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크리에이터인 세르주 블로크의 작품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찾아왔다.
세르주 블로크展의 포스터를 보자마자 처음 든 느낌은 ‘따뜻함’이었다.
‘작은 선의 위대한 여행’이라는 전시의 부제목과 함께 크게 그려져 있는 따뜻한 색감의 고양이는 포근하면서도 재치 있는 인상을 준다. 쉽게 따라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이 작품은 전시장 초입에 배치되어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자유, 웃음, 용기, 협력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응축되는데, 이는 곧 세르주 블로크의 세계관과도 같다. 그의 작품들 속에는 자유에 대한 사랑, 권력에 대한 의심, 보통 사람들의 근면한 삶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심오해질 수 있는 이 주제들을 세르주 블로크는 결코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 단순한 선과 색감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작품의 장벽을 낮추었고, 가만히 감상하다 보면 세상에 관한 그의 진지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전쟁의 참상을 풍자한 <적>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은 전시장 내에서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병사 한 명이 적군 한 명과 각자의 참호 안에서 대치하는 상황을 그린 이 작품은 두 사람 중 어느 한쪽도 무자비한 괴물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프레이밍의 주동자이자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전쟁의 무의미함을 비판한다.
또, 전쟁 지침서 속 잔인하고 동정심 없는 괴물로 묘사되었던 적군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고, 그 또한 전쟁을 멈추고 싶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서로의 참호에 몰래 들어가 서로가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확인한 그들은 평화를 꿈꾸는 메시지를 페트병에 담아 던져보고, 작품은 그렇게 끝난다.
전시장 내 영상에서는 각자가 던진 페트병이 공중에서 부딪히며 다시 자신들의 참호로 떨어지는 ‘웃픈’ 엔딩으로 끝났지만, 원작 그림책에서는 서로의 페트병이 참호에 곧 들어갈 것만 같은 결말로 마무리된다.
두 병사 모두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음을, 그리고 종전을 바라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지속되는 전쟁의 무용함과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전시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구간은 ‘미스터 칩’이었다.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표현되는 미스터 칩은 전시장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비치된 QR 코드를 찍어 들어간 사이트에서는 벽에 그려진 미스터 칩을 카메라로 인식시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미디어 아트가 있어 새로운 방식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치며 나오려니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열심히 미스터 칩을 그리고 있는 어린이 두 명이 보였다.
이미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의 그림체로 미스터 칩을 그렸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동시대 인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미스터 칩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다양하게 재창조되는 듯했다.
세르주 블로크가 보여주는 작은 선의 위대한 여행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