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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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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인상은 무척 가변적이다. 시대를 풍미한 천재를 추켜세우기 위해 활용되기도 하는 반면, 일상에서 최소한의 변화를 꾀해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한 경험에도 쉬이 붙여진다. 설령 그것이 아주 작은 문제일지라도 말이다. 이를테면 욕실 벽에 난 구멍을 테이프 등의 일상용품으로 감쪽같이 막은 사례도 경우에 따라 창의성이 발현된 예시로 분류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창의성을 명확히 정의 내리기란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포괄하는 범위가 넓고, 용처에 따라 가리키는 대상도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조차도 창의성을 정의하려고 들지 않는다. 책은 되려 창의성의 모호함을 인정하고, 시대에 따라 변주돼 온 '창의성 담론'을 들려줌으로써 앞으로 우리 사회가 취해야 할 태도를 제안하고 있다.

 

 

 

예술과 창의성


 

창의성을 향한 일반적인 오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그것이 천재의 전유물이라는 점. 둘째, 예술적인 사람이 곧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점. 두 가지 오해는 어떻게 보면 연결돼 있다. 창의성은 흔히 상상력과 견주거나 예술로 상징되는 경우가 많으며, 천재 예술가를 다룰 때 빈번하게 사용된다.

 

최소 전후시대부터 창의성을 다뤄온 학자들에 따르면 창의성이라는 개념은 보다 근본적이며, 예술보다는 인문학 개념에 가깝다. 시대를 관통하는 이 주장의 핵심은 '창의성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다. 관건은 이를 어떻게 발현시키느냐에 있다. (물론 모순적이게도 흔히 천재라 일컬어지는 이들처럼 창의성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수반돼야 하는지 등에 관한 연구는 다수 이뤄졌다. 천재라는 특별한 존재에 대한 우대와 관심은 여전히 유효했던 셈이다.)

 

 

창의성이라는 개념은 예술가나 천재와 막연하게 연관된 특성이나 과정으로 흔히 정의되지만,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지닐 수 있고 어떤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 p.28

 

 

이어 예술과 창의성의 미묘한 관계는 창의성 담론의 출발지를 인지하고 바라보면 더욱 와닿는다. 창의성은 히피 문화와 같이 시대 저항 정신의 발현으로부터 샘솟았을 것이라는 쉬운 예상과 달리, 획일화된 사회(일명 무리상태)에서 인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영향인지, '대중사회로부터 개인을 구하는' 과정에서 낭만이 투영된 점을 확인해볼 수 있다. 진정한 자아를 위해 자유를 추구하는 점, 일방적인 사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창의성을 마치 뮤즈처럼 대하는 것이 예술가 정신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사람이 곧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가는 곧잘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자기실현적 측면에서의 창의성 이론이다. 자기실현적 창의성 이론은 창의를 결과나 도구적 목적이 아니라 경험 자체로 본다.

 

 

예술교육자 빅토어 로웬펠트는 "베토벤이 9번 교향곡을 창작했을 때, 9번 교향곡은 곧 베토벤 자신이었고, 베토벤 자신이 곧 9번 교향곡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창의적 과정을 "자신의 작품과 완전히 동일시함으로써 작품과 창작자간의 구분이 거의 사라지게 만드는 능력"에 의한 것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그는 

"일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물질주의 시대에서는 이 능력이 드물다"고 한탄했다.

 

- p.152

 

 

 

창의성 숭배


 

한편 창의성의 모호함이 쌓아온 오해도 있다. 책의 제목에 '집착'이 포함되는 이유이기도 한 '창의성 숭배'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창의성에 매몰되면 '창조적 경제'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현 상태를 지탱하고 있는 유지의 가치를 경시하게 된다. 동일한 맥락에서 혁신,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현재에 놓인 것들을 미처 보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나아가 창의성이 주는 특별한 느낌은 자칫 사회에 내재한 계급을 가리고, 이를 마치 개인의 타고난 성격과 선호하는 삶의 방식에 의거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속임수로 작용할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발전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혁신에 관한 논의가 우후죽순 쏟아지는 지금. 우리가 왜 창의적이고 싶어하는지, 사회가 왜 창의성을 요구하는지 그 가치에 대한 적절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단적 목표의 힘을 재평가하고, 돌봄과 유지의 윤리를 중시하며, 단순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의미에서 예술을 사랑하고, 신중한 연구와 지식을 존중하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의 가치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여유를 위한 작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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