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예술가의 작품을 한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특히 좋아하는 인상주의 작품들을 시간순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건, 내게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다녀온 전시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는 역사가 기억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400년의 미술사를 단숨에 훑을 수 있었다. 모네, 터너, 쿠르베, 에드가 드가와 같은 인상주의 대표 화가들의 작품부터, 후기 인상파인 폴 시냐크, 반 고흐, 추상주의 대표 화가 피카소 등 서양 예술사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실제로 마주하며 수백 년 이상의 미술 흐름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졌고 변화해 왔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인상주의 이전의 예술
전시장 초입에서는 무료 오디오 도슨트를 들을 수 있는 네이버 vibe의 QR코드를 촬영할 수 있어, 작품을 천천히 여유롭게 감상하고자 하는 관객에게 유용해 보였다. 더불어 실제 드로잉지도 제공되어 지하 전시장에서 직접 색칠해 보는 경험이 가능했고, 전시 마지막에는 엽서나 포토북 등 풍성한 굿즈샵도 마련되어 있어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본격적인 전시는 ‘필립스 부부’의 초상과 이야기로 시작되며, 이어 풍경과 일상 모습 등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전시는 1800년대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로 넘어가며, 개인의 감성과 직관을 중시한 낭만주의와, 고전적 질서를 추구했던 신고전주의가 서로 다른 방향성을 띠고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자연을 세부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와 감정 표현의 강조는 다소 충돌하는 흐름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윌리엄 터너, 존 브렛 등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화가들의 그림은, ‘바르비종파’에 의해 ‘풍경화’라는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굳어졌다. 신화를 기반으로 한 그림들만 인정받던 시대에서 새로운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
‘Ⅳ. 인상주의 이전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으로’ 에서는 본 전시 중 가장 기대했던 귀스타브 쿠르베의 ‘에트르타 백악 절벽’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이미 많은 사람이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특히 쿠르베는 자연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리는 화가였다. 그가 그린 절벽은 그 색감과 질감에서부터 놀라움을 전한다. ‘천사를 본 적이 없기에 그릴 수 없다’고 주장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다소 건방진 사람으로 비쳤던 그는 이상을 좇기보다 현실을 정직하게 담아내려 했던 사실주의자였다. 그 철학은 그의 자연 풍경 그림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인상주의 시대와 그 이후
인상주의의 태동과 진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역시 각각의 화가가 자연물 중 어디에 관심을 두고 그렸는지가 그림에서 나타난다는 점이지 않을까. 에트르타의 절벽은 많은 인상파 화가가 방문해 비슷한 구도로 그린 그림들을 남긴 공간으로 유명하다. 같은 에트르타의 절벽을 그려도 쿠르베는 절벽의 섬세한 묘사에, 부댕은 하늘과 구름 묘사에 집중했다는 점은, 실제 이들의 그림에서 선명히 드러났다.
‘Ⅴ.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에는 본격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네의 ‘봄’은 ‘양산을 쓴 여인’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발레리나를 자주 그렸던 드가의 작품도 실제로 보니 그 색감과 표현 방식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인상주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붓 터치의 질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고전주의 작품들은 실제 사물의 질감을 똑같이 표현하기 위해 긴 작업시간을 활용한 아주 섬세한 붓질이 필요하다면, 인상주의 작품은 화가가 찰나의 순간을 캔버스 안에 ‘붙잡아 놓아야’ 하기에 더욱 강하고 생동감 있는 붓 터치가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편 고전주의에 대항한 새로운 물결이었던 인상주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옛것이 되고 만다. 인상주의 이후에는 점묘법, 종합주의 등 더욱 다양하고 틀을 벗어난 기법들이 탄생했다. 점묘법은 언뜻 보면 붓 터치의 관점에서 인상주의의 기법과 비슷하다고 느껴지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원리가 사용된다. 점묘법은 팔레트 색상을 혼합하지 않고 광학 이론에 따라 색의 점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폴 시냐크의 ‘라로셸’을 실제로 보니, 입체감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점묘법의 맹점을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배경인 하늘과 건물 사이에 어두운 색상의 점을 찍은 부분이 있다. 점의 색깔을 조정하여 입체감을 높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지점이었다.
20세기, 현대의 예술
로댕의 동상 작품을 따라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역사화, 풍경화를 거쳐 이제는 왜곡되고 과장된 형태와 색채를 사용하는 표현주의에 이르렀음을 실감 나게 하는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특히 피카소의 작품은, 미술을 잘 모르는 나도 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 인상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은 몇 개의 선과 색만으로 감각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어린 시절 이미 어른의 수준만큼 그릴 수 있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만들어갔다는 설명이 몇 작품만으로도 단번에 이해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의 많은 예술가가 미국으로 건너가며, 본격적인 추상주의가 주류로 떠올랐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남자의 초상에 관한 연구’ 작품은 남자의 얼굴 형태가 다소 기괴하게 느껴지지만, 전반적으로 분홍색 톤의 배경 색감과 대비를 이뤄 복잡한 인상을 주었다. 이 작품을 보며 추상예술의 미학은 바로 그 복잡성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20세기 대중문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들인 앤디 워홀의 작품은, 그 규모에서부터 큰 압도감을 선사했다.
전시의 마지막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술 작품들로 마무리됐다. 특히 인상에 남은 작품은 알렉시스 프렐러의 ‘벨 옴브레의 어부들’과 ‘여사제들’이었다. 언뜻 보면 작품마다 특징적인 색감이 두드러지고, 구도나 선에서 약간은 애니메이션적인 느낌도 났다. 특히 ‘벨 옴브레의 어부들’은 바다의 풍경을 오목렌즈로 본 듯한 구도로 그려져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전시의 묘미는, 이렇게 새로운 '최애 예술가'를 발견하는 것에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는 단 몇 시간 만에 서양미술사의 전체 흐름을 143점의 수많은 작품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시였다. 거장들의 실제 그림을 시대별로 한 곳에 모아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이처럼 400년에 걸친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각 시대의 감정과 사유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을 오늘날 우리가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필립스 부인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국제적 수준의 공공미술관을 세우고자 했던 노력은 단순한 수집 활동을 넘어, 예술의 가치를 보존하고 확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누군가가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지켜왔기에,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서서 과거의 예술과 마주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대를 거슬러도 예술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지는 듯하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앞으로도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시대를 넘어 그 의미를 계속 이해하고 존중해 나가길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