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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나를 바라보던 방식>

 

1961년, 로워 앨라배마.

 

친족들-어머니와 아버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하얀 후광 속에 온전히 차분하게 잠겨 있는 외외증조할머니-이 모두 내 주위에 모여 있다. 너무 일찍, 작고 허약하게 태어난 나는 모든 사진 속에서 잠을 자고 있으며, 그들은 모든 사진 속에서 내 주위에 모여 머리를 기울인 채 내 입술이 또다시 파래지지 않기를 바라며 각자 너무도 얕게 숨을 쉬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너무 작고 항상 추위를 탄다. 하지만 친족들은 마치 태양인 양 나를 보고 있다. 내 부모님과 외조부모님 그리고 외외증조할머니, 그분들 모두가 나를 지켜보기 위해 모였다. 그분들은 내가 태양인 양, 그분들이 그때껏 평생 추위를 탔던 양 나를 보고 있다. 나는 태양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행성이 아니다. 그분들은 우주다.


태어나 가장 연약한 때, 그 무엇도 할 수 없지만 모두가 온 우주의 빛을 쏟듯 비추는 때가 있다. 그 시선은 말보다 먼저 도착했고, 그 마음은 오래도록 남아 지탱하는 힘이 되어 준다. 사람은 결국 시선 속에서 자란다. 사랑과 애정이란 그토록 오래 머무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시선을 잃은 뒤에도 완전히 작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안개 속에서>

 

그것은 찬바람이 창문들을 덜거덕거리게 한 간밤에 찾아왔고, 오늘 아침 차가운 비가 물러간 후에도 계속 머물렀다. 올해에는 가을이 전혀 없을 거라는 걸 의미하는 듯 또 걸고 종잡을 수 없던 여름이 마침내 떠나갔다. 하지만 여름이 가을에 자리를 내준 건 아니다. 지금 이곳은 겨울이다. 겨울의 도래를 암시하는 듯 딱 하룻밤 동안 비바람이 몰아쳤고, 딱 하루아침 동안 연못 위에 몽글몽글 감돌았던 안개는 바람에 날려가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테네시에서는 더 이상 겨울이 많이 춥지 않고, 최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도 어쩌다 한 번씩일 뿐 흔치 않다. 아름다운 안개를 많이 즐기다 보면 안개가 더 좋아진다. 이행은 항상 소란과 혼란으로 표시되지 않는가? 특별할 것 없는 일로서, 그저 하나의 사실로서 “지금 나는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어요. 안개는 곧 흩어질 거예요.”라고 말하는 건 얼마나 위로가 되는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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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위로되는 이유를 한참 생각했다. 아마도 삶이 항상 무언가를 선명히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이해되지 않는 채로, 느껴지는 감정만으로도 지나가고, 흘러가고, 결국 안개처럼 걷힌다는 걸 조용히 말해주는 문장이라서 그런 것 같다. 작별도 꼭 이름을 붙여야만 가능한 건 아니다. 누군가는 이미 떠났고,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안개 속에서 우리는 몇 번이고 부딪히고, 다시 숨을 고른다.

 

작별은 언제나 단호한 말처럼 들리지만, 삶에서 작별은 그리 간단하게 오지 않는다. 눈을 감고도 떠오르는 얼굴들, 이름을 잊어도 가슴에 남아있는 감정들, 한 문장으로 붙잡아 둘 수 없는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들은 우리의 내면을 둘러싸고, 때로는 흐릿하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이와, 어떤 시절과, 어떤 때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면서도 완전히는 떠나보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추억은 찰나 같지만 깊고, 사라진 듯해도 언제나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다. 때로는 그리움이 되어, 때로는 미련으로 남아 때때로 미소 짓고, 눈물짓는다. 작별이란 결국 끝이 아니라 그저 또 다른 방식의 이어짐이다. 마음속에 묻어둔 그 기억과 감정들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픔이 되기도 하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만들어가는 조각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며 어쩌면 끝내 완전한 작별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무게이자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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