디어 인간이 패권을 내려놓을 일은 없다. 공포심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다. 미디어를 이해하는 걸음을 멈추는 순간 나는 세상에 잡아먹힐 것만 같다는 공포감이 나를 재촉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나의 공포는 더 심해졌다.

 

걸음은 빨라졌다. 이제는 뛰는 것에 가깝다. 숨이 차오르지만 멈출 수는 없다. 멈추는 순간 나는 저 급물살에 휩쓸려 정신을 잃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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