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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꾸준히 해오던 것에 회의를 느끼는 요즘이었다. 무용한 것에 의미를 붙이려 애썼다. 스스로 증명하고자 그리고,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끝내 세상이 원하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왔지만,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철저한 이익구조로 돌아가는 이 딱딱한 세상은 예술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듣고, 만지고, 그리고, 쓰는 일은 산업의 발달에 이바지하지도 않고, 뛰어난 생산성을 가지지도 않으며, 먹고 사는 일에 기여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생각의 꼬리를 놓치는 순간 "창작"의 순간은 금방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다. 차곡차곡 나의 포트폴리오가 쌓여갈수록 '사회 구성원'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 생각들을 눈앞에 데려다 놓으려 하기 때문일까. 뚜렷하게 떠올리려 할수록 스스로에게 되묻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돈도 안 되는 일을 매일 붙잡고 고민하는가? 무엇을 위해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향해 소리 내어 외치고 있는가?

 

집중력을 도둑맞은 시대,

오히려 필요한 것은 '유익한 산만함'이다!

 

그때, 사회의 반항아 같은 문구로 자신의 세계를 내게 소개해 온 자가 있었다. 오늘 소개할 도서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의 소개 글이다. 몰입하려 애쓰는 사회의 한복판에서 '산만하자!'고 외치는 한 낭만에 이끌렸다. 그리고 이와 함께 나의 눈에 띈 것은 좋아하는 작가님의 또 다른 낭만이었다.

 

 

한때, 그림을 그리는 일이 무용하다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나 소용없는 일을 붙잡는 걸까? (...) 모두들 직선으로 달리라고만 하지. 흔들림이 우리의 일인데, 그것을 괜찮다 말해주는 이는 없다. 똑바로 걷느라 지친 당신에게 이 책을 건넨다. 흔들림조차 우리의 찬란한 삶의 자욱이다.

 

- 추천의 글 | 이연(드로잉 크리에이터, [매일을 헤엄치는 법] 작가), 4p

 

 

떠다니며 모험하는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를 안고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본다.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평면 (1).jpg




오직 인간만이 가진 축복



 

우리는 대개 정신이 산만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곤 한다. 이는 하나에 몰두해 바삐 움직여야만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 때문이다.

 

(29p)


 

한 번쯤은 다들 해봤을 고민이다. 시험이 코앞이면서도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책을 읽다가도 금방 딴생각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곤 한다. 심지어는 쉬는 동안에도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마음 불편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산만한 우리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인간만이 한 대상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딴생각에 빠지며, 처음에 품었던 계획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일에는 기꺼이 뒤로 물러설 줄 안다.

 

(43p)

 

 

'망각'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때론 잊어버리기 때문에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산만하기 때문에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기에 발전을 이룬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만 생각하고 그것에 몰두한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현대 사회는 산만함을 배척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집중력을 높이겠다는 이유로 ADHD 치료제를 함부로 복용하고, 극단적으로 사회의 유혹에서 자신을 단절시키는 공부 환경을 조성한다. 이는 분명히 집중력과 산만함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한 사례다. 저자는 집중과 산만은 서로 반대되는 말이 아닌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나아가는 존재라고 강조하며, 현대인이 디지털에 사로잡힌 것에 대해 오히려 "주의력 과잉"이라 말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해도, 무엇이 문제인가? 중대한 일과 사소한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양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은 약점이 아닌 강점이다.

 

(112p)

 


 

때론 흘러가는 대로


 

산만함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나니 일상 속 많은 일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필자는 책을 읽는 와중에도 딴생각을 하느라 같은 문장을 서너 번씩 읽는 버릇이 있다. 남들보다 읽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렸던 나를 자책하다, 어느 순간 책과 멀어져 있는 자신을 보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시간에 쫓길 이유가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나는 책을 다시 손에 쥐고 있었다. 빨리 소비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떠올린 딴생각이 새로운 영감이 되는 것을 즐긴다. 작가가 사유한 흔적의 틈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이 이제는 온전히 즐겁다.


반대로, 과한 통제로 많은 것을 잃었던 적도 있다. 고등학생 때 입시를 치르며 겪은 일이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입 맞춰 "쉬는 시간까지 집중을 놓치지 말고, 잠을 줄여가며 노력하라"고 말했다.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던 나는 건강과 마음, 입시 결과까지 모두 잃어버리는 결과를 맞이했다. 인생 최저 몸무게를 갱신했으며, 심각한 번아웃으로 몇 달간을 누워 지냈다. 그 이후로는 억지로라도 휴식하는 시간을 가진다. 쉬어갈 때, 남들이 말하는 '게으른' 시간을 보낼 때 오히려 능률이 오르는 경험을 자주 느꼈기 때문이다. 온종일 과제가 진행되지 않아 지쳐 침대에 드러누운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쳤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때 떠오른 문장을 그대로 과제에 실어 제출했고, 좋은 성적으로까지 이어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리는 일의 이유를 찾았냐고 물어본다면, '어느 정도는 그렇다'. 산만함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일상을 떠나는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다면, 그들의 산만함 속 한켠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나의 덧없는 여정을 알아봐 준다면, 나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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