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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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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관람할 때면 가끔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곤 한다. 서사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잘 짜여진 이야기임에도 마음 깊이 와닿지 않을 때가 있고, 다소 어설프게 얽힌 장면으로 이루어진 극이 오히려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도 한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결국 연극이 어떤 가치를 전해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고전을 다루는 연극에 있어서는 그 고민이 더욱 깊다. 연극은 동시대성과 관객의 공명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고전 텍스트의 한 구절, 한 장면의 비도덕성에 주목하며 고전이 이미 다른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시대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은 여전히 우리에게 전할 수 있는 불변의 가치들을 품고 있다. 연극 [삼매경]은 가치 중 하나인, ‘스스로 끝까지 타오를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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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경]은 극작가 함세덕의 [동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극이다. 34년 전 [동승]에서 도념을 연기했던 배우가 34년이 지난 후 다시 같은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설정 안에서,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던 현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마주하게 된 도념의 삶이 중첩된다. 인물과 하나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 그리고 그것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시간선들이 공연 내내 표현된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시간선 안에 올라타게 된다. 도념의 복잡한 의식과 감정처럼, 프롤로그에서부터 수많은 배우들과 오브제가 등장하고, 다양한 소리와 장면이 감각을 자극한다. 그 모습은 마치 늦은 밤, 절의 한 구석에 걸터앉아 앞이 보이지 않는 숲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 요소들을 통해, 우리는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 극이 어떤 밀도로 우리를 감쌀지 감지할 수 있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17.jpg


 

무대 위에서 도념과 캐릭터 지춘성의 자아를 넘나들며 배우는 점점 캐릭터와 합일되어 간다. 하나의 인물에 몰입해가는 수많은 과정을 통해 우리는 배우가 맞닥뜨리는 고뇌의 순간을 엿보게 된다. 동시에, 그 고뇌가 연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전제인지를 깨닫게 된다.


원작 [동승]에서 도념은 보호 아래 있었던 인물이다. ‘절’이라는 보호막 아래 살아가는 동승에게 주지스님과 초부는 ‘언젠가’라는 막연한 미래만을 말한다. 그리고 그의 삶은 규칙과 보호라는 명목 아래 한없이 단조롭다.


그러던 중 미망인의 등장은 도념의 삶에 균열을 일으킨다. 도념은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에 금기를 어기고 토끼를 살생한다.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세계 밖으로 걸어나오게 된다.


결말부에서 도념은 잣을 두고 떠나며 스님에게 “잠이 안 올 때 깨물라”고 말한다. 잣을 깨무는 행위는 그간 갇혀있던 상황 속에서 껍질을 깨고 나오게 되는, 번뇌를 직접 경험하며 자신의 관점을 찾아가는 도념의 여정을 상징하는 듯 하다.


극중 지춘성 또한 자신만의 껍데기 속에 살아가다가, 극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삼매경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제서야 그는 도념을 포함한 [동승]의 모든 등장인물들을 하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화할 수 있게 된다.


[삼매경]은 지춘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번뇌를 안고 살아가는 배우의 삶, 그리고 그 번뇌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비단 배우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좋아하는 일에 깊게 몰입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춘성이 지나온 고통스러운 과정을 결코 남의 일처럼 여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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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아주 늦은 시점에서야 진정한 자아로 몰입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모든 시간의 층위들이 하나로 합쳐져 결국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번뇌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동승]의 도념처럼, 우리 삶 속에도 수많은 유혹의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춘성이 겪는 번뇌와 통합의 과정, 그리고 도념이 절을 떠나 홀로서게 되는 과정은 결국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자신만의 삼매경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조용한 위로로 다가온다.


연극 [삼매경]은 함세덕의 고전 희곡 [동승]을 동시대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옮겨온 성공적 예시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철희 연출님이 이렇게 말했다. “고전 작품이 어느 한 부분이 동시대와 조금 어긋난다고 해서 그 부분을 회피하고 고전 자체를 멀리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부분을 어떤 식으로든 우리 식으로 해석하고 다시 세상에 내놓는 것이 연극을 하는 사람들과 연출가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가진 수많은 생각들을 꺼내어 세상과 공유하며, 하나로 합일되어 가는 과정. 이 모든 여정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생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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