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서점에 가면 신간 코너는 온통 자기계발서와 에세이로 가득하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부자가 되는 방법, 마음 다스리기, 대화의 기술, 자소서 합격 같은 자기 계발 서적만 가득하다. 분명 나는 서점에 들어왔는데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인터넷 강의 목록이다. 이름과 형태만 다른 학원에 수강 등록을 하러 온 게 아닐까 싶은 착각에 빠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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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k Tomasso via Unsplash

 

 

얼마 전 책 몇 권을 주문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변신', '프랑켄슈타인'. 한 번쯤은 들어봤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책들이다. 택배로 도착한 책들을 보니 생각보다 얇았다. 길어봐야 300쪽을 조금 넘어간다. 왜 이런 짧은 책들을 읽기 어려워했을까 싶었다. 아마 고전문학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이 만들어낸 일반화의 오류다. 옛날 말로 쓰여 있고, 지금과는 다른 시대 배경에다 복잡한 철학적 사유까지 담겨 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번역도 잘 되어 있고, 깊은 생각과는 멀어진 우리 세대를 위한 각주와 해설도 친절하게 달려 있다.


문화적 깊이라는 게 있다. 어떤 작품이 단순한 오락거리인지, 혹은 그 작품을 만든 사람만의 고유한 세계라던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 아닌가다. 깊이 있는 향유라는 것은 이러한 깊이를 읽어내는 일이다. 손가락 하나로 무료하게 릴스를 넘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걸로 말하고 싶은 게 뭘까', '이 캐릭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를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보고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의 의미를 읽어낸다. 그리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소비에서 향유로 한 걸음 나아간다.


문학은 그 시대의 거울이다.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고민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랑과 이별, 성공과 좌절, 희망과 절망. 시대는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수백 년 전에 쓰인 소설 속 주인공의 고민이 지금 우리의 고민과 닮았다. 그 덕분인지 고전을 읽다 보면 요즘 쏟아져 나오는 영화, 드라마, 소설들을 보면 뿌리가 보인다. 영웅의 모험담, 금지된 사랑 이야기, 복수와 용서의 드라마. 현대 콘텐츠들이 아무리 새롭고 혁신적인 것처럼 포장되어도, 결국 그 본질은 켜켜이 쌓여 온 역사로부터 싹을 틔운 새순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 건너뛸 수도 없고, 배속으로 볼 수도 없다. 작가의 논리를 천천히 따라가면서 생각의 흐름을 추적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집중력과 사고력이 단련된다. 모든 것이 빠르게만 흘러가는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디지털 디톡스가 바로 이것들이다. 짧은 동영상, 요약된 정보,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검색 결과. 하지만 깊이 있는 사고를 위해서는 느림이 필요하다. 고전문학은 그런 느림을 강제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차근차근 읽어 나가면서 사유의 깊이를 더해간다.


물론 쉽지 않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포기하고 싶어진다. 등장인물 이름도 외우기 어렵고, 시대적 배경도 낯설다. 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면 그 안의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복잡해 보이던 인물 관계도 정리되고,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보인다.


고전문학을 읽는다는 건 결국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일이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이해하게 된다.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지식은 아니다. 재미로 치면 넷플릭스 드라마만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이 주는 깊이와 여운은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렵다. 한 번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책상 위에 놓인 세 권의 책을 본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서둘지 않는다. 천천히, 한 문장씩 음미하면서 읽어 나갈 생각이다. 고전문학을 읽는다는 건 그런 여유로운 마음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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