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해는 말짱히 빛나고 쏟아지는 비에도 꺾이지 않는 푸릇한 이파리가 난무하는 여름날. 고층 빌딩이 많은 서울은 유난히도 햇빛과 녹색이 반사되어 여름의 진풍경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여름을 즐기는 법이란 사실 이만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여름만의 화사한 여유를 더욱 누릴 만한 곳을 추천한다.
1. 노들섬 - 봄에서 여름쯤 되면 인스타그램에서 줄곧 떠오르는 곳이다. 막상 가보면 조그만한 규모에 실망할 수 있지만, 한 번 자리를 잡으면 크기가 착실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한강대교를 바삐 가르는 전철을 바라보는 순간은 마치 이곳만이 시간이 정지된 듯한 기분을 준다.
여름의 햇살이 거세질 수록 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가 만든 그늘은 더욱 안락하게 느껴지고 윤슬은 갈수록 반짝 빛난다. 섬 뒷편으로 이동하면 젊음을 즐기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단체로 춤을 추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노들섬 라이브 하우스와 더불어 건물 내부에는 북카페와 맛있는 음식들로 추려진 가게들이 모여 있어 잠시 더위를 피하기에 제격이다.
특히 북카페는 가끔 공연도 하는 만큼 다양한 예술적 감상도 가능한 한강에서 떼를 지어 헤엄치는 오리 가족처럼 둥근 터지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에 취해보자.
2. 해방촌 - 이름처럼 온갖 억압과 압박 속에서 해방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실제로 일제강점기의 해방과 함께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태원을 넘어 언덕을 올라야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이곳의 풍경은 서울의 꼭대기가 부럽지 않다. 낮에는 뭉게구름이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있고 밤에는 달동네의 조명 덕에 낮의 햇살 부럽지 않다.
이따금 보이는 붉은색 십자가들이 눈에 띌 것이다. 온갖 기도가 범람하는 서울에서 당신은 어떠한 연유로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가? 그 기도를 하룻밤만이라도 들어줄 곳은 어쩌면 이곳이 가장 적절할 지 모른다.
한 잔만 시켜도 되는 가벼운 바들과 이국적인 이태리, 샌프란시스코 등의 음식들은 물론 정겨운 삼겹살집도 함께 하여 당신을 어디로든 데려가준다.
실향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촌락에 예술적 감각이 덮은 거리는 지금도 새롭게 변모 중이다.
3. 올림픽 공원 - 과거의 영광이 사람들의 쉼터로 변모했다. 화려한 장식물과 어우러진 생태계는 물론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어쩌면 과거의 기록을 가장 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 풀냄새가 가장 지긋한 곳이기도 하며 지금은 특히 자귀나무꽃이 활짝 피어 마지막 봄내음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킥보드나 자전거를 대여할 수도 있어 활동적인 피크닉을 생각한다면, 올림픽 공원은 제격일 것이다. 올림픽 공원의 마스코트는 역시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1988 서울 올림픽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성화의 불을 꺼뜨리지 않았다는 문구와 함께 놓여진 불꽃을 보면, 사실여부와 별개로 역사의 현장에서 숨을 고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옛 백제의 수도였던 만큼 정말 오랜 기간 중요한 터전이었던 이곳은 당신의 기억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리라.
4. 한남동 - 여름이랑 한남동이 무슨 연관인가 하겠지만, 한남동에서 바라보는 여름의 경치는 충분히 아름답다. 현대카드 스토리지 건물 오른편의 테라스에서 내다보는 하늘은 매일마다 색을 바꾸어 항상 새로운 선물을 눈에 머금도록 한다.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LP를 듣고 언더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감상한 뒤, 나온 바깥의 하늘은 수많은 감상을 담고 있을 테다.
더위 때문에 목마르다면, 바로 옆 카페들을 이용하면 된다. 맥심플랜트라는 맥심에서 만든 대형카페가 좋은 뷰와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커피 맛을 더한다. 힙한 사람들은 전부 방문해봤다는 앤트러사이트 카페 또한 위치해있다. 바깥 풍경을 한껏 즐겼다면, 한남동 구석의 숨겨진 문을 열고 들어갈 차레다. 건물 뒷편의 여러 문을 열고 낮은 통로를 향해 걸어가 나무로 된 무거운 문을 열면 블루도어북스라는 북카페 겸 서점이 등장한다.
마치 7살 소년의 방을 그대로 훔쳐놓은 듯한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디자인의 공간이 당신을 맞이하며 당신은 동심의 세계로 빨려들어갈 테다.
5. 번외, 안양예술공원 - 서울에서만 여름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당연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릴 적 여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던 곳은 안양예술공원이었다. 수심이 낮은 계곡 아래에서 물장구를 칠 수도 있고 큰 바위 위에 누워 여유를 즐길 수도 있고 뒷산 정상까지 올라 자연의 향기를 음미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주변 거리가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00년대 디자인의 가게들로 구성되어 있어 추억을 건드리기 충분하다. 게다가 포르투갈의 유명한 건축가인 알바로 시자가 건축한 파빌리온 도서관의 감각적인 디자인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주변의 미관을 전혀 훔치지 않은 겉모습과 가느다란 햇살을 받으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어 비밀 공간에 돌입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