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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화자인 ‘나’가 여름별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해는 1982년이다. 당시 일본 사회는 고도경제성장을 이루고, 미래지향적이고 화려한 공공건축이 과속화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시대적 흐름과는 거리를 두고, 사람과 환경, 그리고 주변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의 건축 철학에 이끌려 그의 설계사무소에 들어가게 된다.
‘나’는 건축학과를 막 졸업한 스물세 살의 청년으로 종합건설회사 취직이나 대학원 진학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무라이 선생의 설계사무소만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라이 슌스케를 동경했던 이유는,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실질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건축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무라이 슌스케의 건축 철학에 처음 빠져든 계기는 학창 시절에 아스카야마 교회를 실측했던 경험이었다. 아스카야마 교회는 우뚝 솟은 고딕 양식과는 다르게, 완만한 부피감을 가지며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진입로에서 예배당까지 이어지는 흐름에는 심리적인 장벽이 없었고, 사람을 편안하게 맞이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다.
예배당 내부의 디테일한 설계를 발견하면서, 무라이 슌스케의 철학에 더욱 매료된다. 입구에서 강당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의자가 놓인 마룻바닥은 수평을 유지하면서 낮은 계단 형태로 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낮은 단차가 발생했지만, 완만한 형태의 나무 조각으로 단차를 꼼꼼하게 매워 그 흔적이 보이지 않게 했다.
또한, 준공당시에는 예배당에 놓을 의자의 이음쇠 헐거운 정도가 일부 차이를 보였지만,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을 무라이 슌스케가 예배당에 직접 앉아 보고는 이를 알아차리고 전부 다시 제작하게 했다. 이러한 일화는 그가 건축의 세부를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는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축의 세부에 대한 통찰은 계속 이어진다. 그는 건축의 세부를 태아의 손가락에 비유한다. 태아는 빠른 시기에 손가락이 완성되며, 태어나기 전부터 손가락으로 세상을 접촉한다. 그에게 세부란 주된 것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고 감각하는 첨단으로 여긴다. 의자처럼 작은 요소를 설계하다 보면, 오히려 공간 전체의 질서와 흐름이 보인다고 말한다. 이는 사람이 감각하는 작은 것이 전체를 비추는 방식이자, 무라이 슌스케 건축의 본연을 뜻한다.
이러한 태도는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는 침실이 지나치게 넓지 않아야 마음이 가라앉고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벽과 침대 사이는 한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가 적당하고, 캄캄해도 벽을 따라서 문까지 갈 수 있게 설계한다.
여름 별장에 정전이 들어서 촛불을 켜야 했던 날, 사람의 얼굴을 비추는 빛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그의 철학이 묻어난다. 얼굴을 위에서 비추는 것보다, 옆에서 흔들리는 빛이 닿을 때 사람의 깊이가 드러나는 좋은 얼굴이 된다고 말하며, 사람의 심리와 감각을 고려한 공간 연출의 중요성을 전한다.
무라이 슌스케는 인간의 내면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사유한다. 인간이 자의식을 갖고 내면이 자라게 된 계기가 선사시대 때 스스로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본다. 움막이라는 안의 공간에서 밖을 바라보거나 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여백의 시간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집 안에 계속 머무르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때가 있는데, 이는 인간의 내면이 그다지 단단한 건축물은 아닌 것으로 이해한다. 인간이 내면이 아닌 바깥에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찾고, 외부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은 순간도 존재하는 것을 무라이는 긍정한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외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깊은 통찰이다.
무라이 슌스케의 사유는 “건축은 예술이 아니다, 현실 그 자체다”라는 그의 단호한 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에 맞춰 자연히 반응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이처럼 무라이 슌스케의 건축은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삶을 위로하며, 때로는 격려한다. 인간의 삶과 감각, 그리고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하며, 공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울림을 전하는지를 사유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