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14일 저녁. 살랑살랑 부는 강바람을 타고, 선율이 흘러 들어와 기분 좋게 나의 귀를 간지럽혔다. '날이 덥지 않을까, 사람이 많아 자리에 못 앉지 않을까' 조바심을 냈던 게 무색할 만큼 서울시향의 파도는 천천히 밀려와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엄마와 나는 7시에 야외 좌석에 착석했다. 여의도 한강공원 안쪽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다 보니, 무대와 함께 의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넉넉한 수량이었던지라, 자리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각자 의자에 앉아서,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때론 걸음을 멈춰서서, 무대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만드는 음악을 기대했다. 익히 봐온 서울시향의 다른 인쇄광고물처럼, 물결을 연상시키는 문양과 함께 시원한 색을 띤 감각적인 프로그램북에는 영화의 예고편처럼, 오늘의 프로그램과 연주자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힘찬 박수와 함께 등장한 악단은 번스타인 <캔디드 서곡>을 연주하며 활기찬 시작을 열었다. 야외무대다 보니,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마치 평평한 사운드의 음반을 듣는 느낌도 있었다. 각 악기가 모여 만들어내는 디테일한 소리, 라이브 음악만의 러프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점차 그 소리도 익숙해졌고, 야외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각 악기의 밸런스를 잘 잡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캔디드 서곡> 후에는 첼리스트 이재리와 트럼페터 이상욱의 무대가 이어졌다.
차이코프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다. 따뜻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주제를 첼로가 어떻게 변주해 가는지 지켜보는 게 감상 포인트다. 쭉 장조로 흘러가던 음악은 제6번주에서 유일하게 단조로 전환되며, 잠시 수그러들었다. 잦아든 파동을 뒤로 하고, 선율의 못 내부에서는 여전히 깊은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러다 다시 제7변주에서 첼로는 32분음표로 질주하며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마치 개화의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당차고 밝은 코다가 마무리되는 동시에 이재리 첼리스트의 드레스 색깔처럼, 무대 여기저기서 분홍색 튤립이 만개했다.
트럼페터 이상욱은 독주 악기로서 트럼펫의 매력을 각인시켜 주었다. 미세한 호흡과 떨림으로 변화하는 음악에 집중하는 재미가 있었다. 페스킨 <트럼펫 협주곡 1번, 1악장>은 상당한 기교를 요구하며, 보는 사람을 진땀 빼게 했으며 앙코르로 이어진 <오버 더 레인보우>는 트럼펫의 음색과 안성맞춤이었다.
이어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3악장>이 울려 퍼지자, 밤은 다시 한번 무르익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알리듯 머릿속의 폭죽이 빵 터졌다. 어둑어둑해진 하늘에 깔린 멜로디가 반짝이는 별이 되어 밤하늘에 수를 놓았다. 눈을 감았다가, 함께 온 엄마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가, 행복에 겨운 채 멜로디를 만끽했다. 프로그램북에서 음악 칼럼니스트 황진규 선생님이 이 곡을 묘사한 문장이 있다.
"지휘자에 따라 이 악장은 열정적인 사랑 고백이 되기도 하고 심오한 명상곡이 되기도 한다.”
내가 들은 것은 분명 고백이었다. 말 그대로 '열정적인 고백'이었다. 소란스럽지는 않지만, 나지막이, 그러나 분명하게 뜻을 전한. <강변음악회>의 프로그램은 전체적으로 결이 유사한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낭만의 밤’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싶을 정도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들로 밤이 가득 찼다. 또한, 대중성을 겸비한 곡들이라, 감상자에게 더욱 편안하게 다가갔던 것 같다.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트랙>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투나잇'>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디라 반가웠다. 내가 알던 곡의 분위기와는 단연코 달랐지만, 소프라노 이해원과 바리톤 김주택만의 해석을 듣는 재미가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이 마음의 불의 지펴놓은 이후,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투나잇'>에서 낭만이 고조되고, 마침내 한 번 더 불꽃이 터졌다. 라벨 <볼레로>가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은 북의 동일한 리듬이 곡의 중심을 잡고, 그 위에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얹어져 음악이 완성된다. 얹어지는 멜로디도 사실상 거의 동일하다. 구조적으로는 단순한 곡이지만, 그럼에도 그 단순명료함과, 그 단순함 속 여러 악기의 개성 있는 음색이 이 곡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순으로 악기들은 차례차례 등장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흡입력이 좋은 작은 북 비트에 최면이 걸린 듯한 느낌을 받으며 집중하고 있는데, 함성과 함께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폭죽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불꽃은 음악에 살포시 얹어진 타악기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독보적이었다. 그래서 음악이 불꽃에 주객전도되지 않았나 싶기도 했지만, 불꽃과 함께 들리는 함성과 불빛을 따라 고개를 움직이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니, ‘아무렴 어떤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볼레로’와 ‘불꽃놀이’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조합인가. 반복되던 멜로디는 마지막에 가서야 모습을 바꿔 휘몰아치며 마무리됐고, 관객들은 오케스트라에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특히 지휘자와 함께 배의 선장 역할을 해준 작은 북 연주자에게 찬사를 보냈다. 너무 덥지 않은 여름밤에, 클래식이라는 낭만이 한 스푼 첨가된 밤이었다. 음악, 음악과 무대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 셋이 모여있으니, 완벽하지 않은 순간마저 행복으로 뒤덮였던 것 같다.
소프라노 이혜원 님의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금요일 공연은 비가 와서 낭만적이었고, 토요일엔 날이 좋아서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고.” 우중에도, 화창한 밤에도, 날벌레가 있어도, 먼 길을 찾아왔어도, 그 주가 유독 힘들었을 사람에게도, 음악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다가가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줬다. 마치 마땅히 행복해야 할 순간이라는 듯이. 그런 순간이 나는 눈물 나게 좋았다. 그게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인가 보다.
늦게나마, 서울시향'의 다정한 고백에 답하고 싶다.
"YES, 내년에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