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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그리고 재작년 겨울, 고선웅 연출가의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이라는 극을 접했다. 처음 그 공연을 봤을 때는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에너지를 썼고, 두 번째로 공연을 관람했을 때에는 꽤 많은 눈물을 쏟고 훌쩍이는 데에 에너지를 썼다.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여운이 잘 가시지 않아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고선웅 연출가는 아마 사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섬세한 시선으로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는 그의 창작극 <유령>은 또 어떤 울림을 전할지 기대감을 높였다.


연극 <유령>은 극중극 특성을 지니고 있다. <유령>이라는 연극 안에 또 다른 플롯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배우들은 <유령> 속 또 다른 플롯의 역할과 배우 자신을 넘나들며 연기한다.


극은 배명순이라는 한 여자가 남편 오상필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술에 취한 오상필은 있는 힘껏 배명순을 구타하고, 배명순은 그의 폭력에 상응하듯 다소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폭력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의 모습에 의문과 호기심이 동시에 드는 순간, 분장사가 등장해 배명순의 얼굴에 피멍을 칠한다. 오상필의 구타가 더해질수록 분장사의 손도 바쁘다. 세 사람의 대화도 심상치 않다. 그들은 배명순과 오상필, 그리고 분장사의 삶을 역할로 분리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무대 위 그들은 배명순이라는 역을 맡은 이지하 배우, 오상필이라는 역을 맡은 강신구 배우, 분장사 역을 맡은 전유경 배우로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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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각자가 맡은 역할로 무대 위에 등장하지만 배우들은 인물과 자신을 분리하며 극중극 형식을 강조했다. 이 장치는 극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과 메시지를 차지하며, 때로는 관객들에게 ‘이건 연극이야’라는 깨달음을 주며 완전한 몰입을 방해했다. 하지만 그 방해 요소조차 극의 일부인 것을 알고 보는 것이 관극의 흥미로운 요소다.


각자 배우들이 맡은 역할의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보자.


주인공 배명순은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며, 정순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도한다. 본래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는 정순임의 인생은 순탄하지 못하다. 결국 그녀의 삶은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끝내 말기 암 판정을 받은 그녀는 무연고자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이야기는 그녀의 죽음 이후부터 또다시 이어진다.


그녀는 시신 안치실에서 또 다른 유령들을 만나게 되고, 그 유령들과 쓸쓸했던 각자의 삶에 대해, 그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등장하는 유령들은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들, 즉 무연고자를 포함해 사회의 보호와 관심 밖으로 밀려난 약자들을 의미한다.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사회적 문제와 고발을 다루지만, 고선웅 연출은 이에 특유의 위트와 유연함을 더한다.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프레임이 탄생하는 것이다.


각자의 역할에 몰입하며 연기하던 배우들은 진행 도중 배우 개인의 자아로 돌아와 배우로서의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며, 극중 역할과 개인의 자아를 넘나든다. 그러다 그들은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방금 그건 네가 그러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너의 역할이 그러고 싶었던 거야?”


그들은 역할과 배우로서의 자아를 명확히 분리하지 못한다. 배명순과 정순임을 연기하던 배우 이지하는 “결국 이지하도 하나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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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극은 ‘이 세상이 무대이고, 인간은 배우와 같다’는 메시지를 상기시킨다. 그러고 보면 극 중 극 속에서 각자의 인물을 연기하던 배우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불만도 표출한다. 왜 자꾸 이런 역할만 주어지냐며, 역할이 이렇기에 이런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스토리와 인물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결국 배우들은 계속 극을 진행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무대감독 역이 무대 위로 등장해, 그대로 극을 진행하라는 연출의 말을 대신 전한다. 대본이 없어도 극의 흐름에 맞게, 그 상황에 떠오르는 말을 하며 진행을 이어가라는 것이다.


어쩌면 연출의 이 말은 우리네 삶을 관통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각자 부여받은 역할이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세상이라는 무대는 원하는 대로 세팅되지 않으며, 원하는 상대 배우를 만나 원하는 대사를 듣지 못할 때도 있다. 원하는 연출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속에서 각자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흐름 대로 따라가며 계속해서 삶을 진행시킨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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