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포스터_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5.16~8.3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6/20250630051422_kvahrozz.jpg)
16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막한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展’을 보고 왔다. 이번 전시는 400년에 걸친 서양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AG)의 주요 소장품 143점을 9개 주제로 나눠 선보였다. 전시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시작해 19세기 영국을 거쳐 20세기 미국 현대미술까지 이어졌다. JAG 설립자 △필립스 부부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미술 △인상주의 이전 △인상주의 △인상주의 이후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20세기 컨템포러리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공 미술 순이다.
전시작에는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윌리엄 터너, 앤디 워홀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시는 단순히 유명한 작품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각 시대의 사조를 이끈 화가들의 예술적 고뇌와 언어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특히 피카소의 파스텔화 ‘어릿광대의 두상 Ⅱ’는 그의 말년작이지만, 평생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그림을 그리고자 치열하게 노력했던 흔적이기도 했다. 설명에 따르면, 그는 15세에 원숙한 실력을 갖추었기에, 창의성으로 가득 찬 어린 시절을 갈망했다고 한다. 또한, ‘여인의 두상’은 판화로 제작되었는데, 피카소는 판화를 창의력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생각했다고 한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레지나 코르디움, 1860, 패널에 유채, 25.4×20.3cm
화가와 뮤즈 사이의 관계성도 인상적이었다. 라파엘 전파는 영국 왕립미술원의 아카데믹한 화풍에 반발해 라파엘로 이전의 자연 관찰과 묘사에 충실했던 중세 고딕 및 초기 르네상스로 돌아가려는 미술운동을 일컫는다. 대표 화가로는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존 에버렛 밀레이 등이 있다. 로세티의 ‘레지나 코르디움’은 붉은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의 여성이 시선을 단번에 잡아끌었다. 바로 로세티의 아내이자 뮤즈였던 엘리자베스 시달이다. 시달은 로세티와 긴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에서의 시달은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눈빛은 어딘지 모를 처연함이 느껴졌다.
점묘파 화가 폴 시냑의 ‘라 로셸’은 보면 볼수록 오묘하고 독특했다. 그는 작은 점 대신 넓고 네모난 붓터치로 캔버스를 채워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완성했다. 광학 과학과 시각 인식 이론에 따라 색상을 치밀하게 배치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붓터치와 색상의 상호작용은 단순한 현실 재현을 넘어서 시각적 실험으로 확장됐고, ‘라 로셸’은 멀리서 봤을 때와 가까이서 봤을 때의 매력이 서로 달랐다. 멀리서 보면 고요하고 운치 있는 항구의 풍경이 펼쳐졌고, 가까이서 보면 정교하고 섬세하게 배치된 색상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마지막 섹션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에서 다뤄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술 작품들은 강렬했다. 현지의 전통과 유럽의 영향 사이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확립해 나가는 여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알렉시스 프렐러의 ‘여사제들’이 대표적이다. 프렐러는 초현실주의와 고흐와 고갱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고국의 전통을 독특하게 표현했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 나중에 따로 찾아보니 이집트를 여행하며 고대 이집트의 예술을 반영해 본인만의 화풍을 결합했다고 한다. ‘여사제들’은 마지막 섹션을 관통하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번 전시에서 수많은 화가들이 자신들의 화풍을 만들고 확립하는 과정을 살펴봤다. 그 과정은 단순히 예술 사조를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를 찾기 위한 간절함에 가까웠던 것 같다.
전시를 관람하던 중에 반 고흐의 글귀와 마주했다. "나는 늘 무언가를 찾고 있고, 노력하고 있으며, 온 마음을 다해 그 안에 있고자 합니다.” 어쩌면 ‘무언가’는 자신만의 언어가 아니었을까? 글귀가 화가들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했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는 미술 교과서에서 접했던 이름이 많은 전시였지만, 전시회장을 나서면서 기억에 남은 것은 그들의 유명세가 아니었다. 화가들의 시선과 고민, 남아프리카공화국 화가들이었다. 이르마 스턴, 조지 펨바, 알렉시스 프렐러가 그렇다. 새로운 작가들을 알게 되면 세상도 그에 따라 넓어진다. 특히 알렉시스 프렐러는 전시가 끝나고도 그의 삶과 작품을 찾아보게 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부터 20세기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서로 다른 시공간의 고민과 실험이 광화문이라는 한 공간에서 펼쳐졌다.
무더운 여름, 서양미술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잠시 떠나보기를 권한다. 요하네스버그에서 광화문까지 하루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