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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오랜만에 한 기묘한 기분의 독서다.

 

기승전결의 어딘가가 비어 있는 [벌집과 벌] 속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꼭 내가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직전에 읽은 책이 기승전결 확실한 판타지 소설이어서, 혹은 내가 현재 완벽한 스토리텔링을 요구하는 글쓰기, 자기소개서 작문을 연마 중이어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걸까? 음, 그럴 수도 있겠다.

 

차고 넘치는 변명과 이유를 각설하고 이야기하자면, 나는 가끔 소리 내 읽지 않으면 나빌레라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글을 마주한다. 조곤조곤하게라도 육성과 함께 읽어야지만 내 안에 발을 딛는 이야기가 있다. 폴 윤의 [벌집과 벌]은 그런 희미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평소에 SNS를 하듯이 후루룩 읽어버리면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이야기들, 이 같은 사건이 몇 건은 더 있어야 하나의 뚜렷함을 만들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 어딘가 찝찝하고 이유 없이 신비로운 경험을 곱씹다가, 이 글의 소개 문구였던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응축되고 간결한 서술 또한 작가의 의도였겠거니 짐작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에는 이 모든 것을 이해시키는 힘이 있다.

 

처음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접했던 건 트랜스젠더의 성별 불쾌감, 젠더 디스포리아를 찾아보던 시기였던 것 같다. 당시 한국 사회에 낯선 개념으로 등장했던 트랜스젠더라는 게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다 대뜸 ‘디아스포라’라는, 디스포리아 엇비슷하게 생긴 단어를 만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트랜스젠더의 이주 및 정착과 연관된 글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슬프게도 그들은 대개 많은 것들과 불화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 뒤로도 인천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텍스트를 읽어가며 이 ‘디아스포라’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해 본 적이 있다. Diaspora라고 쓰이는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로 ‘너머’를 뜻하는 dia, ‘조각남’을 뜻하는 speirein을 합한 ‘흩어짐’, diaspeirein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재외 00인 공동체를 통칭하는 이름으로, 타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겪는 모든 경험을 설명하는 단어로 쓰이며 굉장히 범용적인 언어가 된 ‘디아스포라’지만, 쉽게 생각하면 ‘시작한 곳을 떠나온 이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고국, 집,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이동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른다. 그러나 모든 떠나온 이들이 이전의 장소를 애틋하게 추억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보아온 이야기들은 그렇다. 그러나 스쳐 지나가는 향수가 분명히 있다. 독특한 그리움이 폴 윤의 이야기에서 보일 때마다 어딘가 생경한 기분이 든다. 탈북민 아버지들을 회상하는 해리와 그레이스의 표정을, 군부대가 내려다보이던 어릴 적 집의 풍경을 생각하는 보선의 낯빛을 상상하며 나빌레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이야기의 희끄무레함을 느낀다.

 

가끔은 나 자신의 독백에서도 그 희미함을 듣는다. 따지고 보면 고향을 떠나온 나의 서울살이 또한 디아스포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득 들어찬 서울역의 복잡한 탑승구를 보며 ‘거기처럼 예쁘지 않네,’ 투덜대는 마음에서,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드문드문 차오르는 생경함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미소 하나 없는 얼굴로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서 희미한 동떨어짐의 소리를 듣는다. 어쩐지 외롭다.

 

이 ‘왜인지 모르겠는, 그러나 왕왕 나를 찾아오는 외로움’이 디아스포라 문학의 열쇠 같다. 책을 조용히 읽고 있자면 외로움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이 외로움은 고독에서 나와 몰입으로 이어지고, 일종의 확인과 안정으로 끝맺는다. [벌집과 벌]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외로움을 달래는 이야기도, 아무리 가깝게 모여봤자 결국 똑같이 외로운 이야기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저 멀리 어딘가의 사람 또한 지금 이곳의 나처럼 외롭다는 사실이 미묘하게 위로가 된다.

 

이미 반쯤은 흐려진 이야기들 속 왜인지 모르게 내 눈을 사로잡았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언젠가 다시 내 외로움을 확인받고 싶을 때 벌집으로 향해야겠다. 찻잔 속 남은 꿀의 향처럼 남은 외로움을 내 멋대로 저 인물들에 비춰보고 안도해야겠다.

 

 

벌집과 꿀 표1_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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