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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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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일기>는 학교 쓰레기통에서 누군가의 유서가 발견되며 시작한다. 화자이자 학교의 교사인 요우쥔은 그로 인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영화는 요우쥔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현재’에서는 누가 유서를 썼는지 쫓으며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를 보여주고, ‘과거’에서는 끊임없이 더 ‘잘난’ 동생과 비교 당하며 낮은 성적 때문에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는 아이를 보여준다. 각자 지닌 아픔은 달라도 결국 어린 학생들이 짊어지지 않아도 될 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두 개의 이야기는 비슷해 보인다.

 

어딘가 익숙한 이러한 이야기들은 영화의 중후반부에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과거’의 화자와 ‘현재’ 시점의 교사가 동일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시점까지 교사의 이름은 정확히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두 화자가 동일 인물이라 생각하고 영화를 보게 되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이가 결국 10살의 나이로 자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현재’의 교사는 과거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그러한 폭력적인 가정 속에서 형 요우제를 잃고 살아온 사람이었음이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두 가지 갈래로 읽히게 된다. 하나는 성적, 장애 등 여러 요소 때문에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요우제는 성적이 낮고 공부를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가정 속에서 시달리다 자살하고, 빈센트는 난청으로 인한 학교폭력을, 반장과 다른 학생은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은 이유로 각자의 삶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다. 특히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요우제가 10살이라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자살했다는 지점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도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한다.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는 마지막 일기이자 유서는 과연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자신의 능력 내지 ‘쓸모’를 증명하길 바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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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갈래는 가정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인생을 파괴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직접적인 폭력의 대상이 된 요우제 뿐만 아니라 성적과 능력에 따라 처우를 바꾸는 가정환경에서 자랐던 요우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우제의 죽음 이후로 부모님은 이혼하고 요우쥔은 아빠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요우쥔은 형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온전한 가족의 형태를 알지 못하기에 아내에게조차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자신에 대해 말하면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우쥔의 고백은 그가 오랫동안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우쥔이 요우제의 삶과 죽음, 또는 자신의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영화를 약간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이다. 이 시점 이전까지는 영화가 학생들이 겪은 고통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이후로는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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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수능 시즌만 되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누군가의 이야기, 수능 시험 도중 누가 옥상에서 떨어졌다는 둥의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어떤 것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하겠지만, 그럼에도 이것들은 누군가의 거짓말처럼 들리기보단 걱정과 한탄을 자아내는 무언가가 되곤 한다. 이제는 학생의 신분과 입시에서 벗어난 지라 그들의 현실에서 조금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글도 제대로 떼지 못했는데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학부모들, 중학교/고등학교의 진도를 선행학습하는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영화 속 요우제의 이야기가 과하게 느껴지는가 싶다가도 과연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의심하게 되는 지점이다.


영화에는 많은 순간순간들이 존재한다. 빈센트가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음이 빤히 보이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교사들, 요우제를 과하게 질책하고 모욕하는 선생님, 학생의 유서가 발견되었음에도 그것을 가볍게 여기고 대입 시험을 이유로 비밀로 하자고 하는 교감까지.

 

그러나 동시에, 학기가 끝나고 얘기가 나눌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요우쥔의 말에 용기를 낸 학생도 존재한다. 외면과 관심 중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해 보인다. 유서와 일기가 요우쥔을 변화시킨 것처럼 이 영화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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