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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하고 싶지만 떠도는 그대들에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전에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보고 느낀 소회가 떠올랐다. 결국 사랑도 인생도 어딘가에 머물고 싶지만 영원히 떠돌아 다닐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래서 슬프면서도 재밌는거라고.

 

이 책은 나에게 그러한 떠도는 삶, 떠나는 삶에 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전부터 머무는 삶보다 떠나는 삶에 더 관심이 생겼는데,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인간이 어딘가에 머무른다는 것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사람이 어딘가에 머무는 것은 순간뿐이며, 그 모든 머무름은 결국 떠낢을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다보니, 떠도는 삶에 동정보다 위안이, 불안보다는 자유로움이라는 정서가 더 먼저 동반되어 떠오르게 되었다.

 

벌집과 꿀은 총 7편의 단편을 엮은 책이다. 그 단편들 속 인물들은 장소와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다 어디론가 떠난다. 떠낢의 이유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자리를 잃었기에,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그들은 자꾸만 떠나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삶을 지을 수 있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러한 갈망은 양가적 측면으로 그들을 괴롭혀온다. 집이었던 것에 대한 그리움, 새로운 집을 찾길 바라는 갈망, 이 동전의 양면 같은 허기는 이들에게 떠남이 곧 돌아옴이기도 하다는 걸 말해준다. 집을 떠나고, 그리하여 집이 될 어딘가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 떠나는 자들에게 깊숙이 새겨진 이 갈망은 진정한 집이 생길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같은 오랜 지속과 기다림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깃든다.

 

소설과 영화에서 극 중 인물에게 몰입해 보던 독자들은 주인공을 향한 조그마한 도움에도 큰 감동과 위안을 받는다. 이 책 속 인물들 역시 홀로 외롭게 버티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 일곱 편의 이야기에는 짧은 순간이라도 집이 되어주는 이들과 서로 연결되는 관계들이 나온다. 이방인이거나 자기 땅에서도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인물들에게도 신기하도록 아무렇지 않게 곁을 내주고 마음을 써주는 이들이 어디에나 있다. 생면부지의 타인을 돌보는 일을 폴 윤의 인물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그게 당연하지 않으냐는 듯이 해낸다.

 

도움이라는 것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줬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 책 속 인물들의 도움이 타인의 삶을 구원할 수는 없지만 한 번의 친절, 순간의 유대감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집이 되어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또 어떤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일이 있다. 그보다 더한 일들에서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이런 도움들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아픔 또한 존재한다. 장소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쓰라림은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또 다른 삶을 짓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들’을 찾아내며 삶을 지속하는 이 인물들은 황량한 삶에도 빛과 온기가 깃들 자리가 있음을, 그 자리가 때로는 희망보다 크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을 옮긴 서제인 번역가는 이렇게 말한다.

 

“<벌집과 꿀>은 한 사람의 마음속 빈 곳이 어떻게 위안을 주는 풍경을 빚어내는 거푸집이 될 수 있는지, 그 굴곡마다 들어찬 갈망이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놀라운 건축을 해낼 수 있는지 증명해주는 텍스트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이 글을 읽게 되면, 그 마음속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총망라되어 소설 속 인물이 남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음을 느끼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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